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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유랑자

왜 서점에 가는가?

by Eaglecs



내 기억속의 서점.

시대가 바뀌어 요즘은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책을 본다. 전자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오디오 북이 있었고 그 전에는 당연히 종이로 된 책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통하여 책을 보는 사람이 많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종이책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고, 실제로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는 것 같다. 나만해도 전자책을 보려고 시도는 해 봤지만 도저히 책을 보는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순전히 나의 취향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전자책과 종이책의 차이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극명하다. 어쩔 수 없이 전자책을 봐야하는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늘 종이책을 손에 쥘 것 같다.


나는 90년대중반까지는 서울에 있는 종로 서적과 교보 문고를 자주 다녔었다. 95년도에 인천에 취직을 한 이후로는 서점으로의 발길은 뜸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두개의 서점 중에서 교보 문고는 중단없이 운영을 해왔지만 종로 서적은 2000년대 초에 폐점했다가 2016년에 다시 오픈을 했다. 내가 살았던 청라에도 종로 서적이 있고, 서울에도 종로구 종로 타워 지하2층에 위치하고 있다. 새로 오픈한 종로 서적은 예전 운영 주체와는 다르다고 하는데 평범한 책 구매자의 한 사람인 내 기억에는 운영 주체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종로 서적'이라는 정감어린 이름이 남아있어서인지 마치 예전 그 서점이 다시 생겨난 느낌일 뿐이다. 옛날의 오리지날 종로 서적은 6층이나 되는 건물이었다. 층별로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분야별로 여기 저기 둘러보던 기억이 난다.

종로 서적 흑백사진.jpeg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옛 종로서적 입구인 듯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왜 대한 민국에는 서점이 그렇게 많았을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임을 밝힌다. 그래도 아마 맞을 것 같다. 그건 우리 나라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예외적으로 높은 열망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우리 나라 부모들의 강력한 교육열이 출판 산업의 불씨를 지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같은 맥락일 수 있는데 우리 나라는 정책적으로도 국민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60~70년대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람 밖에 없었지 않았나?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겠지만,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고, 유일하게 있는 것이 사람밖에 없으니 사람의 교육을 통하여 경제 부흥을 이뤄야 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을 강화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교육에는 책이 있어야 한다. 특히 그 당시에는 책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결국 잘 살기 위하여 찾은 돌파구가 교육이었고 그때문에 지금 우리가 경제적으로 이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렇게 출판 산업과 그로부터 엄청나게 생산된 책은 우리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한글이라는 가장 배우기 쉽고 표현력이 풍부한 최고의 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이 안계셨다면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세종대왕.jpg (출처 : 광화문에서 직접 촬영)



대한 민국의 서점은 그냥 책만 파는 곳인가?


지난 군사 정권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하여 우민화 정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스포츠나 엔터 산업을 장려하여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방법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게하는 효과가 있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면 할수록 국민들이 사상적으로 덜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적인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우민화 정책을 기술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필리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주요 가문(약 10개라고 한다)이 필리핀 부의 8~9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그 부를 몇 세대에 걸쳐서 계속 소유하고 유지하고 있다. 정권도 마찬가지로 각 가문들의 힘의 이동에 따라서 돌아가면 차지한다. 우리 나라도 대기업들이 부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30년전 30대 기업중 남아있는 기업이 몇 안된다. 필리핀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필리핀의 주요 가문은 수백년간 그 부와 권력을 유지해 왔다. 큰 차이다.


