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5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음식에 양념을 가미해서 먹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그 이유가 있듯이 식재료에 양념을 더하는 데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양념이 필요 없는 식재료도 많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눈치를 쉽게 챌 수 있겠지만 음식 본연의 맛 만으로도 충분한 맛을 내는 경우에는 양념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양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양념을 할 이유가 있을리가 없다.
싱싱한 사과를 소금 찍어 먹고 고춧가루 뿌려 먹지 않는 것을 보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나 요리를 만들기 위하여 과일이 가공되어 그 자체가 양념이 되는 경우도 많긴 하다. 그러나 이건 원재료(과일)를 추가 가공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함이지 원재료를 있는 그대로 섭취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튼 주로 음식을 원형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것들에는 양념을 하지 않는데 과일이나 채소가 주로 해당이 된다. 물론 일부 곡식도 생으로 먹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특히 과일의 경우는 거의 양념을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생으로 통째로 베어 먹거나 과도로 잘 다듬어서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과일 통조림을 예로 들면서 여기에 설탕 등 첨가제를 많이 넣는 것은 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설탕이나 첨가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순전히 상하기 쉬운 식재료를 장기 보관하기 위한 것이지 맛을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함은 아니다.
사실 육류의 경우도 생으로 먹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바로 도축한 소의 살점을 육회로 먹기도 하고 신선한 바닷 물고기 또한 회를 쳐서 양념 없이 그냥 먹기도 한다. 진한 지방이 베어있는 신선한 살코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을 낸다. 최소한으로 소금을 찍어서 먹는 경우도 많지만 그냥 생으로 섭취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 식재료가 극도의 신선함이 유지될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육류의 경우는 도축 혹은 회를 뜬 후에 약간의 시간이 경과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그 식재료에 뭔가 가미하여 섭취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중에서 채소와 과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양념을 한다거나 삶거나 혹은 찌거나 굽는 과정을 거쳐서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삶거나 찌거나 혹은 굽는 방법도 삶고 찌고 굽기 위한 장비의 발전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양념의 종류와 비교하면 삶고 찌고 굽는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념은 매우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수 많은 종류로 변천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의 양념 코너에 가보면 적게 잡아도 백 종류는 넘는 양념 혹은 혼합 양념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각의 양념을 서로 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완성된 양념으로 구체화 되는 방식으로 양념의 종류는 끝없이 분화한다. 말이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새로운 형태의 완성된 양념'의 한 종류인 비빔 냉면장을 만들려고 해도 함께 사용되어야 할 양념의 종류가 최소한 5가지는 넘는다. 이런 식으로 양념은 홀로 존재하기도 하고 둘이 혹은 십여 가지 이상이 합쳐져서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기도 한다. 결국 양념은 요리의 종류 만큼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수 천 수 만 가지의 양념 혹은 혼합 양념이 존재한다고 말해도 그리 틀린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음식에 양념을 하게 된 배경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그 시작이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함임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고기에 소금을 잔뜩 뿌려서 항아리에 넣고 선선한 곳에 보관하면 냉장고 없이도 꽤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는데 이렇게 식재료의 장기 보관 목적이 일종의 양념이라는 존재의 1차 목적이었을 것이다.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아깝게 폐기하지 않고 오래 두고 두고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어적 목적으로 생겨났다는 말이다.
그리고 온갓 산나물은 건조하여 보관하기도 하지만 간장, 설탕, 고추장, 식초 등을 첨가해서 장아찌로 담궈서 수 년간 보관해 놓고 먹을 수 있는데 이는 식재료의 장기 보관은 물론 맛의 유지 및 향상 목적까지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양념의 경우 원래 항균 혹은 항산화 효과가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예를 들면 앞서 말한 소금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고춧가루나 마늘 혹은 생강 같은 것들은 항균 효과에 맛을 가미하는 2차적 효과까지 있는 실질적 양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양념은 식욕을 돋구는 효과가 크다. 맛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이것 저것 넣어서 맛을 풍부하게 했으니 당연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식욕이 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숯불구이집 옆을 지나가다가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면 입 안에 침이 고이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식욕이 생기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양념은 허기를 유발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애초에 없었던 허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어떤 요리에 양념을 심심하게 했다면 그 요리의 냄새는 담백할 것이다. 신선한 식재료 본연의 향이 남아 있어서 건강한 음식이라는 느낌도 들 것이다. 맛나 보일 수도 있지만 순식간에 식욕을 촉발시키는 힘은 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숯불구이의 자극적인 냄새는 대부분의 경우 순간적으로 식욕을 부른다. 반면 담백한 야채 샐러드는 왠지 건강한 음식이라는 느낌은 이끌어 낼 수 있겠지만 순간적으로 식욕을 부르기는 힘들 것이다.
