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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차를 타고 계십니까?

세차가 필요하다. 몸을 이끌어 가는 영혼의 세차.

by Eaglecs

초안 2019. 5. 2. / 2024. 04. 14 보완


들어가는 글.


오늘도 이미 써 놓았던 예전의 나의 글을 보면서 과거의, 아주 먼 과거의 나를 회상한다. 40년 전의 나에 대한 회상에서 시작하여 불과 5년 전의 나까지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40년 전의 나는 너무 먼 나다. 중학교 꼬맹이였기 때문에 그냥 그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 조각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러나 5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너무도 비슷하여 ‘예상은 했지만’ 역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5년 전의 나, 즉, 5년 전 나의 가치관은 지금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대쪽같은 성품 때문인지 쇠심줄같은 똥고집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나의 본질적 특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 관점에서 나의 본질적 특성은 남에게 강요할 만큼 훌륭하지는 않지만 내게는 잘 맞는 것 같다. 검소하고 실질을 추구하며 남의 눈을 별로 신경 쓰지 않되 너무 오만방자하게 남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내 멋대로 살지는 않는다. 즉, 나의 개성과 나의 가치관을 지키되 남의 개성과 가치관도 존중하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삶의 모습을 나의 옛 글에서 재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만약 일기를 쓴다면 과거에 써 놓은 일기장을 꺼내서 몇 년전의 나를 되돌아 보면 어떨까? 부끄러운 내용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지 모르지 않나? 나도 내 과거의 다른 글에서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고 얼굴이 화끈거린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나의 변함없는 개성과 가치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던 모습을 다시 확인하고 작은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내 기준에서’ 나쁘지 않은 나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본문


나는 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행정구역으로 인천시 북구 부개동에 위치한 주택에 거주했었는데 그 집에서 부평 동중학교와의 거리가 약 2km 정도였다. 간혹 버스비가 떨어질 경우 걸어서 다닌 적이 있었는데 20분~2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운동 삼아 충분히 걸어 다녔을 테지만, 왠지 당시에는 그 거리가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었다. 아마도 책가방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학교에 사물함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무거운 책을 가득 채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등교해야 했으니 2km 남짓한 거리를 한쪽 어께에 그 무거운 책가방을 걸고 기우뚱 거리면서 걷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했었다. 거리가 불과 2km밖에 되지 않으니 정말 짧은 시간을 버스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6년을 시내버스를 이용하였고, 1987년 인천 소재 인하대학교에 입학을 한 후 드디어 대중교통 갈아타기가 시작되었다. 지금처럼 환승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교통비도 부담이었었다. 버스를 타는 회수대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니 즉시 2배의 교통비가 발생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동을 위한 비용은 늘 부담으로 다가온다.


나라 경제도 많이 성장하였고 나도 그 흐름에 편승하여 사회생활을 지속해 오면서 이제는 학교가 아닌 회사로 목적지가 바뀌었고 동시에 이동의 수단도 바뀌었다. 입사 초기엔 약 2년 동안은 버스 혹은 회사 통근 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변형 근무의 도입을 검토하면서 대중교통이나 통근 버스로 출퇴근하기 어려워지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가용을 구입하게 되었다. 1997년식 아반떼 1,500 cc 였다. 신차를 뽑았다. 물론 500만원 현금에 나머지는 36개월 할부였다.


