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알림과 라이킷
2024. 04. 14
들어가는 글.
휴대폰 진동으로 느껴지는 라이킷의 존재가 내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오늘 불현듯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난 9일간 잊고 있었던(오지 않으니 잊을 수 밖에) 회사의 이메일 알림과 같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 라이킷이었다.
내가 상실한 소속감을 라이킷에서 느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불과 6일밖에 되지 않은 ‘야매’ 작가이지만 그 시간동안 내 수준에서는 적지 않은 글을 올렸고 그에 대하여 친절한 작가님들의 온정이 ‘내 기준으로는 상당히 많이’ 라이킷의 형태로 다가왔다. 바로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라이킷에 대하여 별 생각이 없고, 그냥 고마운 마음만 있었다면, 이젠 그 라이킷이 내게 약간의 소속감을 준다고 생각하니 나의 고마움이 한 층 깊고 커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여 라이킷만 얻기 위하여 관심을 끌 만한 주제를 골라서 글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게 맘대로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나의 가치관과 개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나의 글을 써 내려갈 예정이다. 큰 기대를 하는 순간 이 글쓰기 작업은 내게 더 큰 부담과 천근의 무게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매우 긍정적인 형태의 소속감을 내게 선물해준 라이킷 ‘기능’에 감사하다. 그리고 내게 따듯한 공감을 보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깊이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본문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의 연구로 널리 알려진 학습을 통한 조건 반사 반응에 대하여 들어봤을 것이다. 최소한 ‘파블로프의 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계속 반복적 자극을 주니 그에 맞춰서 새로운 반복적 반응을 하더라는 내용이다.
검색을 해 보니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설명이 확인된다.
‘조건반사 연구를 통하여 특정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던 자극(중성자극)이 그 반응을 무조건적으로 이끌어내는 자극(무조건자극)과 반복적으로 연합되면서 그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특정 자극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현상중에서, 그 자극과 이에 상응한 반응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능과는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습을 통해 조건반사 반응이 새롭게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출처: 위키)
* 그림 출처 : 네이버 검색
이해는 대충 되지만 역시 내겐 어렵다. 그래서 내 수준에 맞게 간단하게 설명하면 “뭔가 보상을 해 주면서 계속 어떤 행위를 하도록 유도했더니 나중엔 구체적 보상을 해 주지 않고 그 행위를 상기시키는 자극만 줘도 그 행위를 하더라” 라는 것이다. 4줄을 2줄로 줄였으니 좀 더 손쉬운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는가? 직장인이라면 말이다. 나의 경우는 이메일 이었다. 급하고 중요한 일을 한 기간이 꽤 되기 때문에 난 휴대폰에 이메일 도착 알람 기능을 24시간 켜 놨었다. 그래서 그 알람이 울리면 회사에서는 당연하고, 집에서건 휴가지에서건 친구와의 개인적 약속 장소에서건 그 알람에 반응하여 메일을 읽고 필요한(반복적으로 자극 받은) 일을 했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특정 자극에 노출되어서이겠지만 그에 따라서 행위하도록 나의 정신과 몸은 자동 실행 상태로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보상을 해 주지 않아도 하도록 프로그램 된 점’ 이다. 물론 급여는 받으면서 일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시간외 수당도 받은 적이 없고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일을 했지만 그 역시 보상을 받아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수십년 동안 이메일 알람에 반응하면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리고 30년의 시간이 지나서 그 알람이 꺼진 후에 약간은 안절 부절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마약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내 등에 매달려서 나를 조정하던 줄이 끊어져버려서 내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나 스스로 줄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까먹고 있는 것이다.
