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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당신의 기억엔 어떤 종류의 햇살이 남아있는가?

by Eaglecs

초안 작성 2017. 10. 17. 11:37 / 2024. 04. 14 正書


들어가는 글.


이 글은 내가 블로그에 처음으로 쓴 글이다. 그 전에는 짧은 나만의 글을 써도 그냥 PC에 저장을 해놓았을 뿐이었고 그것은 결국 몇 년이 지나면 어디에 있는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흔적이나 자취가 아쉽기도 했지만,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리면 나중에 다시 나의 ‘순간들’을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올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약 6~7년 전에 내가 경험한 순간이 이 글에 녹아있다. 세밀한 묘사가 현란하게 되어있지는 않지만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지고 냄새 그리고 온도까지 느껴진다.


글을 쓰는데 많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묘미도 있지만 이런 글쓰기에서 얻을 수 있는 ‘회상의 기능’이 글쓰기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나쁘던 좋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심시어 나빴던 과거를 회상하더라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즉, 나빴던 당시의 감정이 온전히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렴풋이 느껴지겠지만 절대로 나빴던 느낌이나 감정을 통째로 회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과거에 경험한 최악의 경험을 다시 상기할 때 기분이 나빠지는가? 정말인가? 내 생각에 그건 기분탓이다. 그 실상은 과거에 그 나빴던 순간이 나빴었다는 것이 맞다는 자신의 인식을 재 확인한 것 뿐인데 실제로 그게 다시 지금 당장 나쁜 기분이 든다고 자신을 속이는 것은 아닐까?


여러분은 과거에 다친 적이 있었나? 아팠던 적은? 있었을 것이다. 만약 지금 그 당시를 회상하는데 그 통증이 느껴진다면 어쩌겠나? 큰일이다. 과거에 다리가 부러졌다면 그때 엄청 아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걸 회상할 때 그 통증을 다시 느껴야 한다면 정말 문제 아닌가? 누가 그러던데 이런 것이 부분적 망각이라는 신의 자비라고 한다. 회상할 수 있지만 통증을 다시 부를 수는 없게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다시 일부라도 받을 수 있지만 과거의 고통은 절대로 재생되지 않도록 신이 자비를 배푼 것이라고. 난 개인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한다.



본문



해는 참 고마운 존재이다. 절기에 따라서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매우 정확한 때에 매일 같이 아침에 우리를 찾아왔다가 저녁이면 슬그머니 집으로 간다. 너무도 조심스럽게 사라져서 햇살이 사라지는 것을 제대로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서 창밖을 쳐다보면 이내 해에서 나온 빛은 주변 공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대신 인위적인 빛들이 주변을 듬성듬성 채우고 있다.


아침에도 해가 고맙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거의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내가 기상하는 시간에는 햇살이 아직 나를 방문하기 전이다. 저 멀리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겠지. 출근이나 외출을 준비하고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햇살은 나를 떠날 때처럼 어느 순간 내게 찾아와 있다. 자동차 운전석 좌측 창과 전면 유리창을 통하여 눈부신 햇살이 저 멀리 도시공간을 가로질러서 내게 달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행복감과 따스함 그리고 편안함을 느낀다.


내게 밝고 따스한 빛을 줘서 일까? 아니면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막막한 상태였던 내게 밝아져가는 시야를 제공해 주기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햇살의 출현은 마치 조용한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거나 공상을 하는 순간 어여쁜 아내 혹은 애인이 커피숍 문을 열고 짠! 하고 나타날 때에 느낄 수 있는 감동과 비슷한 느낌을 선사한다. 해가 뜨고 다행히 날이 맑아서 햇살을 볼 수 있는 날이라면 난 늘 그러한 감동을 느낀다.


어디에 내가 존재하건 햇살은 내게 선물을 준다. 계량할 수 없는, 설사 거대한 계량기나 측정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잴 수 없을 정도로 큰 선물을 준다. 그것도 거의 매일 매일 무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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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좋아하는 화초를 몇 개 샀다. 작은 프라스틱 화분에 담긴 개당 1천원 혹은 2천원 하는 허브를 산 것이다. 로즈마리 2개, 페퍼민트,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사과향 허브. 이렇게 네 개를 샀다. 화분을 깨끗이 씻고 동네 다이소 매장에 가서 개당 500원짜리 프라스틱 화분 받침을 사서 거실에 들여놨다. 지난 일요일 오후엔 재질도 약하고 색도 보기에 좋지 않은 황토색 프라스틱 화분을 비교적 견고한 재질(무슨 돌인지는 모르지만 석재로 만든 중국 수입품)로 제작된 화분을 2개 구매해서 분갈이를 해 주었다.


