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4
18세기 중반에 태어나 19세기 초반까지 산 미즈노 남보쿠라는 일본의 전설적인 관상가 혹은 사상가의 <소식 주의자> 라는 책이 있다. 2022년에 국내에도 출판이 된 책인데 우연한 기회에 일독을 하게 되었다. 제목이 책 내용의 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일단 제목만 봐도 책의 내용이 훤하게 짐작이 되니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모든 덕의 근원을 소식(음식의 절제)에서 찾는다. 그는 책의 전 부분에서 소식(절제)을 외치고 있다. 꼭 음식에 대한 것만은 아니니 기회가 되면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 '사람이나 국가나 모든 패망 이전에는 항상 욕심이 놓여 있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2025년 연말을 향해가는 요즘 관세 문제 때문에 시끄러운 미국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다 동의 할 것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기 위하여 수 년간 전쟁을 범하고 있는 러시아도 떠오른다. 그리고 온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어느 한 나라도 떠오른다. 한복도 자기 것이고 김치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네 땅도 내 땅이고 내 땅도 내 땅이라고 울부짓는 그 나라 말이다. 심지어 스파게티도 자기 나라가 원조라고 한다니 그 '우김'의 끝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론 수 많은 근거와 역사적 사실 그리고 현실적인 상황(실효 지배)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자기 나라 땅이라고 우리는 아랫 동네 바다 건너 사는 사람들도 빼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언급된 이들 나라 외에도 많은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욕심 혹은 위정자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소유하고 빼앗으려고 하더 더 '처 먹으려고'만 하는 경우를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보아 왔다.
미즈노 남보쿠 선생의 말이 맞다면 그들은 '패망' 할 때까지 끝없이 욕심을 부릴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비교적 '소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 일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지이다. 어쩌면 그들의 경우는 욕심에 망상과 자기 과신 욕구가 더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는 몇 개의 나라만을 통으로 가져와서 인용했지만 사실 그 나라들의 '욕심'의 근원은 그 나라 국민 개개인의 욕심의 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지금 엄청난 부채를 안게 된 이유도 과도한 소비와 부의 소유를 추구한 것이 여러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인들의 욕심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면서 현재의 상황으로 미국을 이끌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욕심' 이외의 다양한 요소도 존재 할 것이다. 주역에 나오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것들이 과하면 모자란만 못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과한 소비와 소유의 욕구 그리고 욕심이 결국 이렇게 나라를 근본적으로 어지럽게 만들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나라는 물론이고 온 세상까지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관세의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가 피해자의 입장임이 분명하지만, 우리 나라 국내만 놓고 보면 또 다른 우리만의 '욕심'에 따른 문제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가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돈의 흐름에 따른 가치의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 분명히 자연스럽지 못한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규모 전세 사기를 친다던지, 국민의 토지를 일괄 수용하여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민간 매각하여 분양가를 올리고 건설 기업의 배를 과도하게 채우는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이와같이 비 정상적으로 보이는 상황의 뒷 편에는 반드시 '과도한 욕심'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작은 돈을 지렛대 삼아서 집을 사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걸 무한 반복하여 수 백 채의 집을 사서 전세 놓고 받은 돈을 꿀꺽하고 사라지는 전세 사기범의 행위는 범죄임이 분명하고 그 기저에는 그의 너무도 터무니없는 욕심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들이던 특정 단체들이건 위와 같은 공공의 이득과 안정에 반하는 문제들은 결국 크기의 차이일 뿐 '욕심'의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미즈노 남보쿠 선생이 말하는 절제의 미덕은 결국 중용을 의미하기도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중용 보다 더 절제된 미덕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남보쿠 선생은 약간 모자란 것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데에 있어서도 그는 복팔분(腹八分)을 주장하는데 이는 뱃 속을 8할만 채울 정도로만 식사를 하라는 의미이다.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먹고 위장을 꽉 채운 후 배를 두드리면서 식사를 마친다면 이것은 누가봐도 과하게 식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디저트까지 먹는 경우도 많다. 디저트는 그 기원 자체부터 절제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흔히들 식후 입가심으로 먹는다던지 혹은 소화의 촉진역할을 위해서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디저트는 부와 권력의 과시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설탕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귀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만의 연회가 끝난 후에 귀한 식재료인 설탕이 가미된 과자나 절인 과일을 먹으면서 연회를 마무리 한 것이다. 그런 일종의 '문화'가 현대의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더 폭 넓게 퍼지게 된 것이 디저트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과하게 표현하면 한 마디로 없어도 되는 '문화'일 뿐이다.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한 후에 또다른 농축된 에너지인 디저트를 먹는 것은 과함에 또다른 과함을 추가할 뿐이다.
