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 조각난 나만의 추억을 되살려본다
나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내게 음악은 휴식이다. 즐거움의 근원이기도 하다. 음악은 그 종류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음악이 일단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경쾌한 느낌이 들게 하고, 편안함, 안락함 그리고 간혹 힘을 주기도 한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음악을 듣고 있다. 부드러운 클래식음악이 잔잔한 파동을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 내 보내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틀어 놓은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러한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하면 무엇을 해도 마음이 편해지고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의 역사나 각 장르가 의미하는 바 혹은 유명한 Musician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이름 등에 대하여 아는 바는 별로 없다. 따라서 어디 가서 음악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주도하기는 좀 어려운 상황이다. 음악을 듣고 즐기는 목적이 남들에게 어떤 지식을 내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음악의 즐기기 위함이기 때문에 굳이 그러한 지식을 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일일이 세세한 정보를 기억할 만큼 암기력이 충분하지 못한 것도 한 이유이다. 유독 독특하게 내 가슴속에 와 닿는 음악들은 간혹 가수나 연주자의 이름, 그리고 제목 등이 기억에 각인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가 자주 있지는 않다. 의식적으로 이름과 곡의 제목을 외워보려고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별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내게 휴식인 음악이기에 너무 형식적으로 접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별표 전축
내가 음악을 즐긴 ‘나만의 음악 역사’는 제법 된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갖고 계셨던 별표 전축이 기억난다. 클래식한 디자인이었고 어린 당시의 내 눈에는 거대한 스피커가 좌우로 있고(가로X세로 45X65cm 정도) 그 중앙에 앰프가 있는 모델인데 당시인 약 40년전에는 '전축'이 흔한 기기는 아니었다.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무리를 해서 구매하신 것이 틀림 없으리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별표 전축은 천일사 제품이고 태광 산업이 인수했었다. 그게 태광 전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래 모델은 아니지만 대충 비슷했다. 그 전축을 통하여 LP를 들었었다. 흔히 '빽판'이라고 하는 것이었는, 중저가의 중소 음반회사에서 출시한 여러 장의 경음악 LP가 집에 있었고 그것을 가끔 아버지가 안 계실 때, 몰래 꺼내서 들어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내 귀를 통해 들었을 때에도 음질이 그리 높았던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진공관 앰프가 고성능이 아니어서인지 소리가 전반적으로 매우 작았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 내가 음악을 접한 경로는 작은 라디오를 통해서이다. 집에 있던 베이지색 플라스틱 재질의 작은 휴대용 라디오를 통하여 팝송이나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건전지가 비싸서 귀했던 시절이라서 전지가 떨어지면 갈아 끼우지 못하고 그냥 껐다가 몇 시간 후에 다시 켜면 운이 좋으면 몇 분 정도 다시 듣다가 또 꺼지곤 했던 기억도 난다.
시대의 아이콘 '더블데크 카셋트'
그리고 몇 년도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1980년대 초였던 것 같은데 삼성 전자에서 나온 더블 데크 오디오를 아버지가 장만하셨었다. 당시로서는 휘황찬란한 디자인과 미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반짝이는 크롬 도금, 그리고 그 용도를 정확히 모르는 다양한 스위치들로 장식된 중급 오디오였다. 진공관 식이 아닌 전자식 Amplifier가 보급되면서 오디오의 크기가 작아졌고 작아진 크기에도 불구하고 출력은 증가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음량과 음질을 자랑하는 기기였다.
물론 아직은 제품의 질이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국산이었기 때문에 해외 명품하고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는 수준이기는 했다. 대략 30만원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 돈의 가치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임엔 틀림이 없다. 그 오디오에는 더블 데크가 있었고, 그 더블 데크 기능을 통하여 음악 테입을 복사하곤 했었다. 그 오디오는 둘째 누나가 가게(금은방)에서 쓴다고 가져가 버렸고 그 대신 큰 크기의 오디오가 우리 집으로 보내 졌었다.
누나가 가져가 버리기 전에 수없이 '크롬 공 테이프'를 사다가 반복하여 Tape을 복사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잘 알듯이 Tape 복사는 나중에 CD 복사로 진화했고 그다음은 USB를 통해서 MP3 형태로 음악을 보존했고 이젠 대부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음악을 감상한다. 이런 기억이 있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 복사의 대상물이었던 Tape은 LP를 통하여 복사했었다. 당시 레코드점에서는 LP를 Tape으로 복사한 자체적 Compilation tape(모음집)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당연히 불법이었는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묵인되었었다.
그렇게 음악은 형태를 잃어 버리고 Server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형태가 없어진 음악에는 과거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추출해 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CD에 집착을 하는 모양이다.
어느 집에나 있던 '오디오 시스템'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둘 째 누나 집에서 사정상 처분하게 된 오디오(아버지의 삼성 오디오와 바꾼 것)를 내 방에 놓게 되었는데 당시 들었던 음질은 내겐 거의 혁명적이었다. 어떤 오디오였는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앰프에 Hawk이라고 쓰여져 있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어떤 경로를 통해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몇 단으로 이루어진 오디오를 내 방에 들여 놓게 되었다. 인켈인지 롯데인지 태광인지 헷갈리는데, 아무튼 소리의 품질은 그 전에 있던 Hawk audio보다 진일보 되었다. 검은색 스피커를 작은 내 방의 좌우 상단벽 모서리에 부착해서 집이 흔들 흔들 할 정도의 볼륨으로 Pink Floyd의 음악을 듣곤 했다. 물론 어머니로부터 소리를 좀 줄이라는 잔소리가 반드시 나오곤 했었다.
