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만 남기고 나의 공간을 되찾는 작업
2024. 04. 18
들어가는 글
현대인은 정말 많은 물건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애타는 갈증 때문인지 끝없이 물건을 사들인다. 그리고 폐기하고 또 사들인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물건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너무 넓고 경제 상황도 좋아지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도달하는 여러 자극의 유혹을 벋어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욕막을 통제하고 절제하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이다.
어디를 가나 물건이 넘친다. TV를 켜도 수많은 물건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홈쇼핑은 말할 것도 없다. 관련업계 종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제일 꺼리는 방송이다. 그런 물건에는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매혹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물건을 사들인다. 엄청난 기쁨을 느끼면서 그 물건을 사고는 집에와서 포장을 뜯고 몇 번 사용한 후에 대개는 잊는다. 심지어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발견’된 그 물건을 보고 ‘내가 이걸 언제 샀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 꽤 될 것이다.
풍요속의 빈곤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내 기억에 남는 가장 소중한 물건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난 소중한 물건의 개수가 비교적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 수를 더 줄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단순한 것이 좋고 작은 것이 좋다. 그것도 '몇개'만 말이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들이 내 공간의 주인에서 이젠 물러나게 하고 싶다. 아마도 내가 퇴직 후에 집으로 들어와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이젠 집이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더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물건을 그만큼 덜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물건을 드러내고 공간을 얻고 싶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소수의 ‘내 기억에 남아있고 계속 남겨 놓고 싶은’ 물건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공간을 좀 더 확보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본문
나는 물건을 사는 것보다 버리거나 처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물론 정말 탐 났던 물건을 사들이면 그것의 포장을 뜯으면서 잠시 동안은 기분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상당히 짧다. 이렇게 너무도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산 경험이 나도 가끔은 있다. 맞다. 내가 먹을 것이외의 물건을 사는 경우는 빈도가 매우 낮다는 말이다.
2020년 연말에 오래간만에 Active 스피커를 한 조 구매한 적이 있었다. 비싼 외제가 아니라서 비교적 저렴하지만 성능이 꽤 좋다는 평을 받고 있는 오로라 스피커에 대하여 우연히 알게 되었고 이 제품을 기즈모라는 유튜버가 설명하는 동영상을 봤었다. 그리고 그 스피커 제조 업체 사장이 나오는 또 다른 동영상을 보고서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구매를 하고야 말았다. 가격은 398,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집에는 그보다 훨씬 더 비싼 200만원이 넘는 Geneva audio L이 있기 때문에 결코 이 스피커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난 Geneva audio L을 중고로 저렴하게 샀지만 말이다.
Geneva audio L의 경우도 원래 M size로 신품이 있었는데, 그 소리에 만족을 하지 못하여 중고 사이트에서 내가 보유한 크기가 작은 월넛 재질의 Geneva M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약간의 추가 비용을 주고 차액 교환 구매하였었다. 당시 와이프와 함께 우리 집에 그 큰 Geneva audio large size speaker를 힘겹게 들고 들어오던 그의 모습이 기억난다.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 판매자의 아내의 두리번거리는 눈빛과 어색한 분위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당시 추가금이 약 25만원에서 3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판매자는 그것을 별도로 자기 통장으로 보내 달라고 했었다. 현장에서 받을 경우 그 돈은 아내의 주머니로 들어가니 그걸 방지하기 위하여 아내에게는 순수한 교환이라고 거짓말을 한 상태였던 것이다. 용돈을 축적하기 어려운 젊은 가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당연히 소원대로 별도로 송금을 해 주면서 그와 훈훈한 거래를 마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구매한 Geneva Large size speaker는 내 수준에서는 대단한 성능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고급 명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All in one speaker 중에서는 꽤 고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귀엔 너무 좋았다. 신품가격을 고려하면 내겐 결코 저렴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훌륭한 스피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오로라 스피커를 구매한 것이다. 그 즐거움은 상자를 개봉하여 완충재에 안전하게 포장된 물품을 꺼내서 책상 위에 설치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선을 연결하여 소리가 나오자 그때까지 느껴졌던 어떤 기대감에 찬 잔잔한 즐거움이 더 크고 강력한 만족감으로 변하였다. 특히 All in one speaker에서 느끼기 어려운 공간감을 또 다시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은 실로 매우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었다. 그 즐거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감동을 배가시키기 위하여 동사의 앰프도 구매를 하였다. 80~85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역시 신품 같은 중고를 구매하였고, 신품 가격은 97~98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새 제품이었다. 이 제품 역시 받아서 상자를 열고 스피커와 연결을 해서 향상된 음질을 내가 경험할 수 있었던 그 순간 난 더 큰 즐거움을 느꼈고 현재까지도 느끼고 있다. 이러한 물건의 구매는 단순한 삶 혹은 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나 내게서 일어나는 이런 구매 현장은 잘해야 4~5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기쁨과 만족도가 더 큰 것같다.
