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6
누군가를 행복하게 미소짓게 만드는 일은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그 누군든 말이다. 누군가 미소를 짓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혹은 그녀가 무언가에 대하여 혹은 무언가 때문에 만족해 하고 행복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들이 일종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을 미소짓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정말 천운을 타고 났거나 엄청난 노력과 인내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메디언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서 폭소를 유발하는 것 또한 매우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런 종류의 즐거움은 강력한 휘발성을 가진다. 재미있는 순간에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금새 웃음이 사그라지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운이 오래 남는 너무도 즐거운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아무리 길어도 몇 초면 사라진다. 그러나 그런 웃음과 폭소도 물론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큰 웃음은 실제로 존재하는 신체적 고통마저 없어지게 하기도 하지 않는가?
한바탕 큰 웃음은 청량한 탄산음료나 하얀 거품과 함께 시원하게 들이키는 맥주와 같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살짝 따끔한 느낌과 함께 시원하게 순식간에 몸을 식혀 주는 탄산음료와 맥주는 그래서 큰 웃음과 같이 순식간에 우리를 즐겁고 만족스럽게 하지만 그런 느낌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계속해서 탄산 음료이건 맥주이건 반복적으로 들이키게 된다. 금방 사라져버린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맥주의 경우 그 시원한 즐거움과 따끔한 목넘김을 배가 시키기 위하여 소주를 타기도 한다. 아니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행위를 반복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이 끊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계속 마신다는 말이다. 아쉽게도 그 말로는 별로 유쾌하지만은 않다.
반면 '미소'는 짙은 향을 코와 입 속에 잔잔하게 오래 머물도록 하는 와인이나 위스키와 비슷하다. 한 번에 벌컥벌컥 마시는 경우가 별로 없는 와인과 위스키는 서로 알콜 도수가 크게 다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은은한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종류의 주류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둘 다 서둘러 목 속으로 넘기기 전에 그 액체의 아름다운 향과 색을 코와 눈으로 즐긴다. 와인의 경우 심지어 잔 내부 속으로 흘러내리는 와인의 흔적을 '와인의 눈물'이라고 이름지어가면서까지 음미한다. 물론 와인이 와인잔 내벽을 타고 내려가는 속도를 보고 알콜 도수를 가늠하기 위한 구체적 목적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과정까지도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드러나게 된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경우엔 인상을 쓰면서 마시겠지만, 통상적으로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목넘김'이기 때문에 얼굴에 잔잔하고 알듯 말듯한 미소가 피어나게 마련이다.
당신은 향이 훌륭한 와인처럼 혹은 색깔이 영롱하고 향 또한 '기가막힌' 위스키처럼 누군가를 미소짓게 한 적이 있는가? 당연히 기억을 되돌려 보면 많이 있을 것이다. 직장 동료에게서 발견한 적도 있을 것이고, 친한 친구에게서도 많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편의점 직원에게서도 간혹 발견한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매우 친절한 직원의 경우 손님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미소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미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미소가 바로 나의 존재 혹은 행위로 인하여 나오게 된다면 그 기쁨과 만족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바로 기억을 더듬어서 그 흔적을 찾아 보길 권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서 잔잔한 미소를 띄우게 한 적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늘 웃상인 사람은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기 때문에 딱히 때를 특정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농담이다. 진실된 그리고 진정으로 몸과 마음으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껴서 짓게되는 미소는 본질적으로 보통의 미소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런 미소는 외형적으로도 구분이 되긴 하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미세한 파동과 같이 오묘하고 섬세한 그래서 형언하기 어려운 뭔가 모를 차이가 있다. 평소에 짓던 미소와는 약간 결이 다른 어떤 충만한 미소를 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게 내가 말하고 있는 진정한 '잔잔한 미소'이다. 그런 미소를 누군가가 짓게 한 적이 있는지 살펴 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찾아 내야할 조건을 좀 빡빡하게 해 놓으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바라고 바라던 아들 혹은 딸의 대학 입학(물론 원하던 대학의 원하던 학과여야 할 것이다)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바로 그 찰라의 순간 온 몸으로 퍼져가는 전율과 함께 얼굴에 미세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미소가 있을 것이다. 그 찰라의 순간을 지나면 미소는 더 크게 확장되어 온 얼굴에 퍼지게 된다. 이런 순간에 만들어지는 밝은 얼굴 즉 만면에 큰 미소를 띤 상태는 '웃음'과는 완전히 다르다. 잔잔한 미소의 거대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주요 보직을 얻거나 승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내의 얼굴도 미소로 가득해 질 것이다. 자식의 대입 합격 보다는 좀 낮은 수준의 미소일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경우는 어떤가 생각을 해 봤다. 사회적 관계 말고 진정으로 소중한 가정 내의 관계를 이어가는 와중에 누군가(특히 아내)를 미소짓게 한 적이 얼마나 있을까를 생각해 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 장면을 제외하고 더 많은 장면은 떠오르지는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을 뿐 분명히 나로 인하여 나의 아내가 '보통의 미소와는 결이 다른 충만한 미소'를 지은 적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의 나쁜 기억력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달리 생각하면 어쩌면 나의 아내가 워낙 미소에 인색하고 무엇을 가져다 줘도 만족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무덤덤한 성격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읽어 보니 나의 또 다른 핑계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건 아무래도 기분 탓인 것 같다. 아무튼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사람을 미소짓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정말 천운을 타고 났거나 엄청난 노력과 인내를 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어쩌면 내가 천운이 없거나 노력과 인내가 부족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남편 그리고 대부분의 아내가 같은 입장일 것 같긴 하다.
