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ㆍ성과ㆍ퇴보
한 해를 돌아볼 때 사람들은 올 한 해 동안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묻는다. 성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과가 있어야 성장이 되는 것인지. 숫자, 평가, 완성, 박수처럼 누군가가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은 성과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는 성장이다.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고 반응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가늠한다. 성과는 다른 사람과 비교된다. 누가 더 빠른지, 더 많이 했는지를. 성장은 비교되지 않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내 안에 남는 것이다. 성과는 때로 성장 없이 얻어질 수 있지만, 성장은 성과 없어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해는 성과가 없어 보일지라도 가장 깊이 성장한 한 해가 될 수도 있다.
성장의 반대는 퇴보가 아닌가? 남보다 뒤처진 것 같고, 내 삶이 여기서 멈춘 것 같았다. 이전보다 못해진 느낌으로 나를 잃어 갔다. 퇴보라 여겼던 순간들이었다. 그 속에는 멈춤이 있었고 쉼이 있었고 다시 방향을 고르는 시간이 있었다. 2025년은 막연한 생각이 필연이 되었던 해다. 무의미한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나침반이 된 한 해다. 무의식의 심연으로 사라졌을 토막글들이, 망각의 저편으로 소멸하고 말았을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 성과는 분명했다. 완성된 일, 정리된 결과, 타인의 인정을 위해 마음을 소모했다.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북유럽 여행의 좋은 기억들. 여행 후, 초대 작가 전시에 참가하였던 순간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여 첫 전자책을 냈을 때의 기쁨. 아! 모두가 꿈이어라, 사랑이어라. 성장의 순간들이었다.
성장은 이어진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변화다. 쉽게 흥분하던 일도 없고, 애써 나를 내세우고 싶은 일은 더더욱 없다. 매사에 한 박자 늦추게 되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 앞에서,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는 것이다. 성과는 밖으로 향한 흔적이고, 성장은 안으로 자란 결이다. 그래서 성과가 없는 해를 퇴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내면의 성장은 무언가를 더 갖게 되는 일이 아니다. 불필요한 감정을 내려놓고 지나간 말에 오래 머물지 않는 변화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날 줄 알게 되었다. 천천히 자란 마음, 덜 상처받는 선택, 나를 지키는 방향으로의 한 걸음. 이것이 충분히 성장한 순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부터 12월 하순이다. 이제 믿을 것은 마음공부, 글 쓰는 일이다. 성장통의 힘든 세월은 지나갔다. 삶은 언제나 겉보다는 안에서 먼저 깊어진다. 이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덜 아프고, 조금, 더 따뜻해진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생각하자. 가족, 친구, 이웃, 자연의 모든 신비와 아름다운 것도 귀한 선물로 보는 것이다. 주어진 하루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모든 것을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성장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