이렇게 나와 차와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차를 약 14년간 몰았다. 차량 주차시 실수로 차 뒷편 오른쪽에 구멍이 났을 때도 차와 비슷한 청색 테이프를 붙이는 허술한 보강만 한 상태로 약 14만 km를 몰았다. 그 차를 2011년에 중고 싼타페를 사면서 폐차시켰었다. 지금도 Hard disk 어딘가에 폐차된 그 차의 사진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 실제 성능보다 낮은 효율을 내곤 했는데, 난 언제나 그 잘못을 그 차에게 돌렸었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오일도 갈고 기타 부품도 갈면서 정비를 하지도 않고 그냥 단순히 엔진 오일만 비 정기적으로 갈면서 탓던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차가 이상해서 정비 센터에 갔더니 엔진 오일이 하나도 없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차량 관리에 미숙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 차 아반떼는 기대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병사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인 2011년도에 2009년식 싼타페를 중고로 샀는데 이 차는 정말 짧은 기간만 탓다. 2014년 초까지 탄 것으로 기억한다. 엔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수리를 했는데, 그 후 영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어서 그걸 핑계 삼아서 바꿨다. 특히 디젤 차량인 관계로 소음과 진동이 대단했는데 이런 점 또한 내게는 참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 다음 차는 일본차였다. 2014년 4월 경으로 기억하는데 이때 역시 중고로 일본 닛산 알티마 라는 차량을 구매하였다. 중대형 2,500cc 차량이었지만, 외제 승용차로 2010년식이어서 AS 기간이 종료된 차였고 사고 또한 있던 차라서 비교적 싼 1,420만원에 구매를 하였다. 이 차는 2019년 5월 현재까지 아내가 잘 몰고 있다(이후 아내에게 다른 차를 사주고 내가 2023년 11월까지 20만 6천km 주행 후 미션 고장으로 폐차했다. 첫 차인 아반테와 같은 햇수인 14년차에 폐차된 것이다). 만으로 5년간 비교적 무탈하게 몰고 있으니 저렴하게 잘 사서 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아내의 첫차로는 모닝을 신차로 2005년경 구매해 줬었고 약 10년을 타고 나서 2014년도에 파란색 기아 포르테 중고로 교체하였다. 그리고 2018년 1월에 포르테를 헐값에 처분하고 내가 타던 알티마를 아내가 몰기 시작했다. 파란색 포르테였는데 내 기준엔 너무 차가 허술하게 느껴졌다. 모닝을 타다가 포르테를 타니 좀 안정감이 올라가긴 했는데 몇 년을 타다 보니 불안감이 계속 없어지질 않아서 비교적 빨리 처분하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크고 안전할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는 알티마를 아내가 몰게 해 준 것이다.


난 같은 해 1월에 혼다 인사이트라는 1,300 cc 하이브리드 승용차를 역시 중고로 구입하여 2019년 현재까지 타고 있다. 첫 차를 구입하고 2019년 현재까지 (아내가 탄 차를 포함하여) 아반테, 산타페, 모닝, 포르테,알티마,인사이트 이렇게 총 6대의 차량을 거쳐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 정도 이력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닐 것 같고 중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따지면 집도 상당히 많이 바꿨었다. 집은 산적도 2번 있었는데, 구매 및 전세 모두 포함하여 꽤 많은 변천이 있었다. 효성동 두산(신혼집), 청천동 금호, 청천동 뉴서울, 다시 효성동 두산(구매), 가좌동 대우(미거주), 경서동 우정에쉐르, 그리고 지금 일산 후곡 7단지 동성아파트, 이렇게 미거주로 구매 후 전세만 주다 손해를 보고 매각한 대우 아파트를 제외하고 실거주한 집만 6군데이다. 차도 6번인데 집도 6번이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참 신기하다. (2024년 기준으로 실거주 아파트는 2곳이 늘어서 총 8군데가 되었고, 차도 아내의 폭스바겐 cc, 그리고 내가 몰고 있는 제네시스 G80 이렇게 2대가 추가되어 총 8대의 차량을 몰고 있다. 물론 둘다 2천만원 이하의 중고차를 구매했다. 아내의 차는 무사고로, 내 차는 유사고로. 이젠 차도 8번, 집도 8번이다)


