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고향으로

나를 바꾼 경험

by 허은숙

가고 싶은 고향으로(브런치 2일)


"인생을 허비한 죄, 유죄. 시간은 쓰는 사람에 따라 그 안에 채워지는 내용도 달라진다. " 이 메모는 2010.12.30에 옮겨 놓았던 글귀다. 이때는 교장연수를 받던 해였다. 청주시 한국교원대학교에서 3개월의 연수를 마치고 학교로 귀환했던 해다. 연말이라 마음의 결심을 새롭게 하기 위한, 메모수첩의 첫 장에 첫 구절이다. "행복해지려면 공부해야 한다". 는 주제로 강의를 받았다. "시간은 생명이다고 후회하지 않고 살려면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용은 그다음 페이지에 자세하게 메모되어 있다.


나를 바꾼 경험을 생각하니, 35년 전의 일이다. 거창 초임지에서 결혼과 동시에 밀양으로 온 지 8년이 되었다. 이제 고향으로 가야겠다. 아무래도 마산은 도시니까 아이들 교육도 생각했다. 마산 가서 큰 애 입학도 시키고 작은 애 유치원도 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초, 중, 고, 대학까지 고향에 있다. 나의 친정 일가 가족들,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고장으로 귀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당시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마산, 창원, 진해로 발령받아 떠났다.


결혼을 밀양사람과 했기에 밀양으로 전입한 것이다. 도시로 전입하기 위해서, 정해진 점수대로 상장, 표창, 근무성적 등 다 갖추어야 했다."학급경영"이라는 프로젝트를 받아 열심히 했다. 좋은 등급을 받았고 그 해 교육감 표창장과 근무성적도 최고로 받았다. 이제 마산시로 내신을 내면 들어갈 것이다. 우리 갈 때가 되었다고 남편과 의논을 하였다. 반응은 상상외였다. 어림 반품도 없다는 것, 밀양서도 얼마든지 자녀교육이 된다고 했다. 자신은 고향을 떠나기 싫다고 했다. 더 이상 중언 부언 할 필요 없이 내 생각을 접었다. 남편의 장래(?)를 위해서.


이 일을 계기로 나의 삶은 달라졌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어차피 시골에 살 바엔 남보다 빨리 승진을 해야겠다. 우리 애들은 밀양 시내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나는 벽지학교로 희망해서 갔다. 여교사가 가기 힘든 학교를 마산 전입을 위해서 축적해 놓은 실적으로 갈 수 있었다. 이때 벽지학교로 가지 않았으면 관리자 승진은 어렵다. 가족을 떠나 산간벽지로, 외딴섬으로 전입하던 시기였다. 벽지학교 근무는 모든 남교사의 꿈이었다. 마산으로 전입했더라면,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더 좋은 대학으로, 더 좋은 직장으로 갈 수 있으려나? 지금은 아득한 옛 일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또한 지나갔다.


oo 교대출신 동기 여교사 중 가장 먼저 승진을 했다. 지금은 퇴직한 지 7년이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이다. 이제 연륜에 맞게 깊이와 무게를 지닌 여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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