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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걷기

삶의 길

by Eaglecs





산책의 즐거움


바쁜 생활 속에서 삶에 여유를 찾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활동중에 하나는 산책이다. 고양시 일산에서 11년을 살았었는데 그때가 산책을 하기에 제일 좋은 시절이었다. 집에서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거대한 일산 호수 공원이 있었고 그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에만 거의 50분 정도가 걸렸다. 호수 공원의 산책로만해도 약 5km에 달하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약간 속도를 내면 50분 가량 소요되었다. 집에서 공원까지 가서 거기서 또 5km 를 걸은 후에 다시 집에 와야 하므로 총 80분 내외가 걸리는 산책길이었고 잠시 벤치에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할 경우도 있으니 보통 한 시간 반 혹은 두 시간 가까이 소요되곤 했다.


처음에는 산책(散策)이 아니라 산보(散步)로 시작했었다. 일산이라는 도시의 환경이 너무 좋아서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밖에서 걸어다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벼운 걷기는 산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산보는 특별한 목적이 없는 걷기이다. 산책이나 산보 모두 걷기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의미에 약간 차이가 있다. 여유로운 속도로 걸으면서 휴식이나 여유를 찾고자 하는 행위가 산보이며, 따라서 주로 공원에서 돌아다니거나 거리를 슬슬 다니는 것이 산보에 해당이 될 것이다. 반면 산책은 약간 목적이 가미되어 있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가 있을 수도 있고 건강 관리, 자연 감상, 생각의 정리, 등이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걷기는 목적이 있는 산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이 더해진 걷기, 산책


나의 걷기는 이렇게 산보의 형식으로 시작되었다가 이내 분명한 목적이 더해진 산책이 되었다. 물론 달성하기 어려운 목적 혹은 목표가 있는 산책은 아니다. 약 한 시간 반에서 길면 두 시간에 걸친 조금 빠르게 걷기를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가벼운 강도의 운동이 가능했다. 그 정도 걸으면 다리는 약간 뻐근했고, 살짝 땀도 났다. 일산 호수 공원을 한 번 다녀오면 대충 13~15km 정도를 걷게 되기 때문에 결코 산보가 될 수 없는 걷기이기도 했다. 특히 이런 걷기 도중에 얻는 가장 큰 수확물 중의 하나는 '생각의 정리'였다. 건강을 위한 걷기가 일차 목적이었지만 이차적인 효과까지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종이와 펜을 주머니에 넣고 걸었으며, 간혹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적어 놓기도 했다. 이 습관은 지금도 여전하다. 물론 지금은 종이와 펜 대신에 휴대폰의 문자 기능을 활용한다.


나의 걷기 행위는 2019년 3월 청라로 이사를 와서도 계속 되었다. 4년간 청라에 살면서 바로 아파트 앞에 보이는 호수 공원을 200번 정도는 돌은 것 같다. 매주 최소한 1회 정도는 돌았기 때문이다. 청라 호수 공원을 돌면 다양한 사람들의 걷기를 관찰할 수 있다. 부부간에 손을 꼭 잡고 산보를 하는 커플, 아이와 자전거를 타면서 여유롭게 시원한 공기를 즐기는 가족, 땀을 뻘뻘 흘리면서 빠르게 내 옆을 지나쳐 달려가는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혼자서 검은 썬그라스를 끼고 꽤 빠른 속도록 그냥 앞만 보고 걷는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들. 공원에 들어차 있는 사람 수 만큼 다양한 이유로 모두들 그곳에서 자신만의 삶의 길을 걷고 있었다.


호수공원 거실뷰.jpg (출처 : 직접 촬영. 청라 호수 공원)


어떤 목적이든지간에 걷기는 매우 권장할 만한 행위이다. 가장 좋은 운동 중의 하나가 걷기라는 것은 모두들 알 것이다. 신체에 큰 무리를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여 운동량이 많이 적은 것도 아닌 우수한 운동 방식이 바로 걷기이다. 오죽하니 시에서는 한달 혹은 두 달간 매일 만보 이상을 걸은 것을 증명하면 돈을 주겠는가? 소소한 금액이지만 시정부에서는 돈을 써가면서까지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질병 비용을 줄여서 예산을 아끼려는 궁극적 목적이 있지만 말이다.




효율적 운동으로서의 걷기


걷기는 다양한 장점과 강점을 갖고 있다.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걷기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나 비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구든 '하기로 선택'만 하면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이다. 걷기에 필요한 것은 실제로 편안한 운동화가 전부이다. 평소에 자주 신을 수도 있기 때문에 꼭 걷기를 위하여 필요한 별도의 운동화를 살 필요도 없다. 걷기 전용 유니폼도 필요하지 않고, 걷기 전용 경기장도 필요없다. 그리고 걷기를 잘 하기 위하여 필요한 장비도 없다. 걷기를 통해서 타인과 겨루거나 내기를 하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승부욕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불필요한 경쟁같은 스트레스 요인도 없다.


