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회생 작업
방금 장모님을 집에서 약 6km 정도 떨어진 계양역에 모셔드리고 집에 막 들어온 참이었다. 딱히 급한 일도 없으시면서 하루만 머물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내가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는 장모님이 어제 끓여 놓으신 미역국을 작은 그릇에 퍼담고 있었다. 점심에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간단히 식사를 하기 위함이다.
장모님은 어제 오래 간만에 오셔서 저녁에 몇 가지 음식을 해 놓으시고 서둘러서 집으로 가셨다. 무채 무침, 고등어 자반 졸임, 미역국 등을 해 놓으셨는데 특별한 것은 아니고 평상시 식사할 때 먹는 평범한 반찬이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에도 간혹 오실 때 마다 반찬을 해 놓고 가셨었다. 그때도 양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은 기본으로 냉장고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곤 했었다. 교사인 아내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고 저녁도 자주 밖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거의 반찬에 손을 댈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잘해야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집에서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가끔 준비해 주신 찬이 거의 줄지 않은 상황에서 장모님이 오시는 일정이 잡히면 냉장고에 보관중이던 장모님표 반찬을 해치우기 위하여 이삼일 동안 계속 먹어치우곤 했다. 물론 그 담당은 나였고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은 없다. 따라서 장모님은 당신이 만들어 주신 반찬이 냉장고에 방치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신 적이 없다. 어찌되었건 꽤 오랜 기간 동안 오실 때마다 정성스럽게 찬을 마련해 주신 점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은 적은 없다. 내 입장에서는 일찍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역할을 해 주신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대별로 입맛이 다르고 특히 연세가 들어가면서 미각이 점차 둔해지기 때문에 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쉽게도 장모님 역시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일단은 나와는 한 세대가 차이 나기 때문에 맛에 대한 기준도 약간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긴 하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동일한 반찬의 맛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5년은 넘은 것 같다. 가랑비에 옷이 젓듯이 조금씩 조금씩 맛이 변하더니 과거엔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반찬인데 이젠 전과 비교하여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내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애둘러 표현했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젠 맛이 없다는 말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매우 건강한 맛으로 변해버렸다.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은 그냥 심심한 맛을 내거나 아니면 가끔은 엄청나게 짜거나 하는 양 극단을 오가는 맛을 내는 경우가 잦아졌다. 사실 어제 준비 해 놓으신 반찬도 동일한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큰 장점이 있는데, 바로 아무리 맛이 없어도 잘 먹는다는 것이다. 홍어로 파스타를 해 먹을 정도라면 아마 상상이 될 것이다. 홍어 파스타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전국에서 하는 곳이 한 두 곳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음식이다. 너무 비싸거나 조리하기 어려워서는 물론 아니고 찾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희귀할 수 밖에 없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먹기가 상당히 거북하고 쎈 음식이기 때문이다.
홍어 파스타 요리를 하는 동안 온 집안은 땀에 절은 상태로 최소한 일주일은 습한 구석에서 방치된 누렇게 색이 바랜 양말에서 나는 구린내보다 최소한 세 배는 강한 역한 냄새로 가득차게 된다. 이정도 묘사라면 그 냄새가 조금은 느껴질 것이다. 삭힌 홍어는 열이 가해지면 더 심한 냄새를 풍긴다. 홍어전을 먹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것이다. 몇 년 전에 좋아하는 회사 후배가 내가 홍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품질이 좋은 홍어를 잔뜩 보내준 적이 있었다. 회로 양껏 먹고 또 일부는 나누어서 역시 홍어를 좋아하시는 장모님께 드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많은 양의 홍어가 남아서 냉동 보관을 했는데 그걸 간혹 가다가 한 팩씩 꺼내서 홍어 파스타를 해 먹은 것이다. 타인에게 권할 맛과 향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맛이 떠오르고 간혹 해 먹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삭힌 홍어 파스타는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홍어의 암모니아 성분을 희석하려면 막걸리나 사이다를 먹어야 하지만 왠지 파스타형태의 음식은 와인이 맞을 것 같아서 한 번 시도해 봤는데 나쁘지 않은 마리아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극과 극을 달리는 향이 마주치면서 와인의 향과 맛이 극대화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홍어가 아니라 홍어 파스타까지 해 먹을 정도면 내가 음식을 즐기는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와같이 새로운 음식을 좋아하고 한 마디로 음식에 대하여 전혀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어떤 수준의 요리가 나와도 일단 잘 먹는 편이다. 