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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자'이야기

평범한 맞벌이 직장인의 이야기

by Eaglecs





공부하라. 아무리 해도 능력이 안되면 전문가를 찾아라. 빨리.


투자는 욕망의 표현이다. 물론 다른 정의도 가능하겠지만 ‘투자’라는 말을 생각하면 ‘욕망’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기 때문에도 투자를 한다. 나도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투자를 해 왔다. 2006년에 CFP의 도움을 통해 투자를 시작했고, 2024년 현재까지 18년간 계속 해 오고 있다. 결혼 후 초기엔 아내가 관리했고 이후에는 내가 해서 총 6~7년 동안 투자에 소질이 없는 부부가 관리를 한 결과 남은 것은 많은 대출과 거의 고갈된 빈 통장 뿐이었다. 그래서 CFP를 찾았었던 것이다. 공부할 능력도 되지 못하고 일과 병행하여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주변에 투자와 관련하여 성공을 이룬 사람도 없었다. CFP를 내가 먼저 찾은 이유였다.


CFP를 만나기 전인 2006년 초까지 나의 어설픈 ‘투자’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거주용을 포함하여 아파트를 2채나 샀었지만, 모두 손해를 보고 매각했다. 금융비용도 건지지 못하고 손해를 본 매각이었다. 빚더미 부동산을 모두 정리하고 2009년도에 일산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는 딸아이에게 더 안전한 환경,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교육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돈에 대한 투자는 실패했지만 ‘자식에 대한 투자'에는 성공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간과한 것은 일산이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다는 것이다. 예상외로 내 딸은 일산의 놀이 인프라를 잘 활용했다. 당연히 공부보다 놀이에 집중했다.





기회 비용을 계산하라. 낭비도 하지 않는 당신의 통장에 왜 돈이 쌓이지 않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일산에서 11년을 보낸 후에 통근 문제로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는데, 그 기간에 추가로 발생한 거주비, 교통비, 금융비용을 계산해보니 연간 최소 2천만원이 더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생활비의 증가 등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11년간 최소한 2억원이 추가 지출되었다. 실질적으로 오로지 '자식 교육'에 투자된 것이다. 사실 인천에서 일산으로 가면서 올라간 전세금 때문에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서 이로 인한 기회비용 손실도 막대했다. 최근 막상 퇴직을 해 보니 그 손해의 크기를 절감하게 되었다. 물론 인천 송도로의 장거리 통근에 따른 시간 소모는 넣지도 않았다. 이런 환경과 비용을 통하여 딸아이가 좋은 성과를 내기를 기대했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예상대로 되면 인생을 살기가 참 편할텐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일산의 놀거리 인프라를 잘 활용했던 사랑하는 나의 딸이 삼수를 한 것이다. 물론 최선을 다 했으리라 믿는다. 그 최선의 기준이 나와 달랐을 뿐이다. 삼수 이후 일본 도쿄에 있는 '학비가 부담되는' 사립대에 진학하면서 내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추가 부담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4년간 열심히 수학하고 지난 3월에 졸업했고 4월부터는 도쿄에 있는 작은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삼수와 4년간 이웃나라에서의 유학은 내게 3억이라는 ‘자식 교육 투자’를 할 수밖에 없게 했다.





전문가를 찾았고 오래 투자를 지속해 왔다. 큰 수익 보다는 지키는 전략을 추구했다.


아무튼 결혼 이후 경제적인 센스가 별로 없는 우리 부부는 투자에 있어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특히 부동산에 있어서는 완전한 실패를 한 것이다. 맞벌이를 했기에 그나마 버틴 것이지 외벌이였으면 ‘자식 교육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투자에 소질이 없는 것을 빨리 자각하고 2006년도에 한국 CFP 협회에 연락하여 CFP의 도움을 받기로 했었던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한다.

당시 협회로부터 한 분의 CFP를 추천 받았고, 지금까지 18년 동안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시장 금리와 인플레이션에 대략 2%~3% 정도만 더 추가된 소득을 추종하는 매우 안정적 투자 패턴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분과 18년간 투자 활동을 해 오면서 정말 딱 그 수준의 성과를 기록 중이다. 실제로 급여 생활을 하면서 큰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적립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적립을 지속하였고, 대충 약 10년 전 정도 부터 퇴직할 때까지 내 급여의 50% 이상은 저축을 해 왔다.


퇴직을 한 지금 총 순자산은 그래도 당장 취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물론 나의 검소한 생활 패턴이 고려된 것이다. 주식과 채권으로 분리되어 있고 안정적 채권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그리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내가 스스로 투자했다면 절대로 현재의 자산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검소함은 또 하나의 수익원이었다.


