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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생각을 표출하는가?

생각의 표출은 자신을 내 보이는 작업이다

by Eaglecs

최초 작성 2017. 10. 19. 13:44 / 2024년 4월 10일에 보완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Brunch에서의 실질적 첫 글이다. 어제 올린 글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면서, 향후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한 계획과 각오를 전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올린 글이다. 따라서 오늘부터 쓰는 글이 이곳에서의 진정한 나의 글이다. 향후 글의 갯수가 증가하면 카테고리로 정리한다던지 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인 백지 상태이니 기회가 될 때마다 일단 한 편씩 올려가면서 감히 여러분들의 공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나의 글은 약간 지루하다. 글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내심과 배려심이 있기 때문에(?) 이 작자(아직은 작가가 아니라 작자일 수 있다) 뭘 이야기 하려는지 이해하려는 목적에서 끝까지 읽어줄 가능성이 높은데, 요즘과 같이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뭘 하든 감동과 인상을 순식간에 줘야만 타인의 기억에 남는 초스피드 시대에 나의 글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좀 짧다고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긴 편이기 때문에 쉽게 흥미를 붙이고 글의 마지막 문단까지 이끌림을 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라,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시작하는 글조차 이 모양이 아닌가 말이다. 나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기에 이런 형태의 글이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 글을 접하시는 분들의 넓은 아량과 이해 그리고 조언을 바라면서 조심스러운 글쓰기의 발걸음을 떼어 보도록 하겠다. 오늘도 행복하고 빛나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하며...



인간은 왜 생각을 표출하는가?


사람들은 말을 한다. 웃는다. 소리친다. 깊게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뇌를 이용하든지 성대 혹은 깊은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이용하든지 하여 뭔가를 표출하려고 한다. 감정의 표출 혹은 생각의 표출, 주장의 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치기를 좋아한다. 아이들도 하루 종일 재잘대고, 아주머니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온 종일 수다를 떤다. 인간들은 삼삼오오 모여 있을 때면 늘 시끌벅적하다. 심지어 혼자 있을 때에는 사물에 말을 걸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여러 표출 방법 중에서 웃는 것은 재미있거나 기쁘다는 감정을 펼치는 것이다. 소리친다는 것은 뭔가 조급한 상황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깊게 생각하는 것은 그 생각을 다듬어서 뭔가 드러내기 위함이다. 말을 하는 것은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이나 의견을 내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머리나 가슴의 안 쪽에서 입을 통하여, 머리 혹은 몸 밖으로 격정적인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드러내려고 한다. 왜 그것을 드러내려고 할까? 남의 말이나 행동이 틀리건 말건 그냥 자신의 생각은 생각으로만 남겨 두면 안 되는 것인가?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존 본능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내가 어떤 게임에서 이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나의 긴 게임이다. 게임의 첫 단추는 내가 끼우진 않는다. 보통 인간은 부모의 의지에 따라서 생명과 삶을 얻게 된다. 수억의 정자들 중에서 경쟁을 통하여 첫 승리를 거두어야 잉태됨의 권리를 갖게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간은 수정되는 그 순간에서부터 첫 승리의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 작은 단위의 세포가 느낌이나 생각이 있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생명의 단초를 끼우는 순간부터 경쟁을 한다. 시간이 흘러 모체로부터 분리되어 세상 밖으로 태어나면 주변의 달라진 환경과 싸워서 생존해야 한다. 세균과 싸워야하고, 빈번하게 형제와도 경쟁해야 한다. 아이는 젖을 얻어먹으려면 격정적으로 울어 제끼면서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연속인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이 시작되는데, 요즘은 죽고 나서도 경쟁한다. 물론 망자의 경쟁은 아니지만 망자를 배웅하는 자손들은 화장장에서 몇 일이고 부모의 육신이 태워지길 기다려야만 한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사망률이 높아졌고 화장시설은 부족하기 때문에 비롯된 사정이긴 하지만, 아무튼 경쟁은 경쟁이다. 그렇게 우리의 뇌와 전 신체 그리고 의지는 게임이라는 경쟁 구도 속에서 태어나서 익숙해진 후에 끝을 맞이하게 된다.


이와 같이 몇 십 년을 살다가 생명을 다하는 것이 인간이다. 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위하여 경쟁한다. 학급의 대표가 되고 싶어 하고 친구들 무리 속에 들어가서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직장에 들어와서도 앞서 나아가기 위하여 열심히 경쟁하며 일한다. 그래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고 갖고 싶은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인생이라는 긴 게임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판 속에서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 그것이 맞음을 인정 받기를 원한다. 이렇게 우리의 뇌와 구강을 통해서 배출되는 언어라는 형태의 음과 몸짓을 통하여 발산되는 Gesture라는 제2의 언어, 큰 행위나 움직임 혹은 소리도 전혀 없지만, 강력한 보이지 않는 기운을 발산하는 눈매 혹은 눈빛 이라는 카리스마의 화신을 통하여 우리는 인정받고 승리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생각하고 말하고 소리치고 팔을 휘저어 가면서 큰 몸짓을 통하여 의사를 표현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열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생존이라는 동물적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혹은 그 생존 본능 때문에 우리는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쓰고 떠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지금 계속하여 생각을 정리해 가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누구를 굴복시키거나 패배시키기 위함은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 내 생각이 어디까지 미치며 논리적인지 알아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결국 내 생각이 맞는지 조리가 있는지 남들에게 읽힐 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한 학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 결국 이 또한 경쟁을 통하여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본능이 간접적으로 가동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하여 사전에 운동을 하거나 몸을 강하게 하는 전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는 나도 본능적 욕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리라. 내가 인간이고 본능을 가진 생명체인 것이 피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본능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적어도 나로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생존은 힘이 든다. 특히 나로서 생존하는 것이 적지 않게 힘들다. 몸과 마음은 나인데 그 ‘내’가 내 시간을 내 것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나 이외의 조건에 맞추는데 활용하곤 하기 때문에 생존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하고 실제 존재하고 있지만, 나 자신으로서 생존하고 존재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은 상황이다. 그나마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시간 동안은 조금이나마 나로써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싸움을 준비하기 위하여 나 스스로를 견고하게 만드는 과정은 나를 위한 것이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이 시간 만큼은 나를 위하여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니 약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나를 조금 더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렇게 찾게 된 나 자신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또 다른 장을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은 그냥 약간만 내가 왜 계속 내 생각을 표출하려고 하는지에 대하여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나를 위하여 짧지만 잠시 동안 본질적인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도 큰 의미이니까 말이다.


요약 ;


삶은 Game의 무대이며, 여기서 이기려면(만족하는 결과를 만들려면) 내가 옳아야 하고 난 그걸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을 통하여 좀 더 나 자신으로써 현재를 살아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각을 반복하는 것이 생각이고 그것이 표출된 것이 행동, 말, 글쓰기, 등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생각을 표출하는 이유는 죽는 날까지 진정한 나를 찾아서 진실된 나로써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렇게 고귀한 삶을 찾아가기 위한 신성한 사유행위이다. 따라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 보다는 진정한 나를 찾고 나로 살아가기 위하여 신중하게 생각하고 표출하는 것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결국 생각 그리고 거기로부터 나오는 말과 행동 등은 자신을 내 보이는 방식이다. 바로 자신이 그걸로 평가되고 인식된다. 이왕 나를 내 보이는 것이니 가능하면 깨끗하고 정갈한 것이 좋겠다. 화장을 해서 자신을 감추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나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나를 좋게 내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다.


아쉽게도 난 지난 수 십년간 이걸 자주 잊곤 했다. 오늘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니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 조금 더 밝게 비추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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