반면 남보쿠 선생의 권유는 모자란듯이 식사를 하라는 것이다. 한 수저 더 먹고 싶을 때가 딱 수저를 놓고 식사를 중단해야 할 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남보쿠 선생의 말도 비슷한데 그의 말을 완전히 따르자면 이와 같이 좀 더 먹을 수 있고 아직은 약간 배가 덜 찬 느낌이 들 때 식사를 마쳐야 할 것이다.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모두들 딱 한 입만 더 먹자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심지어 딱 한 입 더 먹고 나서 디저트 가게를 향해서 발 걸음을 옮기지 않는가!
약간 결이 다른 이야기인데 투자 활동에 남다른 열의를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경우 특히 '욕심'으로 인하여 손실을 보거나 이익을 극대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들의 투기적 성격(좋게 말하면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은 통계로도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Leverage를 쓰는 미국의 특정 금융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투기적, 도전적, 모험적 성향을 명확하게 설명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첨단 기술과 관련된 기업이나 암호화 화폐와 같은 위험도가 높지만 그만큼 엄청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에 한국인의 비중이 상당하다고 한다. 이는 분명 도전적이고 모험적 성향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욕심'도 과함을 의미한다고 아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적은 투자금으로 더 많은 돈을 얻으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혹시 잘못되어 돈을 날리더라도 그걸 감수하는 과감한 행동이 유독 한국인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굳이 '욕심'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런 성향 때문에 평범한 투자자들은 위험한 투자에 발을 쉽게 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투자 종목에서 손실이 나면 초기에 객관적 정보에 근거하여 손절을 해야 하는데 '본전'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반토막 혹은 상장폐지를 겪기도 한다. 한국 투자 시장의 협소함 그리고 소액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한 일부 불공정성이 있긴 하지만 그 보다는 개인의 욕심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더 큰 화를 막지 못하고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도 한국인이라서 인지 반토막 이상의 손해를 본 적도 있고 상장폐지를 당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인임을 완벽히 증거하는 씁쓸한 사실이다.
절제의 미덕 혹은 절제의 가치에 대한 잡담을 하다가 관세와 디저트 그리고 레버리지 투자까지 이야기를 하게 되어 오늘의 짧은 글은 꽤 복잡하게 된 것 같다.
절제 그리고 절제의 필요성은 우리 삶 속 곳곳에 베어 있다. '적당히 해라!' 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과도하게 친구를 놀리거나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 부을 때 상대방이 차가운 눈과 낮은 어조로 '적당히 해라!' 라고 한다면 나는 그에 대하여 뭔가 절제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의미 한다. 그 순간을 놓치고 계속 나의 태도에 변화가 없게 되면 상대방과의 대화는 단절되고 결국은 파괴될 것이다. 맨 앞에서 언급한 터무니 없는 관세를 삼지창 삼아서 동맹국들을 마구 찌르고 있는 미국, 죄(?)없는 타국을 무자비하게 침공하여 수 많은 사람을 죽게하고 자국민까지 죽게 만들고 있는 러시아. 그들에게 '적당히 해라!' 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미즈노 남보쿠 선생의 말을 빌어야 할 것 같다. '큰 힘은 온화한 것이지 강한 것이 아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