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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n 27. 2024

다시 배우기

겨울 이야기 - 하나 

이들의 정열적이고 도전적인 삶은 옳고 나이에 비해 너무 이르게 '정적이고 평온한 삶에 안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나의 삶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둘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나의 몸과 정신을 너무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늙은 젊은이, 서정진


 바이오 회사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1957년생으로 2024년 현재 60대 후반의 나이지만 아직도 정력적으로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한다. 최근 유튜브에서 그를 24시간 따라다니면서 관찰한 영상을 봤는데 화면속 그의 빽빽한 일정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이른 아침 조찬 모임에서부터 시작된 잘게 쪼개진 수 많은 일정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그의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그를 지원해 주는 수행단은 3개월에 한 번씩 조를 바꿔가면서 그를 따라다닌다고 한다. 젊은 수행원들도 3개월 이상은 그를 따라다니지 못할 정도로 가혹한 일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촘촘하고 여유라고는 찾기 어려운 업무 일정에 대하여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수 십 년간 습관처럼 해 온 일이기 때문에 그냥 한다'고 하지만 단순하게 '습관'만으로 그의 열정적인 삶의 패턴을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회장은 자신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정신력' 덕분이라고도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 자신도 버틸 수 없다는 말이지만 역시 오로지 '정신력' 때문이라고 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그가 분명히 돈만 벌기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를 움직이는 숨어있는 강력한 동력이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성공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서 또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는 어쩌면 단지 좋아하는 일을 계속 반복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비록 겉으로 보이는 육체적인 몸은 노쇠하였지만 정신과 행동은 그 누구보다도 더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청년으로 보였다. 


 그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심한 복부 비만이기도 했다. 화면에 비추어진 그의 배는 어지간한 쓰모 선수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보였다. 심한 운동 부족과 불규칙한 식사, 수면 부족 등이 그의 복부 비만을 더욱 가속화시켰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청난 재산을 일구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이에 비하여 좀 더 늙어 보이기도 했다. 67세라는 나이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긴 하지만 정상을 상당히 벗어난 체형은 그를 조금 더 나이들어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육체적인 건강의 희생을 대가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의 체형과 노쇠한 외모를 들먹인 것은 밖으로 보여지는 그런 면 외에는 모두다 존경스럽고 대단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상을 통해서 비추어진 그의 모습에서 그의 성공과 열정, 추진력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배려심 등 많은 부분에서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로하여금 부러움을 느끼게 했고 그래서 속좁은 범인(凡人)인 내가 뭐라도 약점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나를 포함한 많은 타인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짧지만 그의 24시간을 관찰한 영상을 보고 나의 게으름과 낮은 실행력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다시 뭔가 배우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급함도 느꼈다. 퇴직을 한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67세의 과도하게 배 나온 인생 선배가 저렇게 뛰어다니는 동안 그보다 열 살이나 젊고 배도 전혀 나오지 않은 멀쩡한 외형을 가진 내가 과연 이렇게 '정적이고 평온한 삶에 안주'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외형은 균형이 잘 잡힌 모습이지만 내면은 심하게 배가 나온 '배불뚝이 늙은이' 일지도 모르겠다. 비만 인구가 비교적 많아진 우리 나라에는 여러 이유로 인하여 '배나온 분'이 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는 물론 없다. 나의 나태함 혹은 게으름에 대한 은유일 뿐이다. 




 또 한 명의 늙은 청년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한 분도 역시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몇 개월 전에 미국에서 새로운 스타트업에 참여하는 도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직장을 5번 정도 옮기면서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기어이 6번째 도전을 새로 한 것이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내 머리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놀랍기만 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서정진 회장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부(富)를 이미 이루었기 때문에 그 분도 역시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전을 계속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보상이 없이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재정적 보상을 교환 수단으로써의 단순한 돈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상패와도 같이 생각할 것 같다. 


 그들은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소비도 그 수준에 맞게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흥청망청 소비에만 집중하지도 않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단지 돈을 쓰기 위해서 벌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돈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또 써야 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돈의 낭비가 아니라 시간의 낭비가 그들이 불편해 하는 '소비'다. 그들은 열정적인 사회 활동을 통하여 그에 준한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물질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의 가치 기준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어떤 상태의 성취가 아닐까 한다. 목적하고 있는 일을 완수할 때 느끼는 후련함 혹은 성취감이 그것이고 그때 물질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내가 존경하는 이 선배도 배가 많이 나온 편이다. 꼭 배가 나와야 호기심도 생기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비행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수면도 부족하고 식사도 불규칙하고 일 중독인 측면에서 이 선배도 서회장과 비슷한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미식가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배도 많은 면에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문제