약 8년 전에는 책을 한 300권 정도 회사에 기부하면서 책장을 절반 정도 비웠던 적이있었다. 사내 도서관을 채우기 위한 책을 기부해 달라는 공문이 있었고 마침 책을 비워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나의 생각과 일치하여 기부하게 되었다. 그 책들은 이제는 내가 없는 그 회사의 북카페에 여전히 내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리를 해 놓고 보니 정말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 후 책장에 보관된 작은 장식품들도 70% 이상 제거하였다. 나머지 30%가 있긴 한데, 이들도 언젠가는 제거하고자 매일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책과 장식 물품을 정리하였고, 옷장의 옷 또한 상당 부분 가져다 버려서 남은 옷가지도 얼마되지 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정말 필요한 것들만 두고 전부 버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면 내 기억에 가장 깊게 세겨져 있는 물건만 남게 되겠지.
그런 측면에서 새 스피커의 구매는 정당화된다. 정말 필요했고, 고가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 원목으로 만들어진 재료의 고급성, 국산, 그리고 높은 음질, 매니아 층들에게서 꽤 인기가 있는 나쁘지 않은 평판, 등 경쟁력 있는 가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여러 장점이 있다. 그래서 정리 정돈에 힘을 쓰던 내게도 그것을 구입하라는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물론 수개월 동안 재고 또 재면서 고민한 결과 어렵게 구매 버튼을 누른 것이다. 구매하기 전에 최소한 3번 이상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고 다시 생각한 후에 그래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당위성이 증명될 수 있다는 생각이고 그러면 그건 사야 할 운명인 것일 수도 있다. 물론 핑계다.
난 정리 정돈을 꿈꾸면서 매일 매일 집에서도 정리를 하고 있다. 회사에 재직할 때에도 내 책상과 서랍을 계속 정리했었다. 퇴직 무렵에는 내 책상이 거의 정리되어 물품의 숫자가 몇 개 없을 정도였다. 마치 퇴직을 예정이라도 했듯이 매일 매일 물건을 버리고 필요한 것은 집으로 옮겼던 기억이 난다. 당시 거의 매일 계속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이걸 버릴까 저걸 버릴까 고민을 했었다. 같은 것 두 개 중에서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보관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고민이 된다면 둘 다 버리는 것이 옳다고 한다. 당시엔 매일 그것을 실천하였다. 아직 다 쓰지 않아서 여전히 글이 써지는 펜 10여개를 버린 날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주가 지난 후에 서랍을 다시 열면 여전히 확연히 늘어난 숫자의 펜이 뒹굴고 있는 모습이 보였었다. 그래서 또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 흔적을 말끔히 지웠었다. 이렇게 복수로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치웠고, 그걸 다 마친 상태가 되었을 때 난 퇴직을 하게 되었다. 매우 적절할 타이밍에 물건을 치웠고 나도 스스로 치웠다. 회사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물건은 사실 거의 없다. 그래도 있다면 ‘4색 펜’ 정도이다. 가장 많이 사용한 물품이기도 하고, 쓰던 펜이 몇 개 내 가방속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의 기억을 담은채 그 4색 펜은 여전히 내 옆에 있다.
그러나 이런 기억은 그냥 단순한 기억일 뿐이다. 거기에서 어떤 아름답거나 행복한 기억을 추출해 낼 수는 없다. 내가 내 스피커를 생각할 때마다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떠올릴 수가 있는데 그 4색 펜에서는 그냥 무미 건조한 느낌 밖에는 피어오르지 않는다. 다 타들어가서 곧 무너질 것 같은 모기향의 재에서 힘없이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느리게 느리게 말이다.
