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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n 26. 2024

나의 '젠골프' 읽기 (3부;명예로운 게임) 1/4

1. 실수는 누구나 한다, 문제는 실수를 이겨 내는 것이다. (p265 ~ p266)


나는 퍼팅을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본 적이 없다. 실수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뿐이다.     - 치치 로드리게스, 시니어 PGA 투어 선수


 '무엇에 신경이 쓰인다는 말인가? 자네는 인근 150킬로미터 내에서 최고의 골퍼일 텐데.' '하지만 내가 실수라도 하면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나한테 레슨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샷에 내 밥줄이 걸린 거라고. 그러니 신경이 쓰이지 않겠나?' '정말 그럴까? 뛰어난 골퍼도 때로는 실수하는 법이야.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 자네가 실수하더라도 저 사람들은 개의치 않을 거야. 오히려 자네가 실수를 어떻게 이겨 내는가를 알고 싶을 거라고. PGA프로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들은 어떤 경우에든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경기하는 법을 가르쳐 줄 프로 강사를 원할 거야.'


 샷 이후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다. 샷을 실패하더라도 불평이나 욕설을 내뱉으며 자책하는 것보다 냉정한 가슴을 유지할 수 이어야 한다.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이 감정을 억누른다는 뜻은 아니다. 억누른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일 뿐, 어떤 계기가 주어질 때 무섭게 폭발할 수 있다. 샷을 실패한 후 실망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실망하더라도 곧 그 실망감을 지워 내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샷을 원만하게 치러 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습관을 고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다면 그 습관적 행위는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동반자는 골프를 더 신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 중에는 오히려 그 분야에 있어서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많은 시도가 없다면 많은 실수도 없다. 실수가 없다면 시도하지 않는 사람일 경우도 많다.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에 포함되는 기아 타이거즈의 이종범은 선수시절 천재 유격수로 불렸다. 그러나 그는 잡을 뻔한 타구를 잡지 못하거나 송구 실수로 에러를 범하기도 했다. 그가 천재 유격수 임에도 불구하고 에러율이 낮지 않았던 이유는 빠른 발과 타구에 대한 반응 속도로 보통의 유격수라면 닿지 못했을 공까지 수비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뛰어난 능력으로 수비 범위가 넓어서 더 많은 수비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고 이것은 그만큼 실수의 가능성을 올린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 몫을 하는 경우를 100%의 업무량이라고할 때 50%만 하면서도 1달에 1회의 실수를 하는 사람, 100%의 일을 하면서 1달에 1회의 실수를 하는 사람 그리고 200%의 일을 하면서 1달에 1.5회의 실수를 하는 사람이 있다. 세 번째 직원이 실수 회수는 제일 많지만, 실제로는 일을 제일 많이 그리고 제일 잘 하는 사람이다. 


 50%를 하는 사람이 200%와 같은 업무량을 받았다면(물론 할 수도 없었겠지만) 최소한 4회의 실수를 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 이상의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0%를 하는 사람 역시 200%의 업무량을 받으면 최소 2회 혹은 그 이상의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200%를 하는 사람의 1.5회는 그들과 비교하면 최고의 성과라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적인 결과치만 놓고 보면 세 번째 사람은 실수를 많이하는 역량이 떨어진 사람이 된다. 만약 똑똑하고 성실한 부하 직원이 잦은 실수를 한다면 그 이유는 업무 배분에 실패한 관리자 책임일 가능성이 많다. 나도 그런 경우를 경험했지만 '속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직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빨리 업무 조정을 해서 과도한 업무를 줄이고자 노력했었다. 당신의 스마트한 부하 직원의 실수가 늘어나면 면밀히 그의 업무 상황을 살펴 보길 권한다.   





회복탄력성


 김주환 교수가 주장한 회복탄력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심리적 그리고 정서적으로 회복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은 인생에서 겪게 되는 온갖 역경과 실패를 보는 관점을 바꿔서 그런 경험에 억눌리기 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성장하는 기회로 만들어 주는 심리적 근육이라고도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김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어떤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적 결단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의 실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습관적으로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면 실수에 예민하게 반응하되 실수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유독 어떤 상황이 와도 긴장하지 않고 여유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중대한 사고가 터져도 당황하는 대신 문제의 본질을 보고 해결을 하려고 한다. 회복탄력성이 부족하면 그런 경우 사고의 무게에 짖눌려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된다. 강한 회복탄력성을 갖길 원한다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여하는 '중요성'을 제거하면 된다. 무엇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에 문제가 생기면 당황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 보면, 정말 맘에 드는 좋은 옷을 입고 식사를 하다가 옷에 빨간 김치국물이 튀었다고 가정해 보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일이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간 아쉽고 실망하는 기색이 있긴 하지만 곧 물휴지 등을 사용하여 김치국물의 자국을 옅게 만들고 '할 수 없지'라는 표정으로 식사를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는 다른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화를 내면서 순식간에 상당히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극히 드물지만 이런 사람은 꼭 있다. 이런 경우는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는 '사소한'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에 휘말려 버리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일에 너무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옷이다. 수백만원자짜리 명품도 아니다. 아니 명품 이라고 해도 옷일 뿐이다. 


 또 다른 '중요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사람은 '사소한 중요성'이 아니라 누가 봐도 '정말 중요한 일'을 겪을 경우에도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방법을 찾는 것이 그의 우선적 행동이다. 도저히 좋은 방법이 없으면 상황에서 발생할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최대한 경감시키는 쪽으로 사고의 전환이 즉시 이루어진다.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당신이 최근에 겪은 '중요한 일'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 당시에 당신의 심리적, 정서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아마 스스로 '나의 회복탄력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지구상에 거의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NBA 선수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요한 슛을 놓친 결과에 절대 개의치 않는다.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하면 언제나 부정적인 결과만 생각하게 된다.' 마이클 조던이 수많은 역경을 뚫고 최고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그가 그 누구 보다도 '회복탄력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 누구 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심판하지 말라


'남을 심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 받을 것이다.'   - 누가복음 6장 37절. 


 성경에 나오는 말인데, 이렇게 남을 심판하고 비판하지 말라는 내용은 많은 책에서 자주 발견된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에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말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타인에 대한 심판이나 비난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타인을 심판하고 낙인 찍고 비난한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누군가를 비난했고 어쩌면 오늘도 그럴지도 모른다. '나약한 인간'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붙여서 면죄부를 주고 그런 행위나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죄책감을 억누르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타인에 대한 비난을 완전히 멈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빈도와 강도를 줄이는 노력을 최대한 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 


 타인에 대한 심판이나 비판도 나쁘지만 그만큼 좋지 않은 것은 자신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비판이다. '그 누구도 심판하지 말라'에서 '그'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고 죄를 저지른 후에도 당당하라는 뜻이 아님은 잘 알 것이다. 이 말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하여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여 자책하지 말라는 뜻이다.


 조셉 패런트도 '중요한 것은 당신을 심판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라고 했다. 혹시 최근에 자기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고 단죄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만약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향후 그런 일이 발생해도 결코 자신을 단죄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셉 패런트는 그런 반응을 '고쳐야할 습관'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나는 그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자신의 행위나 생각 그리고 태도 등 여러가지 면에서 교만하고 자만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스스로에 대하여 야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삼가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실수를 했을 때 말이다. 자책하고 스스로를 심판하지 말고 평정심을 찾고 현명한 반응을 하는 것을 선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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