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미리 머리속을 정돈하고 배려하는 말을 하면 어떨까?
최초작성 2017. 10. 26. 14:12 / 20240410 보완
인간이 말하는 이유 그리고 말이 많은 이유
인간이 보유한 능력은 다양하다. 인간과 기계를 비교할 수는 없으니 인간과 일반적인 동물과 비교를 하면, 보고, 듣고, 피부로 느끼는 등의 원초적 능력 이외에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은 가히 비교 불가일 정도이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를 누르고 지금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느끼는 능력 말이다. 상상은 이미지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상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는 필수 불가결하다.
상상의 예는 참으로 다양하다. 일단, 신이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 물론 신(령)을 느끼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신 분들도 많기 때문에 신을 상상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겠다. 그리고 우리는 사상도 믿는다. 즉, 다양한 분야의 철학이 있고, 유교도 있고 불교도 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와 가상의 개념을 만들어서 인간은 그것을 믿는다. 도덕, 규율, 관념, 법, 등이 모두 같은 것이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끼리 서로 그 존재에 대하여 있는 것으로 믿기로 강력하게 합의한 것이다.
돈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는 그저 종이에 불과한 것을 황금과 바꾼다. 그 종이에 어떤 가치를 두고 믿기로 합의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자화폐도 있다. 종이와 같이 물질화 되어 있지도 않고 그저 서버에 저장되어 있을 뿐인 가상의 가치를 믿는다. 이것은 그야말로 극단적 신용의 한 형태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는 이유는 이렇게 상상을 통하여 개념을 만들어 내고, 그런 도중에 문화를 형성시켜갈 때에 반드시 말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Communication의 한 형태인 신용은 집단적인 상대가 있을 때에만 효용이 있다. 개별적 삶을 살아간다면 인간에게 신용이 별로 필요 없을 것이다. 관계가 생겨야 신용이 필요하고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사회적 관계도 신용에 근거한다. 어떤 권위도 그 권위가 인간 사회에서 인정이 되어야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위치에도 상호간의 인정과 신뢰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다. 삶을 살기 위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언어와 조우하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냥 기특하다는 표현에 불과한 ‘어이구 잘한다’, ‘까꿍’, ‘이거 봐라’ 등등 과 같은 단순한 언어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흘러가면서 복잡한 문장과 만나게 되면 얼마 안 있어서 아이는 인간의 언어에 매우 숙달하게 된다. 인간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언어라는 기호체계 환경에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아기 때부터 울음과, 그 뜻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외침 혹은 소리를 통하여 음식과 보살핌을 요구하며,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구체적으로 대상을 지적하면서 요구 사항을 전달한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눈의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대상을 지목하기도 하지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압도적인 효과가 있는 수단은 단연 언어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대부분 언어를 통하여 표현한다. 이렇게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려고 한다. 본능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처한 사회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은 말을 통하여 뭔가 끊임없이 표현하려고 하고 그 표현을 통하여 원하는 것을 획득하려고 한다.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조직 생활을 하면서 회의를 경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회의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침을 튀기며 말을 한다. 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기 일쑤이며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도 하고 상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할 때에는 더 큰 목소리와 높낮이가 격한 어조로 의견을 전달하기도 한다. 회사 내에서는 물론이고 종종 TV 에서도 쉽게 볼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특히 참여자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의 회의라면 그 중 가장 권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만이 독점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데 회의 시간이 거의 다 소모되지만, 그렇지 않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의라면 그 어느누구 하나 가만히 있는 사람이 없이 거의 전원이 말싸움에 참여한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서 자기의 생각을 남들이 이해하게 하여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뭔가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둘 다 별로의 말하기 형태라고 생각된다.