2024년 현재도 부패의 상징이었던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아들이 권좌에 올라있다. 소수에 불과한 귀족층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권력 중심에 큰 변화가 있으면 안되고 따라서 대다수의 국민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몰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권력이 국민에게로 조금이라도 이동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주력했고 그중 좋은 방법은 종교 혹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강화하는 것이고, 거기에 더하여 국민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을 기회를 최대한 제한하는 것이다. 나아가 교육 혜택을 받을 기회를 제한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민의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방식중에 하나가 출판 산업을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필리핀에도 비교적 서점이 많이 들어섰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전자책 또한 폭 넓게 보급되고 있지만, 불과 20~30년 전만해도 필리핀 내에 서점의 수는 극히 적었고, 있다하더라고 책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서 서민층이 쉽게 구매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거 30~40년 전에도 동네마다 서점이 몇 군데는 있었다. 전국 어느 동네에든 작든 크든 서점은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참고서며 일반 교양 서적 등 당시 출판되는 책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군사 정권이 우민화 정책을 폈다고 하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물론 주요 책을 금서로 묶어서 표현의 자유와 학습의 자유를 제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책에 대한 접근은 매우 용이했었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들은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걸 사서 보고 공부하여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 기회를 잡기로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전체 국민의 학력은 증가했고 문맹률은 세계 최저를 기록하게 되었다. 다양한 정보에 접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 당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꿈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현재 수준의 민주화에 성공한 것은 책에 대한 국민들의 자유로운 접근성이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 민국의 출판 업계와 서점은 단순히 책만 판 곳은 아니었다.





지금의 서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점에서만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거의 무제한의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약간의 비용과 시간만 들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도 깊고 수준 높은 정보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다 알다시피 우리는 ChatGPT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통하여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정보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여 자신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면 정보로서의 가치는 반감이 아니라 아예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결국 올바른 정보를 인식하고 평가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면 그런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책상에 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래된 말이지만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다. 올바른 소양을 쌓고 보다 정확한 판단력을 쌓기 위해서는 책을 통한 전통적 학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화면의 화소를 통하여 접하는 휘발성 정보로부터 비록 심도있는 정보를 찾을 수는 있지만 그걸 우리의 두뇌에 새기려면 결국 우리의 정신과 함께 육체를 활용하여 반복학습을 해야 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Analog 적으로 작동하며 어떻게 보면 그래서 Digital과의 완벽한 합체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짧은 글을 통하여 정보를 확인하고 활용하는 것도 유용하지만 매우 단편적인 내용을 다수 참고하는 일련의 작업에서 심도있는 정보와 이해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많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것을 우리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 따라서 인터넷을 통한 짧은 요약본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 정보와 깊이 있는 이해가 절실할 경우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서 참고하는 동시에 반드시 책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즉, 도서관이나 서점이 당신이 원하는 결과에 접근할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라는 말이다. 더 길게 이야기해서 그게 왜 그런지 증명하라고 하면 사실 좀 어렵다. 다만, 내 경험상 그랬기에 여기에서 이렇게 기술하는 것임을 이해 바란다.

30년전 대학 졸업 후 발길을 거의 끊었던 서점에 다시 들리기 시작하였다. 30년을 돌고 돌아서 또 서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찾게된 서점에서 무언가 새로운 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수십년간 전기 공급이 끊겼던 내 뇌리에 새겨진 어떤 회로에 다시 전원이 들어가서 내가 움직여진 것처럼 나의 발길을 이끌었다. 지난 5월 1일에 광화문 교보 문고에 갔었다. 발길이 멈춘 곳에 마음에 드는 책이 있었고 그자리에 서서 2시간 동안 한 권의 책을 완독했다. 흥미있는 책을 써준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살필요가 없었다. 다 봤으니 말이다.


이런 유랑을 통해서 나는 뭘 하려는 걸까? 단순히 신간을 찾아서도 아니고 퇴직 후 남은 시간의 홍수 속에서 헤어나기 위하여도 아닌것 같다. 어쩌면 서점속에 넘치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인파속에 섞여서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 서 있으면 피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곤 하니 말이다. 원래 끼리끼리 모이지 않는가? 그러나 서점이 단순한 동질감을 확인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종이 책에 대한 변하지 않는 집착과 사랑이 나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지는 못하지만, 내 글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바로 나이다. 어쩌면 나를 서점으로 이끈 이유는 내 글을 좀 더 의미있고 재미있게 써보라는 나의 내적 명령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내가 내 글을 봐도 재미가 없는 것은 맞다. 서점에 더 자주 가야 할 것 같다.



종로서적 독서테이블.jpeg (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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