 이들의 정열적이고 도전적인 삶은 옳고 나이에 비해 너무 이르게 '정적이고 평온한 삶에 안주'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나의 삶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둘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나의 몸과 정신을 너무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서정진 회장은 말할 필요도 없고, 나는 내가 존경하는 선배의 재정적 수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재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혹시 내가 '정적이고 평혼한 삶'에서 탈피하고 다시 경제 활동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나 또한 그들처럼 돈을 더 쌓거나 더 쓰기 위해서 벌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수준에 맞는 소비를 하듯이 나 역시 나의 수준에 맞는 소비를 하고 있고 따라서 나의 재정적 균형을 크게 잃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더 벌어서 쌓아 놔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소모적으로 쓰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추가적으로 쓰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이라면 내가 시간 낭비(돈을 쓰기 위하여 시간을 쓰는)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왜냐하면 재정적으로도 풍부하지 않고 게다가 소비 성향이 매우 낮기 때문에 그만큼 낮은 수준의 지출이 필요하고 따라서 '낭비적 소비'는 나의 습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더 벌고 더 쌓아야 한다'는 압박도 강하게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이 소비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 활동'을 위한 시간의 '낭비'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들과의 '재정적 규모의 차이'를 나는 이러한 '생활 패턴의 다름'으로 극복한 것인데, 한편으로는 기가막힌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최근들어서 사실 나도 그들처럼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도전하려는 욕구 혹은 다시 뭔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면서 현재 유지하고 있는 내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급한 성격때문에 비교적 실행이 빨라서 일단 뭔가 시작은 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과거 재직시에 하던 습관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미국계 반도체 회사이고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였기 때문에 거의 매일 새벽에 회사의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해서 관련 영문 기사를 20~30분 정도 읽는 습관이 있었다. 그 습관부터 다시 시작했다. 언제 다시 쓸지 모르지만 적어도 감을 유지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안그래도 부족한 실력이었는데 완전히 손을 놓으면 영어로 간단한 글도 써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입으로 한 마디도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어쩐지 본전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어서 그 '습관'을 제일 먼저 재개한 것같다.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해외의 각종 기술 관련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기사를 접하다보면 세상을 좀 더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내가 다시 돌아갈 세상을 잊지 말자는 내부로부터의 소리가 나를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퇴직 후 이제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정적이고 평온한 삶에 안주'하면서 보내고 있다. 그런 삶을 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 이상한 느낌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어떤 흔적처럼 내 마음 속에서 남아있다. 직장 생활을 30년이나 했으니 그 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함께 내 몸과 마음에 깊게 물든 자국이 몇 개월 만에 사라질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무언가를 다시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일단 재미가 있다. 그리고 쓸모도 있다. 비록 과거에 하던 습관적인 행위인 반도체 시장, 금융 그리고 경제 관련 영문 기사 읽기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닌 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내가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주제가 없으니 다른 도리가 없다. 일단 뭐라도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자위 중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개그맨 박명수는 '시작이 반은 아니다'라고 팩트 폭격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시작은 시작일 뿐이지 절대로 반이 될 수 없다. 방전된 충전지에 전원을 꽂으면 0%부터 충전이되지 50%부터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작이 반이다'말은 늦게라도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일 뿐이다. 시작 한 것에 대하여 자신을 스스로 격려하는 것은 좋지만 늦게 시작한 것은 사실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비난 받을 일은 더욱 아니다. 그래서 늦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맞다. 


 나는 재직시에도 성실하고 역량이 있는 후배들에게 늘 공부하고 책을 읽고 새로운 도전을 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해라, 해보라 그리고 또 계속해라....'라고 반복했었다. 그리고 나서 정작 내가 회사의 문을 나선 이후에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물론 '거의'이기 때문에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소하게 나의 생각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에세이를 쓰고 있고 3개월에 채 미치지 못하는 기간 동안에 160편 이상의 글을 썼다. 내가 한 거의 유일한 일이 글쓰기 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기 위하여 미친듯이 글을 썼을 지도 모른다. 타인의 눈에 수준 낮고 질이 낮아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내 글이 읽혀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이다.


 아무튼, 나도 지금은 여전히 뭔가 '할 때'일지도 모른다. 서정진 회장의 일상에 대한 동영상을 본 것은 어쩌면 내게 일종의 '계시'일 수도 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내 기억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존경하는 선배의 '늦깍이 재 도전'까지 다시 머리에 떠오르면서 나의 현재 모습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뭔지 모르지만 '정적이고 평온한 삶에 안주'하는 나의 모습이 아직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글을 쓰면 그 주제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두 사람의 끝없는 도전자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깊게 들여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다시 배우는'사람들이었고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단지 배움을 멈추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을 통하여 나라는 사람의 수동적이고 정적인 모습이 재확인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직 늙은 늙은이 보다는 비록 좀 늙었지만 젊은 정신으로 살고 싶은 사람에 포함되고 싶다. 그리고 늙은 늙은이 보다 늙은 혹은 늙어가지만 여전히 젊은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이것도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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