아무튼 한 장면은 기억이 난다고 했는데 그 장면은 최근에 본 것이다. 내 기준으로 보면 정말 진정한 아내의 미소를 본 것이다. 평소에 가끔 짓던 잔잔한 미소와는 완벽하게 차이가 나는 특별한 성분이 대기 속으로 분출되어 내가 몸과 마음으로 그 기쁨과 만족감까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 결이 완전히 다른 충만한 미소 바로 그 미소 였기 때문이다. 그 미소 속에서는 깊은 신뢰와 믿음이 옅보이기까지 했다. 만족감과 행복함도 느껴졌다. 이쯤되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있었길래? 라는 궁금증이 들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별 건 아니다. 앞에서 '천운을 타고 났거나 엄청난 노력과 인내를 해야 진정한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의 경우는 천운이 없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과 인내를 통하여 이룬 것을 아내에게 제공해 줌으로써 '평소와 결이 완전히 다른 진정한 미소'를 짓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보통의 직장인들(특히 가장인 남편)은 비상금 혹은 비자금을 조성한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하고 있다. 적은 금액에서 제법 큰 금액까지 개인별로 다양할 것이다. 액수가 적으면 비상금이고 규모가 커지면 비자금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3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기준에서는 적지 않은 비자금을 조성해왔다. 물론 30년간 지속적인 유입이 있었을 뿐 유출은 한 번도 없었다. 조성의 목적이 '퇴임 후 가족을 위하여 사용한다'라고 분명했기 때문에 퇴직할 때까지 평소에 용돈이나 보너스는 물론 자잘한 투자활동을 통하여 나름 견고하게 축적을 해 왔던 것이다. 내가 언급한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소비 욕구를 참고(사실 별로 그런 욕구가 없기도 하다) 오랜 기간을 인내하면서 조성한 일종의 '기금'을 '일정 부분' 공유해 준 것이다. 절대 액수가 크지는 않더라도 당장 매월 급여가 30%정도 오르고 본인이 받게 될 미래의 연금이 갑자기 60~70% 이상 늘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미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가족의 미래이고 통상적으로 남편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큰 아내의 미래를 견고하게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은 남편이라면 늘 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평범한 남편이기 때문에 늘 그런 생각을 해 오다가 이제 때가 된 것 같아서 준비한 '기금'을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서 배정'해 준 것이다.
이렇게 써 놓은 내용을 보고 정말 좋은 남편, 정말 착한 남편같다는 생각을 일부가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거나 너무 착하게 살면 단명한다고 해서 나름대로 '엉뚱한 일'도 틈틈히 하면서 균형(중용)을 잘 맞추려고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글에서 '중용'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 오늘의 글에도 역시 적용된다.
아무튼 이땅의 남편들은 본인을 위하여 그리고 가족을 위하여 지금 당장 자금을 조성하기 바란다.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말인가?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뭔소리냐고? 그렇다면 미안하다. 그럼 적당한 때가 되면 시작 혹은 도전해 보길 권할 뿐이다. 아무튼 부를 쌓아서 흥청망청 의미도 없이 쓰기만을 위함이 아니라 소중한 가족을 위한 방패막이를 한땀 한땀 제작한다는 생각으로 한다면 결고 쉽게 포기하거나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 도전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더 하자면.....결혼식을 할 때 다들 약속한 것이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무어라고 그 경건한 식장에서 약속했는지 말이다. 나는 서약의 전부는 지키지 못했어도 적어도 배우자를 지켜주겠다는 말 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지켜주겠다고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니다. 난 절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주례사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걸 내가 들었고 그때 약속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는 잘 보고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말이 내 무의식에 너무도 깊에 새겨져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내 이마에 새겨진 깊은 주름은 내 서약에 대한 내가 평생 조금씩 꾹꾹 눌러서 써 온 서명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 밉기만 했던 주름이 그렇게 추해 보이지가 않는다. 괜찮은 생각의 전환이다.
그날 내가 발견했던 '아내의 잔잔한 미소'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 같다. 잊을만 하면 뭔가 계좌에 새로운 숫자가 계속 쓰일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 미소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카톡으로 알림까지 오니 잊을 방도 자체가 없을 것이다. 내가 봐도 난 좀 집요한 것 같다.
내 아내의 잔잔한 미소가 우아한 와인의 향처럼 그리고 진한 위스키의 향처럼 오래 가길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