화분용 흙 2.5kg을 1천원에 구매하였고, 배수가 잘되는 알갱이 형태의 화분용 흙 역할을 하는 돌알갱이를 역시 1kg에 1천원을 주고 사와서 두 개의 화분을 새 화분으로 교체하였다. 역시 뭐든 투자가 되어야만 좀 보기에도 좋은 것인지 비록 매우 염가로 개당 3천원짜리 화분과 흙 2천원, 도합 8천원을 들여서 두 개의 화분을 분갈이 하였지만 정말 아름답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들을 보는 내 얼굴도 그러하였을 것이지만 새로운 집인 새 화분속에 입주한 페퍼민트와 로즈마리의 모습이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새집을 장만하고 거실에 좋은 소파를 들여놓고 거기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서 만족한 표정을 하고있는 아빠의 얼굴과 같으리라.


그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햇살이 필요하다. 따스한 햇살이 없다면 페퍼민트와 로즈마리는 이내 힘과 생기를 잃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로즈마리 키우는 법을 검색해 보고 적당한 위치인 베란다에 이동시켜 놓고 맑은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도록 해놨다. 이제 불과 2일 밖에 지나지 않아서 아직은 기운차게 어깨를 편 화초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슬그머니 햇살이 몇 일만 우리 아파트의 베란다를 다녀가면 그 화초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몰라보게 건강해져 있을 것이다.


햇살은 그 기능과 효과가 매우 다양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원소에게 미칠 것이다.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햇살이 끼치는 영향은 너무 거대하여 아무리 큰 캔버스로도 그 거대함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미지의 거대함 속에서 발현되는 햇살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영향을 우리게에 주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인간(특히 대한민국 직장인 인간)은 햇살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인식하지도 못한다. 간혹 인식을 하긴 하겠지만 햇살의 존재와 영향 그 중요함과 소중함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맑은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사치로 여길 정도로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고 맑은 밤하늘 속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볼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정신적인 여유도 없다. 그러니 햇살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가 서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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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내 상처에 생긴 화농을 아물게 해주고 소독해 주는 역할도 하고 곱게 설거지 해놓은 식기 속 세균을 없애기도 한다. 모처럼 맑은 날에 기분이 동하여 베란다를 깨끗하게 물청소 해놓은 후에 30분 ~1시간만 지나면 마른 수건으로 바닥을 박박 닦은 것처럼 내 대신 물기를 전부 증발시켜 버리기도 한다. 시력이 저하되어 잘 보이지 않는 책 속의 작은 글씨도 더 밝고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개인 라이트를 비추어 주기도 한다. 환절기라 날이 선선해 져서 간혹 기침이 나오거나 으슬으슬 할 때에 베란다가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햇살을 쬐면 온찜질방에 들어가 앉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베란다 밖에 보이는 많은 수목들에게도 동일하게 볕을 보내서 그 생명들이 숨쉬고 더 크게 자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다. 그 힘을 받은 많은 생명들을 보는 나는 또 2차적인 힘을 받는다.


이렇게 나의 집 안밖으로 햇살은 그야말로 열일을 한다. 매일 매일. 수억 년동안 해 왔을 것이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자연은 고맙고 감사하다. 너무도 많은 감사할 부분이 있지만 햇살에 대한 감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해야 할 것만 같다. 오늘도 햇살 때문에 기분이 좋았고 오늘도 ‘햇살님’ 때문에 좋은 생각과 감사를 조금이라도 더 하게 되었으니 햇살은 어찌 보면 인생의 선생님 역할까지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살면서 감사함을 배우는 것도 아주 어려운데 그런 내게 감사함을 알게 해 줬으니 말이다.


점점 날이 겨울을 향하여 가면 갈수록 햇살의 체류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그러나 섭섭하지는 않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었고 또 조금 있으면 언제 줄였냐는 듯이 방문하여 머무는 시간을 조금씩 더 늘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나를 찾아와서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깊게 생각하게 해 주고 만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짧아져 가는 햇살이 그래도 아쉬우니 이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슥하고.




나가는 글.


오늘 날씨가 참 맑고 따스하다. 4월의 봄날이다. 소소한 나의 글을 다 읽었다면 이젠 잠시 눈을 창으로 돌려서 빛을 더 직접적으로 느껴보시라. 그리고 그 느낌이 당신의 영혼 깊숙이 베이도록 충분히 즐겨라. 향후 10년이 지나도 그 느낌은 여러분 가슴속에 진한 잔향을 여전히 남기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영혼에 그 잔향이 더 깊게 베일 수 있도록 나가는 글을 짧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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