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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이라는 이름의 당신의 선택

운명 혹은 숙명의 90%는 내 선택의 결과이다. 아닌 것 같은가?

by Eaglecs

초안 2017. 10. 17. / 2024. 04. 14 수정 보완


들어가는 글.


이 글의 초안을 쓴지 7년이 지난 지금 읽어 보니 살짝 취한 사람이 쓴 글 같은 느낌이다. 알코올 관련 내용이 꽤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목부터 거창하게 숙명을 거론하면서 떠들었다. 그런데 숙명, 즉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은 삶을 살아가면서 경로를 변경하면서 그 양상을 달리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이든 숙명이라고 이름 짓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더 예속된다. 숙명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거기에서 벗어날 생각을 포기한다.


그래서 숙명이라는 단어는 매우 위험한 단어이다. 섣불리 어떤 상황을 숙명으로 단정하지 말자. 숙명은 결국 나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보여지는 양상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당신의 선택으로 숙명을 디자인해 보는 것은 어떨가? 이 글이 온통 술 이야기 뿐인 것 같지만 그래도 쓸 만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오늘도 여러분의 ‘10분 할애’를 기대한다.




본문



오늘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오늘 온 종일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좋은 날씨에 이끌려서 인지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욕을 나만큼 잘하는' 장파트장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공기도 좋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했다. 이야기 주제만 좀 밝은 것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회사 일이 주제가 되다 보니 밝은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직장인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7년이 지난 24년 현재도 장파트장은 여전히 욕을 잘한다.)

오늘은 숙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나의 숙명은 무엇일까? 숙명의 의미는 사전에 따르면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Destiny. 정해 졌다는 것이다. 과연 삶이 정해진 것일까?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지나고 보면 꼭 그런 것만 같기도 하다.


나는 1968년도에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용산에 있는 주한 미군 부대에서 기사(냉동 관련 설비 유지 보수하는 시설쪽이셨던 것 같다)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당시 대부분의 가정주부처럼 전업 주부셨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않았다. 형제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어머니가 매우 알뜰하셔서 절약을 중요시하셨기 때문에 간혹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형편상 부모님이 용돈을 거의 주시지 않았으니 늘 물건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따라서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엔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몰래 꺼내서 쓴 것을 엄마에게 걸려서 말 그대로 '귀싸대기'를 맞기도 했다. 그때 크게 혼이 난 이후로는 한 번도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천성이 도벽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없이 생활하다가 보니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만화가게도 가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적지 않은 금액인 만원짜리 지폐를 겁도 없이 꺼내서 군것질을 하는데 써버렸었는데, 분명히 아버지는 금액이 빈 것을 아셨으면서도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었다. 몇 번 반복이 되니까 그제서야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셨고 악역을 어머니가 대신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전혀 그 문제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었다. 인내의 화신이셨던가. 아니면 그럴 수 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연민과 이해의 감정이 더 컸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게 늘 관대하셨었다.


매우 짧은 기간 동안에 벌어진 일이고 철이 없던 아이 시절의 일이지만 그래도 어떤 가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한 것 때문에 내 기억에서 그 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나 스스로 느끼는 내 약점이라면 약점일 수도 있겠다. 그 문제로 인하여 내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느낌은 40년을 넘게 지속되었다. 다행히 벌어진 혹은 일어난 일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고 그냥 "그런 상황"이 생길 뿐이라는 앎을 갖게 된 이후 그러한 죄책감은 그냥 약간 달갑지 않은 기억으로 퇴화되었다. 아니 그렇게 퇴화시키려고 나는 계속 노력했었다.


