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15층에서는 남동쪽으로 뻥 뚫린 뷰를 볼 수 있다. 이 집에서 남동쪽으로 불과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강화도를 제외할 때 인천 최고봉인 계양산이 맑은 날이면 거의 눈에 잡힐 듯 보인다. 높이는 불과 395미터로 강원도에 있는 높은 산과 비교하면 야산에도 끼지 못할 수준지만 주로 평지가 많은 인천에서는 제법 높은 산이다.
오늘같이 가시 거리가 50km에 이르는 맑은 날이면 남한산이나 검단산까지 보인다. 이곳에서 불과 45~47km 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탁한 대기 환경으로 인하여 먼 곳까지 시선을 펼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는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아름다운 경치도 매일보게 된다면 그 감흥이 떨어질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연은 그 아름다움을 늘 드러내지는 않는다. 멀리서 가끔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더 깊게 느끼도록 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비오는 날 우리 집에서 볼 수 있는 계양산은 꽤 멋스럽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거실에서 밖을 볼 때 시야를 가리는 어떤 건물도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엄청나게 큰 화면을 통해서 들여다 보듯이 넓게 펼쳐진 산자락을 감상할 수 있다. 아직 개발이 진행중인 신도시의 귀퉁이 위치한 아파트라 비교적 교통이 나빠서 누굴 좀 만나려고 해도 두 세번은 차를 갈아타야 하고 주변도 정돈되지 못하여 여전히 어수선하며 또 편의 시설도 별로 없어서 살기에 불편함이 적지 않은 단점이 있지만, 그 모든 불편함은 거실창 밖의 멋진 풍경을 볼 때면 태양빛에 사그러드는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멀리서 보는 아름다운 풍경은 내게 꽤 큰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단점들은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단점이지 내게는 전혀 해당되지도 않는다. 대중 교통이용이 아주 편하지는 않지만 사실 대신 자가용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좁은 도로 사정으로 인한 교통 체증 때문에 별로 편하지도 않고 아파트 주변 정리가 덜 되었고 편의 시설이 부족한 점도 어차피 집에서 밖으로 자주 나가지 않으니 역시 나와는 상관이 거의 없다. 결국 그런 불편함 보다는 거실창 밖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나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 살던 곳은 인천 청라국제도시였다. 역시 그 집도 거실 전망이 환상적이었다. 2020년 초에 처음 집을 보러 들어갔을 때 나와 내 아내의 눈을 사로 잡은 것은 집 그 자체 보다는 전망이었다. 물론 집도 상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으로 이어졌지만 아래 사진과 같은 아름다운 전망도 입주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곳에서 사는 동안 해가 질 무렵에 볼 수 있는 붉게 물든 노을을 보고 있자면 한 없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곤 했다. 노을은 멀리서 볼 때 그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을은 일반적으로 지평선 위에서 발생하니 그것을 가까이서 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멀리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광경이다. 노을 역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이 더욱 반갑고 기뻣던 것 같다.
아름다운 산이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붉은 노을은 이와 같이 멀리서 볼 때 아름답다. 그리고 자주 볼 수 없는 만큼 그 모습을 보는 행운을 갖게 되는 그 날에는 더 아름답게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오래 지속되는 은은한 기쁨
어떤 면에서는 사람과의 인연도 비슷한 것 같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그렇게 반갑지는 않은 편이다. 불편하거나 만나기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매일 매일 만나게 되면 서로 무감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반갑지 않다는 말이다. 경험은 없지만 주말 부부의 경우도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에 주말에 만나는 날이면 반가움이 적지 않고 만나지 못하는 주중에는 '믿을 수 없게도' 서로 애뜻함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연식이 오래된 경우는 많이 해당이 되지 않고 결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에 주로 해당되는 경우일 것이다.
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난다. 별로 할 일도 없으면서 습관적으로 만나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만나는 빈도는 급격히 줄어든다. 한 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이런식으로 간격이 벌어지다가 결국엔 몇 년만에 만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관계가 돈독했던 친구 혹은 진정한 친구라면 특히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하다가 만남을 다시하게 될 경우 느끼게 되는 기쁜 마음은 더욱 클 것이다. 사정상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있던 기간 만큼 깊게 숙성된 시간의 맛이 그들의 우정에도 깊게 배어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도 퇴직을 한 이후에 친한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몇 년에 한 번 볼까말까했던 친구들을 만날 때면 커다란 기쁨보다는 어떤 푸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대화할 상대, 나를 이해해 줄 상대를 오래 간만에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내 편'을 만나는 기분마저 든다.
실제로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자기 이야기 하기에 바쁘긴 하다. 직장 이야기, 자식 이야기, 재태크 이야기, 그외의 다양한 고충 등 본인이 가장 관심이 있고 골치가 아픈 일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도 짬짬이 치고 들어가서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 생활을 하면서 온갖 압력에 눌려있는 내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내가 이해 받기 위하여 그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들 또한 이해받기 위하여 나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도 그들을 이해해 줘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찌 되었든 나의 편이고 나를 기억해 준 사람이지 않는가? 그것 만으로도 나의 이해를 받을 자격은 충분할 것 같다. 고충에 대한 주제가 많다보면 어쩔 수 없이 좋은 이야기만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멀리 떨어져 있다가 가끔 그들과 만남을 가질 때면 언제나 좋은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친구와 달리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우는 끈끈한 관계까지 이어지기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았던 나는 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있다. 재직 당시엔 그들은 거의 아무때나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때도 늘 좋은 기분을 느끼면서 대화를 했다. 퇴직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만남이 거의 단절이 되었고, 특히 여전히 현직에 있는 사람들은 불러내기가 미안하여 먼저 연락을 하기 보다는 연락을 주면 나가서 얼굴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지 오래 간만에 그들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우선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평소에 서로 공감을 나누던 이들과의 만남이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과 함께 겪은 경험 그리고 같이 보낸 시간 동안 꽤 큰 값어치가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은은한 향이라야 질리지도 않고 오래 맡을 수 있다. 은은한 향과 같이 나의 친구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질리지 않고 오래 지속되고 있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그들과 함께 공유한 시간과 경험에서 오래도록 뿜어져 나온 '은은한 향'으로 서로의 관계가 둘려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과의 만남에서는 포근함, 기분좋음, 안락함, 즐거움 등을 느낀다.
반면 너무 강렬한 기쁨은 그것이 사그라지면 강한 아쉬움 남긴다. 그리고 정점에 도달했던 기쁨의 강도가 너무 세면 그 이후에 느끼게 되는 정점에 한참 미치지 못한 강도의 기쁨은 왜소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즉 강력한 세기의 만족감의 지속 시간은 길지 않다. 폭축은 거대한 빛의 그림을 그리면서 하늘을 수 놓는다. 폭축이 터지는 순간 수 백미터 반경이 환해진다. 그러나 불과 몇 초만 지나면 엄청나게 밝았던 폭축의 불꽃은 어두운 공간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려서 흔적초자 없다. 맹렬한 기세로 활활 타는 장작불도 결국 사그라든다. 그러나 그 맹렬한 불꽃이 사라져도 계속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숯불이다. 그리고 숯불에서 나오는 빛은 은은하다. 은은한 열기는 다음날 아침까지 유지된다.
은은함은 꾸준함이다. 내가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는 소중한 인연을 계속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꾸준함이 필요할 것 같다. 즉 나의 배려, 나의 이해, 나의 공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서도 안되고 너무 가까이에 들러 붙으려고 해서도 안된다. 알맞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두고 은은하고 오래가는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