내게 차는 어쩌면 집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필요한 것이고, 허례허식이 없는 실리(즉, 내 현실과 형편에 맞는)를 따져서 구입한 물건인 것이다. 비록 닛산 알티마나 혼다 인사이트가 외제차이긴 하지만 이게 외제라서 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산 중고 자동차보다 쌌기 때문에 산 것이다. 튼튼하기도 하고 안전성도 나쁘지 않으면 동시에 중고가가 국산 승용차보다 꽤 싸기까지 한 점을 고려하여 구매한 것이니 실리적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차는 이렇게 내 삶의 궤적과 함께 변경되어 왔다. 두 다리로 걷다가, 시내 버스를 타고, 그 다음엔 시내 버스를 갈아 타는 식으로 승차 회수가 늘다가, 더 이상 시내 버스로는 내 이동 패턴의 요구 사항이 충족되지 못할 때 승용차를 구매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내게 있어서 차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필요해서 있는 것이다. 깨끗하고 비싸고 다양한 기능이 있는 고급 승용차가 좋은 것은 나도 잘 안다. 무리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또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그와 유사한 차량을 살 수는 있지만 별로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차로 나의 신분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 차를 통하여 나의 본질이 바뀌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 본질은 그냥 내 속에 존재한다. 내가 어떤 차를 타느냐에 따라서 외부인의 인상과 인식이 바뀔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시선 그들의 의식이지 내 시선과 내 의식이 아니다. 나는 나로 살아야 하는데 차라는 수단을 통해서 나에 대한 인상을 변형시키거나 왜곡 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차를 바꾼다면 나를 나로서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어떤 초호화 차량을 몰아도 나의 본질, 나의 모습이 귀하지 못하면 많이 슬플 것 같다. 반대로 차가 좀 검소하고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지 않아도 그 차를 소유하고 타는 나의 본 모습이 귀하고 아름다우면 대단히 기쁠 것 같다.


나의 가치는 그리고 나의 본질은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지 차나 옷 혹은 집 같은 외형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이 그렇다.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떻게 내가 차나 집이나 옷으로 존재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정말 좋은 차, 정말 좋은 집, 최상의 명품을 걸친 사람이 부럽다. 그럴 형편과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걸 향유하는 분들에 대한 말이다. 질투와 부러움은 다른 것이다. 부러움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일단 보기에도 좋고 한편으로는 부럽지 않은가? 그런데 그걸 질투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내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남의 부 또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럽다는 것은 어떤 상태에 대한 선호가 생겨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여기엔 그 부러움의 대상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 인식도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질투는 부정적 인식이 반드시 개입된다. 흔히 농담조로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질투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지만 말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부러운 부분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를 내포한다. 부러워만 말고 노력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좀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차를 탈까? 나는 ‘나’라는 차를 타는 것이 아닐까? 내 몸과 정신(영혼)이 바로 '나의 차'이고 그게 '나의 실체이며 본질'이다. 나의 진정한 차를 더 잘 가꾸고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 즉 ‘나의 몸과 영혼’이 내 삶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나의 차’이기 때문이다. 그 차를 통하여 결국 나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나가는 글


나의 정신과 영혼이 진정한 나를 이끌어 가는 차다. 나의 몸은 차량 본체이고 그 본체를 이끄는 것이 나의 정신과 영혼, 즉 Tesla의 auto pilot S/W 같은 것이 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몸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그 운영체계인 나의 정신과 영혼을 잘 가꾸어야 하겠다.


기억할 것이 있다. 정신과 영혼을 가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타고 다니는 실물 ‘차량’의 세차는 좀 하자. 깨끗한 ‘실물의 차’가 더러운 ‘실물의 차’ 보다는 우리 영혼과 마음 혹은 기분을 좀 더 편하게 해 주지 않을까?


* 나와 내 아내의 든든한 발이 되어준 고마운 차다. 약 10년간 14만km를 안전하게 운행했다. 일본차라서 한 동안 기를 펴지 못하고 다녔던 기억이 남아있다. 폐차장으로 인도한 마지막날 촬영하여 내 기억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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