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게임을 잘 하기 위한 학습서
2. 배우는 사람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p28 ~ p30)
골프의 학습 과정은 앞서 선승이 말한 컵에 비유될 수 있다. 네 유형의 컵이 있듯이, 네 유형의 학생이 있다. 가르침은 채워지는 물에 비유된다.
첫 번째 컵은 뒤집어진 컵이다. 배우려고 왔지만 전혀 열의가 없는 학생을 비유한다. 뒤집어진 컵에 어떻게 물을 채울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컵은 똑바로 세워져 있지만 바닥에 구멍이 난 컵이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 학생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전형적인 경우다. 세 번째 컵은 똑바로 세워지고 바닥에 구멍도 없지만 안이 더러운 컵이다. 아무리 깨끗한 물을 붓더라도 더러운 먼지와 섞이면서 뿌옇게 변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멋대로, 달리 말하면 선입견을 갖고 해석하고 왜곡하는 학생에 비유된다. 끝으로 네 번째 컵은 이상적인 학생에 비유된다. 배운 것을 아무런 편견 없이 올곧게 받아들이는 학생이다. 구멍도 없어 배운 것을 그대로 간직한다. 게다가 깨끗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진정한 성장을 원한다면 네 번째 컵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관연 몇 번째 컵이었을지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째 컵과 세 번째 컵의 중간 쯤 되는 것 같다. 구멍까지는 아니지만 실금이 나서 물이 조금씩 새고 컵 안쪽에 물때가 껴서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는 그런 컵 말이다.
골프를 배울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엔 유튜브 등과 같은 플랫폼이 없었기 때문에 전문 코치에게 레슨을 받기 어려울 경우에는 동료나 골프 관련 잡지를 통하여 골프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다양한 잡지를 스크랩하면서 일관성 없는 '책으로 하는' 골프 공부를 했었다. 그리고 동료 중에서 골프 실력이 좀 더 나은 사람의 조언을 들으면서 '야매'로 골프를 배웠었다. 속어인 야매는 '숨다', '어둡다', '암거래' 등의 뜻을 가진 일본어 '야미(闇, やみ)'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게 변형되어 야매가 되었고, 이는 '정통성이 없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근본없는' 골프를 배웠으니 야매라고 스스로 칭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난 안타깝게도 첫 번째 컵에 해당하는 사람을 간혹 경험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재직시의 경험이었고 그는 그냥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대가 변하여 그에 걸맞는 업무 방식을 도입해야 하지만 20년 전부터 자신이 하던 방식을 계속 고수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도 수십년간 켜켜이 쌓인 본인의 습관과 너무도 뚜렸한 주관(고집)은 그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다.
IT 기술의 발전으로 업무의 간소화와 효율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관련 Tool을 사용하여 업무 효율화를 해야 하는데 그는 기존의 노동 집약적 방식을 끝가지 고집하면서 자신의 업무를 했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 이런 사람은 노동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효율적일 수가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인의 긴 노동시간의 부당성만을 주장하면서 불평을 한다. 새벽까지 고생하면서 자료를 분석하면서 할당된 업무를 결국 완료는 하지만 이미 납기는 지난 상태이고 수작업으로 했기 때문에 오류 투성이인 경우가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그가 네 번째 컵에 이르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몇 번째 컵일것 같은가? 아마도 대부분은 자신이 네 번째 컵일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나랑 비슷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중간 쯤 되는 컵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실금이 가고 약간 물때가 낀 컵 말이다. 우리는 배워도 잊는다. 초집중을 해도 잊을 수 밖에 없다. 핑계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성능'의 두뇌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입력된 정보가 메모리에 그렇게 많이 남질 않는다. 게다가 이미 성인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과 자아가 확고하기 때문에 새로운 입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실금이 가고 약간 물때가 낀 컵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다.
여러분이 네 번째 컵이라면 축하한다. 그리고 실금이 가고 약간 물때가 낀 나와 같은 컵이라고 굴레를 섣불리 씌운 점에 대하여 사과한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엊고 신중히 돌아보길 권한다. 사실 네 번째 컵에 해당하는 사람의 비율은 극히 낮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젠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컵인지도 살펴보면 좋겠다. 나도 이점을 살피지 못한 실수를 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네 번째 컵일 것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그들이 내 생각을 받아 들여주고, 내 의견에 공감해 주기를 기대했었다. 네 번째 컵처럼 편견없이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여 줄것으로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대부분은 나랑 비슷한 '실금이 가고 약간 물때가 낀 컵'이었고, 일부는 뒤집어진 컵도 있었다.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그런 컵들과 잘 대응해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