이 때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LP를 모으고 음악을 더 빈번하게 들었던 것 같다. 특히 LP는 당시에도 적지 않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한 장 한 장씩 샀던 기억이 난다. 대략 장당 2,500원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이때가 1985년 전후 이다. 용돈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모으지 못했지만 대략 90장 내외를 모았던 기억이 난다. 1999년 4월 결혼 후에 만수동 형 집에 애써 모아둔 LP를 전부 놔두고 독립을 했고, 독립한 얼마 후에 형수님이 LP판을 가져가겠냐는 전화를 했을 때 그냥 버리라고 했던 것이 후회 된다. 지난 일이니 어쩌랴.
지금도 좋아하지만 당시엔 특히 Pink Floyd와 Alan Parsons Project, Electric Light Orchestra를 매우 좋아했었다. Pink Floyd의 경우는 거의 전집을 사 모아서 갖고 있었다. 가사의 내용도 거의 인지하지 못했고 따라 부를 수도 없었지만 그 웅장한 음과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보컬의 소리를 좋아했었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 보다는 밴드의 음악적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 외에 LP는 아니었지만 Tape의 형태로도 대략 200개 정도는 모았던 기억이 난다. Classic도 제법 있었고, New Age음악인 George Winston을 특히 좋아했었다. Jean Michel Jarre의 음반도 꽤 가지고 있었다. Oxygene, Rendez-vous등 소위 전자 음악의 교본과도 같은 프랑스 출신의 천재 음악가이다. 그가 1948년생이라고 하니 내가 그의 음악을 듣던 1985년 전후는 그도 30대 후반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술의 취향이 매우 특이하고 다양한 만큼 내 음악 취향 또한 그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었다. 깊은 지식은 없었지만 정말 다양한 장르를 들었다. Pop, Metal, Easy listening, European pop (Chanson), Classic, 가요, 국악(김영임의 판소리, 김덕수의 사물놀이, 황병기의 거문고 등), 특히 Progressive rock을 좋아했었다. 특정 영역을 특히 좋아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정말 다양한 장르를 말 그대로 즐겼다. 그러한 취향은 지금도 지속되어 지금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의 장르도 매우 폭이 넓다. 발라드, 클래식, 샹송, 팝, 국내 Rock, Classic pop (임형주), 다양한 OST 앨범, 국악(회심곡), New Age, J Pop, Piano collection, old pop, Classic, Metal, Classic guitar collection, Progressive rock, rock ballad, Various compilation album, Jazz, 등 열거해 보니 그 폭이 어지러울 정도로 넓다.
내게도 마이마이가
고등학교 2학년 전 후로 기억하는데 당시 어머니를 졸라서 삼성 My My 를 샀었다. 대략 8만원 정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로서는 부모님께 적지 않은 부담이었는데 내가 너무 갖고 싶어해서 조르고 졸라서 얻어 내었었다. 그때는 그런 Portable Cassette Player를 사면 청음용 tape을 사은품으로 주곤 했는데 당시 내가 받은 Tape에 Kiss의 Owner of a lonely heart 라는 곡이 들어 있었다. 스테레오 사운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의 분리가 뚜렷한 연주를 하는 곡을 일부러 선정해서 넣었음이 틀림없다. 주황색 스펀지로 감싸인 on ear head set의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분명히 높은 품질의 소리는 아니었을 텐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운드로만 느껴졌었다. 나의 마이마이는 빨간색이었다. 그 후에도 몇 번 기기가 바뀌긴 했지만, 내게 가장 큰 소리의 혁명을 전해 준 것 중에 역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나의 최초의 My My였다. 그 이후로 다양한 Portable Cassette player를 바꿔 가면서 음악을 들었었다. AIWA, Sony walkman도 있었다. 그래도 내 기억엔 My My가 가장 깊게 세겨져있다.
티볼리 라디오
세월이 흘러서 CD를 넘어서 MP3, FLAG 등 고음질 음악 파일의 시대가 열린 후에는 다양한 MP3 player를 활용했는데,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명품 라디오에 대한 기사를 잡지에서 보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Tivoli audio 이다. 2000년도 초반에 구입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미국 직수입이라서 Transformer(도란스)를 사용해야 했다. 수동 다이얼을 돌려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어서 Classic 음악을 처음 틀었을 때 느꼈던 그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렇게 웅장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날 수 있는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내 귀가 고급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한 음악 기기도 그냥 평범한 것이었다. 때문에 당시 내 수입기준으로는 상당히 비싼 금액(약 30만원)으로 구매한 모노 라디오에서 그러한 소리가 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와우! 하고 바로 감탄사를 뱉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Hi end audio로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벼락 같은 순간이었다. 길이 있었지만 난 그 길을 가지 않았고 갈 수도 없었다. 내겐 비쌌다.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비싼 금액을 주고 오디오를 교체한다던지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특별한 감동을 주는 Audio의 존재, 내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음의 세계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던 천금 같은 순간이었다. 고급 사용자에게는 장난감 수준이겠지만 나같은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음질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제네바와 오로라
그 다음에 만난 기기는 바로 그 유명한 제네바 오디오이다. 왠만한 전자레인지 크기의 검은색 제네바는 그 소리가 실로 웅대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관계로 full power로 들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제네바와 오로라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의 음악은 오래 전에 시작되어 아직까지 진행형이다. 아마도 내가 죽는 날까지 나는 음악을 사랑할 것 같다.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내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만족감을 무한대로 제공해 주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음악 밖에는 없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