난 결혼 후 지금까지 헛되이 돈을 지출한 적이 거의 기억에 없다. 아마 전혀 없을 것같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20년전만해도 노래방 등 유흥 업소가 꽤 흥청댔다. 다행히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 내발로 간 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골프를 치지도 않는다. 해도 업무상으로만 쳤었고, 이젠 그나마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옷가지를 자주 사지도 않는다. 고가의 신발, 시계 등은 아예 관심도 없다. 낚시도 좋아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종류의 소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거의가 아니고 ‘전혀’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금 이렇게 지루한 글을 쓰고 있는 것만 봐도 무슨 취미를 갖고 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독서나 글쓰기 혹은 산책에서 대부분의 만족을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성향이란 말이다. 따라서 나를 절대로 '일반화'할 수 없겠다. 이 글은 그러한 '나'의 이야기이다. 전혀 맞지 않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한다.


내가 가장 큰 지출을 한 것은 스피커와 앰프를 구매한 것 정도이다. 그것도 용돈을 몇 년 동안 모아서 산 것일 뿐이다. 그나마 벼르고 벼르다가 구매했다. 아내로부터 좀 쓰고 살아라, 왜 그러고 사냐는 이야기도 자주 들은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소비를 '극도로 제한'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단 아깝다. 돈이든 물건이든 시간이든 아끼는 것을 선호한다.


최근 김경록 박사가 책에서 썼듯이, 60년대 생은 후진국, 중진국 그리고 선진국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세대이다. 나도 60년대 생이고 따라서 어려서 겪은 후진국의 삶이 뼈속에 남아있어서 인지 나의 몸과 마음이 가난을 기억하는 것 같다. 살아야 할 날들이 아직은 많고, 가족을 지원해 줘야 할 자금도 필요하기 때문에 쓰기 보다는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퇴직한 지금은 그 생각이 약간 옅어지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매우 낮은 소비 성향은 부모로부터의 영향 등 환경적 요소도 있고 타고난 성향적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비에 대한 회의가 커간 것도 나의 아끼는 성향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갔다. 소비는 어떤 형태든 자연 환경에 득이 되긴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줄이는 것이 환경에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별로 사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없다. 물질을 소유하는 욕망의 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다.


돈은 물질이 아니냐고? 맞다. 누가 한 말인데 그렇게 물질이 좋으면 그 물질은 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그걸 더 많이 그리고 가장 간단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며, 그 방법은 물질을 돈의 형태로 보관하는 것이다. 은행 계좌에 불과 몇 비트의 값으로 거의 무한대의 돈을 저장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지 않는가?


내가 현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기껏해야 음악 감상 관련된 것들인데 그것도 몇 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하는 정도이고, 아주 비싼 것은 사지도 않고 갖고 싶지도 않다. Geneva audio L도 내가 미개봉 신품을 중고로 저렴하게 구매한 Geneva audio M와 교환한 것이다. Aurora의 SE VTA 앰프도 중고다. 중고 임에도 거의 1년을 고민하다가 구매한 것이다. 약간 한심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한데,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이 나의 모습이고 나 자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타고난 그릇이 그렇기 때문에 이번생은 어쩔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더 많은 돈을 주고 뭔가 비싼 것을 살 여력은 분명히 되지만, 도저히 구매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골프도 그러게 오래 쳤으면서도 장비 욕심이 없다. 지금 쓰는 것도 2011년에 회사의 상사가 쓰던 것을 물려 준 것이다. 당시 내 골프 장비는 통째로 후배 사원에게 넘겨졌다. 골프 관련 용품은 거의 산 적이 없다. 골프화도 이월 제품을 사서 근 10년을 신고 있다. 아마도 이번 생 동안엔 현재 갖고 있는 골프 관련 물품이 증가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거의 20년이된 장비로 80대도 자주 친다. 선비는 필묵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그래서 참 좋아한다. 나의 판단에 정당성을 강하게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옷도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맘에 드는 이월 품을 싸게 사서 깔끔하게 입는 것을 좋아한다. 한 해만 지나도 절반 가격 이하로 떨어지니 당연히 신품이 나온 후 몇 년 지난 것은 더 싸다. 그래서 자주 사지도 않지만, 사더라도 몇 년 지난 이월 품을 사는 편이다. 이게 어떤 자존감하고도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굳이 액세서리와 같이 밖에 보여지는 물품으로 나를 포장하여 더 멋지고 좋게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무리 포장해도 육체의 액면가격을 속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싼 이월 품이라도 깨끗하고 어울리기만 하면 내가 소화하면 된다. 좋게 말하면 높은 자존감이고 좀 비하하면 뻔뻔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좋은 옷맵시를 얻기 위해서는 몸도 관리해야 하므로 먹는 것도 조절하고, 운동도 하면서 체중을 관리하게 되고, 따라서 건강에도 좋다. 물론 체중도 관리하고 체형도 유지하면서 좋고 비싼 옷을 사서 입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안 산다. 그렇게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만약 엄청난 부자라면? 아마 조금은 더 살 것이다. 갖고 있는 자산이 지금보다 월등히 증가한다면 내가 지금 사고 있는 옷 구매가격 보다 꽤 높은 것을 사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삶을 사는 것이 결국 내 분수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부자가 부자의 소비를 하는 것도 부자의 분수에 맞는 소비이고 내 수준의 사람이 내 수준의 소비를 하는 것도 내 분수에 맞는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이게 中庸이라고 생각한다.