게다가 의도적이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장모님이 최근에 추구하시는 맛인 '건강한 맛'은 심심하고 조미료가 덜 들어간 자극이 적은 음식이기 때문에 먹어도 속이 편안한 장점이 있기도 하다. 오히려 너무 강한 양념을 한 경우에는 속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속에 부담도 적고 건강하기까지 한 맛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미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적게 함유된 그런 '반찬'은 풍부한 맛을 구현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장모님을 계양역에 모셔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냉장고 속에 남겨진 고등어 자반을 어떻게 업그레이드를 할지 생각했었고, 나는 매운 청양고추와 사탕수수 원당을 추가하여 맵고 단 맛을 추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필요하면 고추가루를 조금만 더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맛을 일부만 조정해도 다른 수준의 반찬이 되기 때문에 그런 보완 작업을 해서 저녁 식사 때에 반주와 함께 하면 나쁘지 않은 식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면서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침 아내가 미역국을 퍼담고 있었던 것이다. 막 거실로 들어서는 내게 장모님이 해 놓으신 미역국을 퍼담으면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도저히 맛없어서 못 먹겠어. 방금 어제 사온 밀키트 미역국을 여기에 부어 버렸어. 이젠 좀 먹을만하네.'
아내는 평소 늘 장난기가 어린 재미있는 표정으로 말을 하곤 한다. 초등학교에서 1학년만 오래 전담해서 그런지 어린애 같은 말투와 표정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처럼 된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도저히 맛 없어서서 못 먹겠어' 라는 말을 할 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등어 조림에 청양 고추와 사탕수수 원당 그리고 고추가루를 넣어서 회생시키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아내는 온갖 양념이 범벅이된 시판 밀키트 미역국을 쏟아 부어서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장모님의 따뜻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만든 반찬인 것도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 반찬이 맛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인 것을 부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추가 조치를 취한 것이다. 죽어가던 반찬의 회생 작업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장모님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미역국'은 이렇게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곧 동일한 정성과 사랑으로 조리된 '고등어 자반'도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장모님의 큰 딸을 아끼는 마음과 정성 그리고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반찬인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맛만 약간 변할 따름이다.
사실 미역국이나 고등어 조림은 매우 간단한 요리이지만 그래도 막상 하려면 몇 가지 공정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요리를 하려면 손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집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요리를 하는 것을 싫어하고 귀찮아 하는 것일 것이다. 배달시키면 금방 조리된 요리가 집으로 달려 오는데 굳이 더운 여름에 뜨거운 열기를 견디면서 음식을 할 필요가 있겠냐는 말은 그래서 당위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모님은 그런 불편함과 어려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면서 정성과 사랑을 담아서 요리를 해 주신 것이고 이것은 귀찮은 전(前)공정을 완벽하게 처리해 주신 것과도 같다. 다만 나와 아내가 장모님께서 99%까지 전(前)공정을 완성시킨 반찬에 약간의 수정만 가해서 우리의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재탄생시켰을 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장모님의 손맛은 이렇게 계속 변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여 음식을 계속 하실 수 있다면 앞으로도 최소한 몇 년은 손맛이 더 변할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맛이 변하든 장모님의 반찬은 계속 먹고 싶다. 세월과 함께 아무리 맛이 변한다 해도 나는 계속 그 반찬을 남김 없이 먹어치울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어도 그 기억은 그렇게 오래 남지 않는다. 자주 접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장모님의 반찬은 20년 넘게 접해 오면서 내 몸과 마음에 깊게 그 흔적을 새겨 놓았다. 결코 '정말 맛있다'라고 할 수 없는 맛임에도 불구하고 장모님의 반찬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정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 어떤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느낄 수 없는 푸근한 감정이다. 친어머니가 아닌 장모님일지라도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한 가족으로써 정이 깊게 쌓여버린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난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변한 맛을 만들어 내실지 모르지만 난 모두 맛보고 전부 해치울 자신이 있다. 필요할 경우 약간만 손을 보면 되니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하루 하루 세월의 흐름과 함께 노쇠해 가시는 장모님께서 계속 더 건강하게 우리 부부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