내가 그런 가정 환경에서 태어난 것은 어쩌면 나의 숙명이다.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현명하고 인내심 있는 아버지가 계셨었고, 혼을 낼 때는 깔끔하게 혼을 낼 줄 아는 어머니도 계셨었다. 어찌되었거나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상당한 억눌림을 많이 받았던 나는 그러한 압력을 대학생이 될 때까지 받아야만 했다. 아쉽게도 내가 외향적이거나 매우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하거나 탐구하려는 성향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 억눌린 상태를 견딜 뿐이었지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을 탈피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좀 아쉽다. 한 마디로 생각이 없었고, 철이 없었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그래도 뭐라도 핑계를 대자면, 당시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전혀 없었다. 사촌형이 가끔 불러서 격려의 말을 해줬지만 그 형도 겨우 30세 전후의 애송이였다. 그 형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격려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의미있는 조언을 할 수는 없는 형이었다. 그 형도 어렸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바쁜 사람들만이 내 주위에 있었다. 그래서 나도 머리가 텅 비고, 가슴이 식은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정말 하고 싶은 일들 혹은 사고 싶은 물건들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던지 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때는 그러한 간단한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평소에 책을 많이 봤다면 위인전 속의 입지전적인 인물들의 행동을 모방이라도 하려고 했을지 모르지만, 책을 많이 보지도 못했었고, 집안이 책을 보는 분위기도 전혀 아니었었다. 내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환경의 영향을 적게 받고 거기를 탈피할 생각과 행동을 했었겠지만 난 그정도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역시 핑계이긴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행동이나 실천을 통하여 모방할 만한 모습이 쉽게 관찰되는 환경도 전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술을 좀 많이 드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술에 관대한 환경에서 자란 것같다. 아버지는 집에서 식사 시간에 꼭 소주를 드시곤 했다. 그런 모습이 내 머리 속에 완벽하게 각인이 되어서인지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당시 아버지의 생신이 되면 친구들을 거의 7~8명 이상을 불러서 거하게 술을 사시곤 했다. 술과 함께 필요한 것, 즉 엄청날 양의 많은 음식(안주)을 어머니가 해 대셨다. 술은 저렴한 서민 양주인 캡틴큐를 박스로 사서 놓고 드셨고, 와인도 드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음도 준비하여 시원한 White wine을 드시던 아버지와 친구분들의 모습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는 80년대였다. 그때 와인이라니. 난 집의 경제적 상황에서 결핍을 느꼈다고 말했는데 와인이라니 좀 맥락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랬다. 분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맥주와 소주도 당연히 드셨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집에 손님이 많이 오시는 날 정도로만 생각했었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당시로서는 상당히 거한 잔치를 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음식도 꽤 정갈하게 다양한 것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점에서 나의 어머니는 정말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살림을 하셨던 것같다. 한 마디로 "똑순이"셨다. 요즘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집에 친구를 7~8명 데리고 와서 생일 잔치를 할 수 있는 강심장이 몇이나 있을까?


아무튼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라는 것은 잘 안 하게 되고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하고 싶게 된다.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들이 대부분 하지 말라는 것들이기 때문에 하고 싶어진다. 인간 뇌의 약점이다. 그래서 나도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꼭 반주를 들게 되었다. 성장 배경을 핑계삼아서 말이다. 많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도 맞고, 술기운 때문에 잠을 일찍 자는 것도 맞다. 내가 지금 식사 때 술을 먹는 것은 그래서 숙명인 것인가?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러한 모습을 오랜 기간 봐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뇌 속에 술을 먹어야만 한다는 지시를 내리는 회로가 심겨진 것은 아닌가 한다. 단지 차이라면 아버지는 생신 잔치를 제외하고는 거의 소주만 드셨고 나는 주종이 엄청나게 다양하다는 것이다. 소주, 막걸리, 청주, 사케, 와인, 위스키, 칵테일, 각종 담금주, 보드카, 맥주, 소맥, 고량주 등 가리는 것이 없다. 나머지 종류의 술은 내가 모르거나 구하지 못해서 이지 먹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집 곳곳에는 술이 보관되어 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숙명인가? 아니면 나의 나약함의 결과일 뿐인가?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 주려고 해도 분명이 후자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나약하다. 아니 나약한 사람의 비중이 높은 것 같다. 그 높은 비중을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중 하나가 나다. 맞다. 나는 나약하다. 적어도 알코올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의존증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알코올을 좋아한다. 알코올의 맛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을 먹고 나서 약간의 알코올 기운이 돌면 느껴지는 편안함과 느슨함을 좋아한다. 일부 주류의 경우는 향과 맛도 좋다. 특히 와인과 고급 사케 그리고 고가의 위스키에서 느낄 수 있는 향과 색 그리고 맛은 간혹 황홀할 지경까지 나를 인도하곤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는 취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매우 역설적이다. 술을 좋아하고 거의 매일 마시는데 취하는 것은 싫어한다니 말이다. 그래서 늘 임계점을 넘는 알코올 섭취를 하지 않게 된다. 내 건강을 지키라고 내 유전자에 명령이 그렇게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다행으로 생각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군대 생활 중 휴가를 나왔을 때 인하 대학교 후문가에서 술을 먹고 취해서 길바닥에 누워서 친구 홍승범이를 곤혹스럽게 했던 1990년도 이후로 술에 취한 적은 없다. 알코올을 쉽게 접할 수 없는 군대 생활을 하다가 휴가를 나와서 갑자기 술을 먹고 나서 정신을 두 시간 정도 놓았던 것 같다. 맥주 1,000cc 정도밖에 먹지 않았는데, 한 마디로 그냥 "갔다". 정확히 말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땅이 내 몸을 끌어 내리는 느낌을 그때 느껴 보았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회식을 하건 친구들과 먹건 집에서 먹건, 난 취할 정도로 술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약간의 취기와 분위기가 필요할 뿐이지 정신을 잃고 헛소리할 정도 혹은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나약하지만, 아주 많이 나약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최소한 알코올을 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외견상 상당히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너무 철저하게 주량을 통제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너무 완벽주의자라서 그렇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아니다. 나약하게 취한 내 모습이 싫고, 무엇보다 머리도 아프고 속도 나빠지고 다음날 출근하기 불편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게다가 이미 나 자신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을 충분히 잃고 있다. 그런데 술을 통해서까지 나 자신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전술했듯이 숙취로 인하여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두통이 심하게 나는 것도 내가 알코올 섭취량을 조절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술을 숙명적으로 먹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것도 분명히 맞다. 그리고 실제로 술을 잘 마시는 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양을 너무 철저하게 조절하고 종류를 가리지 않는 측면에서는 나의 부친과 완전히 다른 것 같다. 물론 아버지도 양주를 드셨고 간혹 와인을 드시기도 하셨지만, 생신 때나 드시는 것이지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가격대였기 때문에 소주 이외의 주종을 즐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역시 경제적인 이유가 컷을 것이다. 만약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나처럼 매우 다양한 주종을 섭렵하셨을 것이고 아마도 상당히 더 일찍 돌아가셨을 것 같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웃픈' 상황인데, 그런 경제적 제한 상황이 아버지의 수명을 67세까지라도 보장해 준 것으로도 해석이 된다.


