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3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든 내면적 그리고 외면적 상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예를 들면 학력, 재력, 사회적 위치, 건강 상태, 하고 있는 일이나 직장 등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부자가 아닌 부모님을 먼저 탓하는 사람도 있고 그로 인하여 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어울렸던 친구들이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도 있다. 혹은 선생님 탓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내게 너무 엄해서 혹은 너무 무관심해서 내가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말이다. 물론 신체적, 정신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핸디캡을 받고 출생한 분들은 예외이다. 이건 누가 봐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니 말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기전까지는 주변 환경 그리고 부모님의 재력 등이 성장 과정에서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상당 부분 맞긴하다. 그래서 청소년기를 우울하게 보내다가 잘못된 길로 영원히 빠져드는 사람이 있는 것인데, 반면 그런 기간을 지나고 나서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모든 합법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어려움을 뚫고 나가서 결국 자신의 경제적,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 상태를 조금씩 향상시켜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전자와 후자의 비율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나라 전체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 그리고 신체적 수준(건강 상태나 키)이 나아져가고 있다는 점을 보면 아무래도 후자의 비율이 좀 더 많지 않을까 한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모두 우리 스스로(의 '생각')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세계, 즉 내가 살고 있는 환경, 나의 물리적, 정신적 상태 등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참 유행하던 '끌어당김의 법칙'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면에서 내외부로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모든 상태는 그 사람의 태도와 정확하게 같을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물건의 상태 또한 그 사람의 태도의 또 하나의 표출에 불과하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그 차의 유지 상태를 보면 그 차주의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 유추 가능하다. 누구든 자신의 차 내외부를 보고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납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평소에 정리 정돈을 잘 하는 사람의 방을 보면 그의 머릿속이 어떨지 가늠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차 안에 너저분한 쓰레기들이 굴러다니고, 그 출처가 어딘지도 모를 서류가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면 그 차주의 정신 또한 거의 비슷할 것으로 짐작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은 모든 결과물이 생성되기 위한 출발점과 같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생각'은 결국에는 대상화(물질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생각이 대상화 되지는 않는다. 강력하고 반복적인 생각일수록 대상화가 확실하게 되며,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쳐 버리는 생각은 쉽게 대상화되지 못한다. 생생한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면 결국 그것은 현실이 되곤 한다. 자기 개발 전문가들이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라고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생각속에 견고하게 자리잡게 해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에 김치 볶음밥을 먹을 때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식탁에 차려져 있는 김치 볶음밥을 먹을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 차려주는 것을 먹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할 경우엔, 김치 볶음밥을 먹기 위하여 머릿속으로 먼저 생각을 할 것이다. 김치를 꺼내서 먹기 쉽게 썰고 기름을 두른 펜에서 김치를 볶는 생각, 양파나 파를 꺼내서 다듬어 놓는 생각, 감칠맛을 더해줄 양념류를 꺼내는 생각. 김치가 어느 정도 볶아지면 준비해 놓은 야채를 넣고 마저 볶은 후에 굴소스 같은 것을 더해서 휘휘 저어가며 김치를 마저 볶는다. 그리고 찬밥 혹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 놓은 밥을 가져다가 볶아진 김치 위에 던져 넣고 주걱으로 잘 비벼 준다. 후추를 좋아하니 이쯤 해서 후주를 뿌리고 물기가 별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약불에 계속 비벼가면서 밥알 하나 하나에 양념이 베게 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할 것이 있지만 아무튼 대충 이런 정도의 과정을 거쳐서 김치 볶음밥이 완성되는데 김치 볶음밥을 먹으려면 최소한 이중 몇 가지는 미리 머릿속에서 생각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 생각이 다음 동작을 이끌어 내면서 결국은 김치 볶음밥이 대상화(물질화)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은 결국 대상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더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생각은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생각이 없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먼저 생각이라는 형태로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은 모든 결과물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생각'에 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생각을 긍정적으로 해야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와 관련된 일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 누구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은 너무도 쉽게 부정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인 결과를 두려워하면서 좋은 결과, 긍정적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밥도 먹지 않고 시장기가 가시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이다. Input과 Output이 서로 다르기를 고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황이 너무도 부정적인데 어떻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도 그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단 0.1%의 긍정적 요소라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 실패는 정말로 없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봐서 100점을 받지 못하면 나머지는 모두 실패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90점도 있고 20점도 있다. 20점은 20%만큼 성공한 것이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흔히 '실패'라고 불리우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며 이건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진실이다. 이런 긍정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을 궤변으로 여긴다면 그렇게 여기고 살면 되는데 가능하면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서 처음에 궤변으로 보이는 이 글 속에서 일말의 '그럴듯함'을 찾기 바란다. 이 또한 각 개인의 책임임은 물론이다.