옷도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것은 그 옷의 크기뿐만 아니고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에 맞는 옷은 가격도 구매자의 분수에도 맞아야 한다. 그래서 난 2만원짜리 셔츠, 3만원짜리 바지를 사는 것이다. 이게 내 분수에 맞는 것 같다. 실제로 이 가격에도 이월 품을 사면 상당히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좀 찌질해 보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


‘찌질해 보인다’는 말을 다시 들여다 보기 바란다. ‘보인다’이다. 즉, 내가 보는 것이 아니고 남의 시선에 보임을 당하는 것이다. 즉, 남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어차피 남들은 내가 뭘 입고 뭘 신었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아니 거의 없다. 남이 자신을 관심있게 볼 것이라는 너무 앞서간 오해가 자꾸 자신을 포장하게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미디어에서도 계속 그런 식으로 정보를 조작하여 없는 소비 욕구마저 이끌어 내려고 하지 않는가?


재직시에는 그렇지 않아도 회사에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참는 삶을 살고 있는데, 그런 취향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입고 신어도 그렇게 아주 상거지 같지도 않았다. 물론 순수히 내 착각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다. 난 키가 178CM이다. 몸무게는 70kg. 56세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다. 막말로 그 나이에 배 나오지 않고 머리 안까지면 뭘 입은들 중간은 갈 것이다. 물론 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머리칼이 부족하고 체형에 안정감이 떨어지는 분이 치장을 많이 하시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탈모인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탈모는 죄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다. 그냥 머리칼이 적은 것이고 그런 형태가 일반적으로 높은 매력도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상식이 존재할 뿐이다.





계속 투자하고 아끼는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뭘 했을까? 그냥 모았다. 딱히 뭘 한 것은 없다. 자녀 교육을 지원했고 가족을 위하여 저축을 했고 나의 퇴직 이후의 삶을 위한 방파재를 쌓은 정도이다. 어마어마한 허리케인은 막지 못하겠지만 어지간한 폭풍은 견딜 수 있는 그런 방파재 말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겠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개처럼 벌지도 않았고 정승처럼 쓸 생각도 없다. 다만 나의 형편에 맞는 검소한 소비를 하고 남는 여력은 저축을 하여 다른 쓰임새에 소용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나의 투자 목적, 내가 아끼는 이유가 더 명확히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은 다름아닌 내 삶을 내 가치관에 맞게 살아가기 위한 것 혹은 나의 삶의 방식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난 신발장에 신발도 두어 켤레만 있어도 된다. 옷도 별로 필요 없다. 먹는 것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집도 아주 비싼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정확히는 능력이 부족하지만)마음도 없다. 큰 돈을 깔고 앉아 있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고’ 산다. ‘이러고’ 살면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서만은 분명 아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그래서 저축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꼭 그래서 만은 아니다. 나중에 늙어서 돈이 없어 고생하고 더 힘 빠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것도 분명한 이유이긴 한데, 이게 이유의 49%라면 나머지 51%는 그냥 내가 좀 검소한 편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검소하다는 것은 짜다, 손이 작다, 쫀쫀하다, 인색하다, 등등의 느낌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비록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난 투자를 당분간 계속할 것이다. 심지어 퇴직을 한 이후에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이게 나의 삶의 방식으로 이미 너무 굳게 굳어져 버려서 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난 내가 투자하여 늘려 놓은 돈을 쓰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다.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 없이 대부분은 뭔가 뒤에 남기고 죽는다. 나처럼 아끼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남기는 것이 좀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꼭 다 쓰고 죽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쓸것이라고 믿는 것이 속편하지만, 가치 있게 쓰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럴 경우엔 좀 약이 오르긴 하겠지만, 어떻게 하겠나. 내가 죽고 없는데. 그게 싫다고 굳이 돈을 쓰고 싶지 않은데도 쓸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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