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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젠골프' 읽기 (2부:준비) 8/15

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by Eaglecs

7. 몰입하라,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라 (p85 ~ p87)


두려움도 결국 전념(Commitment)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샷의 결과가 어떻든 기꺼이 수용할 수 있을 때,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너끈히 감당하고 조절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방해 거리를 없앨 수 있다.


큰 그림을 그려라. 최악의 결과가 닥친다고 해도 그 때문에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계획한 샷은 당신이 이미 여러 번 성공했던 샷이다. 확신에 찬 샷이 의혹에 찬 샷보다 결과가 좋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라. 확신은 평안과 안정을 안겨 주며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스윙하게 해 준다.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태양을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구름들 앞에 새로운 태양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구름이 사라지면 태양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원리로, 우리는 전념을 일부러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두려움과 의혹과 망설임이라는 구름을 걷어 내면 선천적인 전념이 우리에게 밝은 미소를 띠며 찾아올 것이다.




몰입


헝가리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를 통하여 잘 알려진 몰입(Flow)는 어떤 활동에 완전히 빠져서 그 활동을 즐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게임을 할 때마다 몰입할 것이다. 주변의 잡음이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밥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안들리고 컴퓨터 소리좀 줄이라는 아버지의 목소리도 안들린다. 철저히 그 활동에 빠져서 흠뻑 젖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몰입니다.


물론 위와 같은 예는 긍정적 몰입의 상태는 아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은 그 순간 '잔잔한 물이 흐르는 것같은 편안한 느낌' 혹은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듯한 느낌'이다. 이런 '몰입'을 통하여 어떤 활동에 빠져 있을때에는 신체와 정신을 감각적으로 흥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순간에 꽤 오랜 시간 머무르게 한다. 게임에 몰입하여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몰입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이런 '몰입의 상태'에서는 오랜 시간 그 상태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금방 휙하고 지나간 듯 시간의 개념이 왜곡되는 현상도 일어난다. 잠깐 자리에 앉아서 뭔가 기분 좋은 몰두를 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면 당신은 Flow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좋은 글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이 가끔 잘 써질때가 있는데 그때 유사한 경험을 하곤 한다. 긴 글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한참 쓰다가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있기도 했다. 완전한 몰입은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유사(類似) 몰입은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념(專念)이라고 했는데, 결국 전념도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씀'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몰입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엔 몰입의 하위 버전이다. 작가는 두려움이 전념의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적절하기도 하다. 전념의 뜻이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씀'이다. 이렇게 되면 '두려움'에 쓸 마음이 없어진다. 당신이 울고 있을 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너무 기뻐서 흥분 상태일 때 동시에 슬퍼서 낙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뭔가에 전념하여 마음을 거기에 쏟으면 그때 만큼은 두려움을 느끼기가 불가능하다. 전념을 통하여 두려움을 제거한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받아들임


사실 받아들임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정신 상태이다. 다시 또 데이비드 호킨스의 받아들임에 대한 정의를 인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받아들임'을 정의했다.


[이 수준의 에너지는 태평하고, 느긋하면, 타인과 잘 어울리고, 유연하며, 대인 관계의 폭이 넓고, 거리낌이 없다. "삶은 좋은 것이다, 당신도 나도 좋은 사람이다. 나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삶의 여건대로 살아간다. 남을 탓하거나 삶 자체를 탓할 이유가 없다.] -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p57에서 인용


이런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결과가 나타나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비단 골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황에서도 거기에 미혹되거나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미혹된 상태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지 않을까?


사실 데이비드 호킨스의 '받아들임'은 내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가슴과 머리에 새기고자 노력하는 핵심 가치이다. 이 글에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 때문에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쓰여있듯이 나나 당신이 겪는 그 어떤 최악의 상황이 온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즉,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특별하고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중병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사실 대단히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정심을 잃고 동시에 자기 자신도 잃어 버린다. 그러나 그중에는 유독 담대하게 상황을 받아 들이고 굳굳이 자신을 지키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받아들임'의 상태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받아들임'의 상태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정신 상태이다. 따라서 이 수준에 있는 사람은 드물 수 밖에 없다. 이 '받아들임'의 상태에 이르는 것도 역시 선택의 문제이지만 정말 선택하기 어려운 고난이도 선택의 문제이다.


다시 또 통계를 이야기해야 할 순간이 왔다. 골퍼중 실제로 80대를 확실하게 지키는 골퍼는 0.6%에 불과하다. 캐디 900여명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가 그렇다. 그리고 싱글 골퍼는 0% 였다. 아마도 모집단이 적어서 0% 였을 것이고 실제로 통계 범위를 확대하면 그래도 0.5% 내외는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 싱글 골퍼도 '내려놓음'의 상태에 완전히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간혹 내려 놓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에 스크래치 골퍼가 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아다시피 스크래치 골퍼는 핸티캡이 0 이다. 즉 72타가 기준타수인 골프장에서 72타를 친 것이다. 이 정도면 '받아들임 혹은 내려놓기'에 꽤 일가견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렇게 '받아들임'의 상태에 이르는 길은 정말 멀고 험한 것이다.


그렇다면 99.4%에 이르는 90대 이상의 골퍼들이 해야할 선택은 아주 명료하다. '받아들임'의 상태에 결국은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이것은 포기와는 다르다. 포기는 정신을 축소 시키고 긴장시키고 낙담시키는 감정상태이다. 그러나 '받아들임'은 그 반대다. 있는 조건과 능력에 만족하고 그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에 따라서 생긴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높은 수준의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받아들여도 당신의 핸티캡이 4~5개는 줄것이다. 작년 12월초에 라운드를 하고 그 다음 라운드를 지난 3월 말에 했었다. 거의 4개월 동안 채를 전혀 잡지 않았다. 게으른 아마추어의 전형인 나는 연습장을 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간 올해 첫 라운드에서 과연 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뻔했다. 그래서 그냥 내 상황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샷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단지 매샷에 집중했다. 결과는 85타였다. 평소에 잘쳐도 92~93타를 전전하던 내가 85타를 친 것이다. 그것도 경기 막판에 이대로 치면 싱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트리플과 더블이 나오면서 점수가 망가졌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그날 나는 '유사(類似) 받아들임'의 상태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음이 틀림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내 '실력'이 원래 나의 실력이었을 것이다. 구름에 가렸던 그 태양처럼 원래 있었던 나의 실력이 그걸 가리고 있던 구름이 사라지자 다시 드러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구름은 떠다니고 나를 그리고 당신을 가릴 것이다. 그때마다 흐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잠시 기다리면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 또 다시 밝은 나의 태양 그리고 당신의 태양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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