이런 현상은 아기가 형제들과의 경쟁 속에서 독단적으로 더 많이 엄마의 젖을 빨기 위하여 소리치는 것과 그 근본적인 이유에서는 차이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좀 멀리 간 느낌도 없지 않지만 맛난 밥을 두고 으르렁거리는 개들과도 별 차이가 없다. 아이는 젖이 획득하고 싶은 것이 목적이고 개는 밥을 먹는 것이 목적이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목적은 자기 생각을 남들에게 주입시킴으로써 승리와 성공을 얻는 것이 일반적 목적이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의사를 표현한다는 관점에서는 세 가지 경우가 결국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본능의 영역에 집중하여 조망하면 사람의 행동과 말이 짐승과 별차이가 없다는 점을 간혹 보게되는 점이 약간 슬프기도 하다. 사실 인간도 동물이니까 그런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아이는 울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젖을 먹을 기회가 줄 것이고, 개는 시끄럽게 짖어대며 경쟁자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늘 배를 곯을 것이다. 그러면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어떠한가? 가만히 남들의 의견을 듣기만 하면 그는 어떻게 되겠는가? 투명 인간 취급을 받고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져서 조직에서 퇴출되거나 경쟁자들과의 다툼에서 밀려날 것인가?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즉,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회의에서 소리치면서 자기 주장을 꼭 관철시키지 않더라도 그 회의 참석자의 존재감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는다. 계속 듣다가 핵심적인 부분에서만 의견을 제시하고, 적절하게 대화를 들어주면서 호응해 주는 것이 오히려 존재감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꼭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문학 중에서는 시가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많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에 대하여 절절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시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절제해야 하고 줄여야 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 시이다. 일반적으로 시집은 얇다. 종이마저 덜 쓴다.
극단적으로 나는 회의 중 발언을 시를 짓는 마음으로 혹은 시와 같은 수준으로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너무 함축적이어서 뜬구름 잡는 말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가능한 핵심적인 단어와 문장, 꼭 필요한 말만 해서 회의 시간이 그냥 과도하게 넘쳐나는 말과 소리의 향연이 아니라 절제된 표현과 완벽한 핵심을 찌르는 예리한 문장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회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간혹 시장 바닥에 보따리를 풀어 놓고 하나라도 더 팔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결론도 없고, 정리되지도 않은 내용을 큰 목소리로 감정적으로 내지르기만 한다. 표현과 문장 구성이 예리하지도 않고 아름다울 리도 없다. 그냥 소음이다. 특히 진행자(회의의 주도권을 쥔 사람)의 역량과 성품에 따라서 회의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 아침에 2시간 가량 그런 회의에 참석했다. 거의 매일 참석해야한다. 말의 향연, 많은 말, 복잡한 문장, 비 문법적인 구성, 의미 없는 비유, 전혀 필요 없는 회상(한 이야기 또 하는 것), 좀 과장하면 단 한 단어에도 유의미한 내용이 없는 이야기로 채워진 회의이다. 그래서 난 가급적 입을 열지 않는다. 다 듣고, 머리 속에서 걸러내기 바쁘다. 최근엔 내 귀에 보이지 않는 방음 장치를 한 느낌도 든다. 즉, 안 들으려고 한다. 의미를 찾기 어려운 난해함, 불필요함 등이 주성분인 말을 긴 시간 듣고 있으면 내 머리 속마저 시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잘한 쓰레기로 꽉 차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만이라도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물론 내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내가 그런 질 떨어지는 주재자가 되어 회의를 구태의연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연히 말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나는 회의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의를 한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사전에 제거하면 회의(특히 긴 회의)는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와같이 늘 핵심을 찾고 언제나 요점을 찾고 꾸준히 유의미한 가치 있는 결론을 간단 명료하게 도출 할 수 있도록 말을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요약과 감상 ;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어내고 이기기 위하여(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말한다. 지적, 물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활동이다. 단체(가족, 회사, 무슨 무슨 모임)에서 주도권을 갖는 리더들의 배려있는 말하기가 필요하다. 특히 회사의 리더들은 직원들의 시간을 황금으로 만들지 쓰레기로 만들지 결정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가정의 리더인 부모의 말하기가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 모두들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자. 약간이라도 불편한 느낌이 들면 뭔가 스스로 달라져야 할 사인을 스스로에게 보낸 것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요점은 무엇을 누구와 이야기하건 핵심을 찾아서 간명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좀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이해할 단어와 요점을 찾자. 악다구니를 쓰고 화를 내면서 비난하고 격한 형태로 반론만 제기하는 것은 미숙한 갓난아기 혹은 사료를 두고 싸우는 견공과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나를 다시 돌아본다. 부끄러운 적이 아예 없다고 말 할 수 없음이 아쉽니다. 이제라도 나의 그런 견공같았던 모습을 부끄러운 시선으로 돌아봤으니 앞으론 좀 어른이 되고 사람이 되어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개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