이와 같이 양념은 순기능(항산화, 항균 작용, 맛의 풍미를 더하기 같은)이 분명히 있지만 불필요한 식욕을 자극하여 과도하게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즉 과식을 유발하는 역기능 또한 갖고 있다. 무엇이든 적절해야 한다는 중용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양념의 양에도 적용된다. 중용은 삶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정말 만능의 해결사인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모든 양상이 적당하게 이루어진다면 중용이라는 말은 필요가 없었을 텐데 반대로 모든 양상이 늘 부족하거나 과한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중용이라는 말은 이렇게 항상 필요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양념은 개인차가 좀 있긴 하겠지만 과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과하면 반드시 뭔가 추가적인 반대 급부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앞서 예를 든 비빔 냉면장을 너무 맛있게 혹은 너무 자극적으로 만들면 평소 식사량 보다 더 많이 섭취하게 될 것이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소화 불량 혹은 비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실 음식을 장기 보관하고 그 맛을 유지하기 위하여 양념을 한다는 취지로 길게 떠들었지만 우리 인간의 삶에도 다양한 형태의 양념이 존재한다. 음식이라는 단어를 '자기 자신'이라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 '맛'은 우리의 건강, 외모, 능력 등 인간 본연의 자질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훌륭해야 통상적으로 인기 있고 쓰임세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요소들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한 양념은 무엇일까? 옷, 화장품, 건강 관리 방식(영양제 섭취, 운동 시설 이용, 등), 자동차, 등 등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나아 보이게 하거나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것이 해당 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억지스러운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음식과 양념에 대하여 한참을 주저린 다음에 바로 윗 문단에 있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오늘의 글을 쓰게 되었다. 인간에 더해지는 양념도 좀 적당히 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 말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양념도 너무 과하면 결국 음식처럼 역효과를 발생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치장하기 위하여 비용을 지출하면 그건 경제적 문제를 만들게 된다. 과소비가 결국 습관이 되면 그 문제로 형성된 경제적 문제는 매우 견고하게 고착화되어 그 개인에게 영구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수입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지출은 과도한 양념과 다를 바 없다. 너무 과도한 양념이 추가된 음식을 먹을때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를 봐야 할 것이다. 음식 재료와 함께 그 양념을 먹으면 맛이 있으니 처음에는 몇 번 먹다가 어느새 젓가락으로 양념을 음식에서 살살 덜어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게 과도한 양념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덜어내었던 것이다.
글의 맨 앞에 과일과 채소를 예로 들면서 '음식 본연의 맛 만으로도 충분한 맛을 내면 양념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맛나고 신선한 과일은 물로 깨끗이 씻어서 정갈한 접시에 담아 먹으면 충분히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도 그 자체가 훌륭 혹은 적당하면 그렇게 크게 치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늘 몸을 청결하게 하고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물론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이 충분히 멋지고 건강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기는 하다. 꼭 신체 비율이 우월한 잘 생긴 배우만 흰 티에 청바지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차림새를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면 담백한 치장으로도 적당한 품위는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치장의 효과 이상으로 곧게 편 허리와 자신감있는 걸음 걸이 그리고 그의 빛나는 눈동자는 충분히 강력한 치장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즈음에서 드는 생각이 화장품샵에 빼곡히 진열된 화장품들이 대형마트의 양념코너에 진열된 양념과 본질적으로 기능이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나는 스스로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온 세상의 여성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절대 다수의 여성은 매우 건강한 방식 그리고 상당히 합리적인 수준으로 자신을 가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이다. <끝>
(첨언)
글이 길어져서 화장품만 예로 들었는데 남자의 경우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있지도 않은 하차감의 환상에 속아서 소득에 어울리지 않는 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잘 알겠지만 좋은 차가 지나가면 그 차를 보지 누가 운전하는지는 보통 관심이 없다. 설사 그 차가 내 부근에서 정차하여 운전자가 내린다고 해도 나 또한 그 차를 보지 누가 운전했고 누가 내리는지는 그리 관심이 없다. 반면 그 내린 사람의 차림이 단정치 못하고 얼굴이 밝고 온화하지 못하면 멋진 차에서 별 이상한 놈이 내렸다고 생각하곤 한다. 아마도 그 사람은 하차감을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그만의 상상일 뿐일 경우가 많다. 내 생각에 하차감은 그래서 상상일 뿐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에 그 차는 과도한 양념과 다를 바 없다.
과도한 양념은 식욕을 돋군다고 말했듯이 화장품도 쓰다보면 하나 하나 계속 추가하게 되기도 하니 앞서 언급했듯이 양념의 속성과 너무도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요즘도 유행하는지 모르지만 한 때 일본에서 '갸루상'이라고 있었다. 과도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과도하게 얼굴에 화장을 하여 화장이 아니라 특수 분장을 한 것 처럼 얼굴을 도화지 삼아서 '치장'한 여성을 '갸루상' 이라고 했었다. '갸루'는 영어 Girl을 일본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연극을 하기 위하여 분장을 한 것이 아니라 평소 차림으로 스스로를 '갸루상' 수준으로 치장을 한 것은 가히 과도하고 기괴한 초절정 양념 범벅의 정수를 보여 줬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궁금하면 '개그맨 박성호 갸루상'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