이렇게 정리 정돈을 하나씩 할 때마다 왠지 모를 시원함도 느끼고 허전함도 느끼게 된다. 내 물건이 나는 아니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엔 나를 대신하여 나를 표현해 주는 것이 내 물건인데, 그 물건을 없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 존재도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간 너무 많이 차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물건을 비우는 것 조차 버거워 하는 것이리라. 어차피 모든 물건은 내 것이 아니다. 난 이 세상에 잠시 들려서 뭔가를 잠시 맡아서 사용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물건은 소중히 해야 하기도 하고 그에 대하여 무덤덤하기도 해야 한다. 내 것이 아니니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보유하기로 결정할 때는 정말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물건이 내게 주어져서 보유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만약 내가 그 물건을 선택할 상황이라면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삶을 더 복잡하게 하지도 않고,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쓸데없는 낭비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물건은 그 수가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 그 중에서 내 기억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고 그래서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나의 물건의 수는 소수이다. 앞서 언급한 오로라 스피커, 앰프, 제네바 오디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건이다. 그 다음으로는 티볼리 라디오가 있다. 이건 거의 20년 전에 구입한 것이다. 여전히 사용가능하고 몸체에 비하여 깊은 소리를 낼 수 있지만, 다른 기기를 사용중이기 때문에 보관 중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좀 있다. 과거에 3백여권을 기증이라는 방식으로 처분하고 일부는 폐기한 후에 약 100권 정도만 남겨 뒀는데 자가증식을하는 물건의 속성상 그새 150여권으로 늘어났다. 이중 상당수는 내 책장에서 조만간 치워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제 나의 소중한 물건의 개수가 하나 증가했다. 과거에 동료로 일하던 몇 사람과 중식집에서 간소한 저녁을 했는데 그들중 한 명이 펜 셋트를 선물해 준 것이다. Lamy 샤프와 펜인데 거기에 나의 이니셜이 각인되어 있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선물을 판매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회사에 재직할 때에도 어떤 업체로부터 내 이니셜이 새겨진 만년필을 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업체가 준 것이지만 그래도 그 이니셜 때문인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어제 내가 받은 그 펜 셋트는 더 중요하고 감사한 의미가 담겨있다. 나와 오랜 기간 동거동락한 소중한 동료들이 정성을 담아서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은 내게 매우 직접적으로 와 닿았다. 순간 가슴이 따듯해지면서 그냥 기뻤다. 앞으로 그걸 사용할 때마다 나의 사랑하는 동료 (전부 후배들이다)가 떠오르겠지. 그 펜은 감사하게도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여러모로 만점을 주고 싶은 물건이다.
내 기억에 남는 물건이 앞으로 증가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일부는 증가할 것 같은데, 매우 제한된 숫자가 될 것이다. 이미 나도 모르는 순간에 비교적 오랜 세월을 살아와서인지 물건에 대한 애착은 갈수록 옅어지고만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물건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앞으로는 그 욕심이 더 줄것 같다.
내가 처한 지금의 상황, 즉 퇴직 후에 소득 공백이 생기게 된 상황에서는 간소한 삶이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다 이때를 예비한 신의 뜻이 이미 오래전에 내 유전자에 새겨졌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아무튼 그러한 나의 습관과 성향이 지금의 내 삶의 모습에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다. 어차피 내 기억에 남은 그 소수의 물건도 없어진다. 지금은 내것이라고 내가 우기고 있지만 매우 유한하게 소유할수 있을 뿐이다. 내가 없어지면 그건 누구 것인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겠지만 그도 언젠가는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면 그때는 그 물건이 과연 누구의 것일까? 그 물건은 진정 '누구'의 것이었던 적이 있기나 했었을까?
이렇게 우리는 어떤 물건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집착한다. 우리는 죽을 줄 알면서도 지금 살고 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런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 들어차서 병적으로 물건을 기피할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그냥 적당하게 욕심 부리고 적당하게 즐기면서 가능한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삶은 그렇게 살도록 디자인이 된 것 같다.
끝
나가는 글
그렇게 정리를 한다고 난리를 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방은 어수선한다. 나의 욕망과 집착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 때문이리라. 포기를 모르는 소유욕 때문이겠지.
최근 퇴직을 하면서 30년만에 가장 큰 포기를 했다. 이제 돌아보니 내가 얼마나 큰 포기를 했는지 약간 실감이 난다. 그와 비교하면 물건의 정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이젠 좀 더 정리하고 버릴 수 있을 것같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내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내 기억에 남기고 실질적으로 보관하고 싶은 소수만 남기고' 나머지는 최대한 내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나의 공간을 확보하고 싶다. 가만보니 내 집이 작은 것이 아니었다. 상당 부분의 공간을 나 이외의 물건들이 제 맘대로(?)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법거주자는 사람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같다.
이번 기회에 당신의 주위를 둘러보고 과연 무엇이 당신의 소중한 공간을 갉아 먹고 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그리고 당신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관하고 싶은 것들을 추려보는 계기도 되기 바란다. 의외로 재미있고 내가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가치관을 가감없이 보여주곤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