인간들에게 숙명은 다양한 형태로 묘사가 가능한데, 나의 경우엔 지금 가장 큰 골치 혹은 고민 중의 하나인 알코올 의존증을 통하여 묘사가 가능하다. 이 숙명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약간 강도는 완화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지켜오고 있는 것처럼 절제한다면 위험한 숙명의 현실화는 좀 지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도 회식이 있다. 그러나 술을 먹진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하는 회식에서는 거의 술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한두 잔으로 끝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남아 있는 많은 술들이 있는데, 그것들의 섭취량을 좀 줄여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내 숙명이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여러 가지 육체적 현상들의 발생을 늦추거나 강도를 낮출 수가 있을 것 같다. 건강 이야기다. 아무래도 알코올이 건강에 좋을 리는 없으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일까? 아니다, 죽을 때까지 가능하면 건강하게 살고 싶기 때문인 것이다. 몸이 아픈 것도 괴롭지만 몸을 그 지경까지 만들어 놓고 그 결과에 고통을 받으면서 그러한 상황에 처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상황이 더 한심하고 가슴 아플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병들어 죽고, 사고로 죽고, 음심 먹다 목에 걸려 죽고, 그냥 길가다 우연한 사고로 죽는다. 어젠 어떤 축구경기에서 골기퍼가 수비수와 충돌하여 죽었다. 이렇게 사람은 죽는다. 죽음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말이다. 그래도 술병으로 죽기는 좀 부끄러울 것 같다. 알코올이 내게 과거 수십 년 전부터 숙명으로 다가와 현재까지 친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이젠 좀 거리를 두면서 지내야 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늘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술은 음식이라고. 그러니 과식하지 말자. 다른 음식은 절대로 과식하지 않으면서 최근 알코올은 좀 과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와인 셀러를 최근 90% 정도 채워 놨는데, 바닥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과하게 즐기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에서 통제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오히려 더 와인의 정취와 깊이를 본질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때에야 비로서 알코올과의 숙명적 만남을 진정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다리시라 나의 사랑스러운 와인들아! 내가 과거와 달리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다가가 너희들과 내가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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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어떤 달갑지 않은 상황을 운명 혹은 숙명이라고 이름 지어 놓고 피하지 말라. 다 핑계다. 그냥 당신이 나약한 것이다. 인정하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


방금 너무 가혹하고 냉정하게 말해서 미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남 탓일 수도 있고, 환경적 요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한 일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 놓고 그 결과물이 좋지 않을 때 숙명적으로 정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 자신에게 면죄부를 발행한다. 자신이 그 결과물의 도출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면서 말이다. 이건 도주이다. 더 심하게 말해볼까? 똥 싸고 물 내리지 않은 것과 같다. 그리고 내 똥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방금 기술한 짧은 두 개의 문장을 읽으면서 똥을 상상했을 것이고 그 똥이 화장실 변기에서 내려지지 않고 머물러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더럽다.


그렇게 내가 저질렀지만 내 탓이 아니고 내가 한 것도 아니라고 우기고 싶은 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적 혹은 숙명적 상황이다. 다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렇지 않을까?


나부터도 과거에 운명과 숙명 그리고 그에 따라서 내가 지금 맞이하는 현실을 그 테두리 안에 가두고 모든 책임을 그것들에게 돌렸었다. 결과는 별로 좋지 않다. 인정하고 그 현실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다시 시작했어야 했다. 물론 다시 시작한 것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운명 혹은 숙명이라고 규정해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있다. 그걸 다시 살필시기가 온 것 같다. 이번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난 또 그 지독한 똥을 싸고 내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더러운 단어로 나가는 글을 마치게 되었다. 나의 글을 읽는 독자에게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 굳이 한 마디 한다면, 그런 상상까지 나를 따라서 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 좀 덜 불편할 것이니 꼭 그렇게 하길 바란다. 이미 상상했는데 어떻하냐고? 그럼 빨리 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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