이 반응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끊어내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론 전혀 반응(이메일 알람)이 없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나의 습관 그리고 나의 ‘의미없는 갈증’은 해소되고 있다. 완전히 다른 결이긴 하지만 요즘 내게는 또 다른 반복적 자극이 가해지면서 나의 반응이 서서히 프로그램화 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메일이 아니라 Brunch의 라이킷이 그거다. 라이킷의 기능이나 효과 그리고 목적과 상관없이 라이킷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어떤 자극을 반복적으로 주면서 그 자극이 왔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하고(누가 라이킷을 눌렀는지 확인하고 그 작가의 글을 확인하는 작업) 그것이 반복될수록 어떤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라이킷을 받고자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라이킷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글을 써서 올리면 몇 분의 친절한 작가님들이 라이킷을 눌러준다. 그리고 그게 내게 알림으로 오는 것이다. 그 알림은 라이킷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제 퇴직한지 겨우 9일밖에 되지 않은 내게는 강력한 추억을 소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내가 마치 새로운 직장을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물론 급여가 없기 때문에 그정도로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소속되어 있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의 외로움과 나의 홀로됨은 위로를 받게되고 그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소외감과 고독감이 감소하는 느낌까지 받는다.
이메일의 존재가 사라지고 라이킷이 그것을 잠시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난 나의 전 소속에서 소속감을 잃고 새로운 소속, 새로운 자극을 찾은 것은 아닐까? 회사의 이메일과 라이킷은 태생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다른 알림이다. 완벽하게 새로운 자극일 수도 있다. 그 자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과거 소속감에 대한 향수는 옅어질 것이다. 사실 이미 많이 옅어질 대로 옅여지긴 했다. 딱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은 거기에 집착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에건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무시해서도 않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자세가 좋지 않을까? 라이킷이 많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위로 받을 것이다. 반대로 라이킷이 적으면 나의 글이 타인의 공감을 별로 얻지 못하는 점에 대하여 돌아보고 다시 내 글을 다듬는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가 맨첫 글을 올렸을 때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공간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의 말을 했었다. 좀 더 소중한 공간으로 만들려면 독자의 공감을 조금이라도 더 이끌어 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정 정도의 노력까지 굳이 집착이라고 낙인을 찍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끝
나가는 글
사람들은 모두 어떤 자극에 반응한다. 나도 그렇다. 특히 뭔가 보상을 받고 그에 준한 행위를 할 경우 보상이라는 자극에 따라서 그 행위를 지속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직장이 딱 그 형태이다. 급여를 매달 받고 만족한다. 그 만족도가 지속될 때까지 답지한 자극에 반응(일)하면서 내게 주어진 삶의 일정 부분을 할애한다. 자극의 강도가 거의 없어질 즈음(월급이 다 떨어져 갈 때) 새로운 자극(다음 월급)이 도달한다.
그러면 우리는 또 그 자극에 반응한다. 너무 비약이 심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소모하고 있지 않을까? 그 자극을 스스로 헤어나건 혹은 자극을 주는 주체가 더이상 자극을 주지 않겠다고 이별을 선언하건 그 어떤 식으로든 그 자극이 끝난 사람은 공허감을 느끼고 어쩔 줄 몰라한다.
그래서 그 자극의 종료와 더불어 새로운 자극을 향해서 떠난다. 구직이다. 너무 우울한 이미지로 퇴직과 구직을 묘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인간은 끝가지 자극에 반응하면 삶을 살아낸다. 자극에 대한 반응을 하면서 수십년을 살아냈다면 이젠 내가 좀 더 주체적으로 자극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오해 마시라 자극을 위하여 새로 사업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하하고 가치있어하는 것을 이젠 좀 찾아 보는 것이 어떨까? 해도 해도 질리지 않고 해도 해도 힘이 들지 않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회사 일을 하면 할 수록 힘들다. 노는 것도 너무 오래 하면 질린다. 그것 말고 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각자 찾아야 할 것이다.
난 글쓰기에서 그것을 찾았다. 결과물의 수준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하루 5~6시간씩 글을 써도 질리지가 않는다. 일단 지금 그렇다는 것이다. 이 역시 총량이 있으니 너무 과하면 쓰기를 줄이거나 멈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100%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고 나름 가치도 있다고 느끼는 중이다. 딱 하나, 물적 보상만 없다. 그러나 상관없다.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 애초에 경제적 가치 창출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제적 가치까지 창출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