매사에 긍정적 원인을 심으면 그만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삶도 바뀔 것이다. 이 말은 너무도 간단해서 크게 심적인 울림을 주는 강력한 감동이 없는 문장인데, 원래 진리나 진실이 그런 것 같다. 너무 뻔한 말이라서 감정적 울림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진리와 진실에 이끌리지 못한다. 대신 부정적 감정(감정적 울림과 충격이 큰)에 더 쉽게 이끌리는 성향이 높은 것 같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평소에서 내가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바와 똑같은 것을 마음속으로 만들어내는 습관을 들이기만 하면 된다. '습과' 임을 명심하라.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습관'이 된다. 한 두 번 해서는 결코 습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쉽지만 아무나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는 주차장에 차를 대러 갈 때 조차도 "내가 가면 누군가 차를 뺄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 자리에 주차를 하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막상 가보니 아무도 차를 빼지 않아서 주차할 자리가 없다면, "이곳 말고 근방에 다른 주차할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 나가보자"라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 주차할 자리가 없다고 "젠장 내 이럴줄 알았다 !"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주차할 자리가 금새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마주한 상황 속에서 또 다른 긍정적 방향으로 선회를 하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걸 다시 설명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그 문제 자체 보다 해결책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말이다.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없다. 만약 어떤 문제가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그 상황은 '문제'로 이름지을 것이 아니라 '불가사의' 혹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름지어야 할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상황을 이야기하지 완전 불가능함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라는 것은 해결책이 있음을 그 존재의 전제 조건이 된다. '문제'는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황하고 짜증이 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가장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필요 없는 조건이 부정적 반응이며 '당황'과 '짜증'이 바로 그것인데 사람들은 통상 어떤 벽(문제)을 만나면 당황하고 짜증을 먼저 내는 경향이 있다. 그 대신에 우리는 그 상황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해결책을 찾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대응 행동은 자신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므로 결국 긍정적인 결과를 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힘'은 정말로 막강하다. 다만 그 생각이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질 때에만 생각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긍정적)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면(습관화 하면) 기대하는 결과가 도출이 되기 마련이고, 내가 기대하는 수준의 결과나 나오지 않더라도 그 상황에서 또 다시 긍정적 생각을 하게되면 그 결과에 만족하고 또 다른 도전과 행동을 반복하게되어 결국 점진적 성장이 이루어지게 되는 선순환의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앞에서 생각은 물질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오늘 새벽에 생각에 대하여 글을 써 보려고 마음을 먹었고 약 1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생각은 이렇게 '짧은 글 3'이라는 형태로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게 되면서 물질화된 것을 보면 생각은 물질이라는 말이 명확하게 증명이 된 셈이기도 하다. 물론 그 물질(나의 글)이 매우 아름답거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든 생각을 구체화하여 시각적으로 표현되게 했다는 점은 누가 봐도 명확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매일 매일 생각의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서 그 흔적을 찾아보면 너무도 명확하게 여러분이 발휘한 생각의 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시도하여 더 긍정적인 태도를 습관으로 만들어서 삶의 모든 순간을 기쁨과 성취로 채우기를 희망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