사실 걷기도 스포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스포츠는 신체 활동과 기술을 통해 경쟁하는 활동이나 게임으로 정의된다. 스포츠는 다양한 규칙과 목표를 가지고 행해진다. 구기 스포츠, 팀 스포츠, 개인 스포츠(육상, 수영, 골프) 그리고 나아가서 목숨을 걸고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스포츠의 종류는 스포츠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상당히 증가해 왔다. 잘 알겠지만 레저 스포츠나 동계 스포츠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익스트림 스포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스포츠 활동을 하려면 특별한 장비, 장소 그리고 독특한 자연 환경이 필요하기까지 하며 이런 필요 요소는 거의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특별한 사람의 경우엔 스폰서를 통해서 가능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매우 특별한 극소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일반적인 사람이 그런 스포츠를 배우거나 즐기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피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익스트림 스포츠의 경우는 비용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과연 '익스트림 스포츠'에 스포츠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맞는지에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역설적인 말인데, 스포츠 중에서 가장 부상 위험이 낮은 스포츠가 '윙슈트 스포츠'이다. 날 다람쥐처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서 윙슈트에 몸을 의지하여 최고 시속 200km에 이르는 속도로 비행하다가 낙하산을 펼쳐서 땅에 내리는 일종의 스카이 다이빙인데, 극도로 위험한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이 스포츠를 즐기다가 부상을 당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유는 사고를 당한 사람은 100% 사망하기 때문이다. 부상자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윙슈트.jpeg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윙슈트 플라잉)


그런데 걷기 혹은 산책이 스포츠라니 좀 의아할 것이다. 걷기는 일상적인 활동 중의 하나이지만 유산소 운동으로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되고 근력을 강화해 준다. 그리고 스트레스도 완화시켜준다. 특히 운동 초보자나 여러 이유로 제약이 있는 사람들(특히 신체적 제약)에게는 매우 적합한 운동이다. 분류상 스포츠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운동과 건강 증진이라는 목적에 있어서는 스포츠라고 이름을 붙여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굳이 비슷한 것을 예로 들자면 경보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걷기에 규칙과 경쟁이 더해진 것이 경보이니 말이다.




걷기의 단점


걷기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편함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견디기 힘든 부분도 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지루함 혹은 단조로움이다. 계속 두 다리로 걸어야만 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단조롭고 지겨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피트니스 클럽의 트레드밀에서의 걷기는 정말 어지간한 참을성이 있지 않으면 오래 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트레드밀에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 때문에라도 가급적 실내에서 걷기 보다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들이 공원 등의 장소에서 걷기를 하는 이유는 그런 걷기의 단조로움이 최소화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동작의 반복을 해야 하지만 그 동작을 하는 동안 다양한 장면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걷기라는 극도의 단조로운 활동을 오래 견딜 수 있게 된다. 잘 알겠지만 피트니스 클럽의 트레드밀에 괜히 TV 모니터가 설치된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 TV에 시선을 빼앗끼지 말고 공원으로 나오길 권한다.


단조로움이라는 극악의 단점 외에도 걷기에는 사실 몇 가지 단점이 더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투입된 시간에 비하여 칼로리 소모가 적어서 운동 효과가 낮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재미는 없는데 오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인, 특히 직장인들은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아마도 대부분 게으르거나 혹은 다른 불필요한 행위(TV 시청 그리고 특히 의미없는 인터넷 검색)를 하면서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보통은 그런 행위를 본인들이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단순히 시간이 부족하고 바쁘다고 느끼는 편이다. 하루에 몇 시간씩 SNS에 빠져 있으면서 한 시간을 걷기 위하여 할애하는 것이 부족하다면 이건 분명히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활용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느긋하게 몇 시간씩 걸어다니는 선택을 하기는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특히 운동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오랜 시간을 투입해도 운동 효과가 거의 없을 것 같은 행위에 시간을 투자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외에도 비가 오거나 황사나 미세 먼지와 같이 날씨가 좋지 않으면 하기 불편한 것이 걷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걷기에 있어서 단점이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역시 장점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몇 안되는 단점 때문에 상당히 큰 걷기의 장점을 지나쳐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행선(行禪) 그리고 삶의 길


걷기는 지루한 나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동안 동일한 재미없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나 자극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숨을 쉴 때 우리는 별로 자극을 느끼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면 큰 자극을 받는다. 혹은 매혹적인 향을 맡을 때도 강한 자극을 받는다. 담배 연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폐가 상하여 죽음에 이르고, 아무리 매혹적인 향이라도 계속 그것에 노출되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자극들은 후각이 감지하는 정상 범위를 크게 벋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자극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자극에 대한 지속적 노출 보다는 간헐적 노출만이 인체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담배의 경우는 간헐적 노출도 꽤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인체로 뭔가 흡입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극이 거의 없고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것은 숨쉬기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걷기는 숨쉬기와 거의 비슷하다. 많은 명상가 혹은 호흡 전문가들은 숨쉬기의 중요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파한다. 그들은 바른 숨쉬기가 명상의 시작이라고 하기도 한다. 숨쉬기에 관심이 있는 분은 '박희선 박사의 생활참선' 이라는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아무튼 실제로 제대로 숨을 쉬면 마음이 편해지고 몸도 안정이 된다. 흥분으로 호흡이 가빠지면 심호흡을 하면서 안정을 찾곤 한다. 편안한 숨쉬기를 통하여 흥분을 가라 앉히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숨쉬기는 명상이고 따라서 걷기도 명상이다. 뜬금없이 걷기가 명상이라니 이해가 안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불교에 행선(行禪)이라는 말이 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선(禪)을 닦는 행위가 행선이다. 행선이 바로 걷기 명상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일부 운동 효과까지 노리면서 명상까지 하는 것은 욕심이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운동으로서의 걷기를 통하여 행선까지 하려는 것은 좀 욕심인 것 같다. 그저 단순하게 걷기를 통하여 마음의 안정을 구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거기에 약간의 운동 효과를 얻는 것이면 충분할 것 같다. 이 정도 만으로 걸어도 나의 삶의 길이 좀 더 순탄하고 편안해 질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고 늘 생각을 정리하면서 삶을 살아가면 그 삶은 더 순탄하고 편한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당신의 삶의 길도 걷기를 통하여 순탄함에 이르길 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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