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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n 16. 2024

우주를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사람 생명체

양자역학과 불교철학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세상'보다 '실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실재란 무엇인가. 시공간은 빅뱅 이후 생겼기에 '빅뱅 이전의'라는 말은 틀린 표현인지, 세상은 어떻게 끝이 날지, 혹은 무한히 유지될 운명일지, 시공간이 탄생하기 이전의 무언가는 무엇인지. 우주에 대해 내가 모르는 걸 모른다는 게 두렵다. 이 두려움 속에서 진리에 먼저 대해 탐구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과학적 사실들로 차근차근 세상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 탐색의 길은 결국 한 곳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의 의식'.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만물의 근원 에너지라니. 너무 비현실적이다.



'현실', '현실성 있는', '현실적인'



여기에서의 현실이 의미하는 것은 우주의 현실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이다.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 청각, 후각의 기준에 한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언어를 창조해 냈다. 본래 인간은 열등한 감각기관 때문에 우주에서 오는 빛과 소리의 전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우주의 전부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애당초 실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며, 애초에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탄생한 생명체가 아니다.



세상의 본질에 대해 깊이 탐구한 이들이 말하길, 세상은 결국 하나이고 근원적 에너지는 창조되지도 소멸되지도 않고 보존되어, 그저 형태만 바뀌어 나타난다고 한다. 이 단순한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탐욕과 욕심이 의미 없음을 깨닫고 염세주의로 빠지게 되는 것일까. 철학은 조금씩 천천히 공부해야겠다. 나는 아직 세상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아래에는 <양자역학과 불교철학은 처음이지?>라는 책에서 와닿는 구절들을 옮겨 놓았다. 이 책은 총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는 양자역학의 기초, 2장에는 불교철학의 기초, 3장에는 양자역학과 불교철학의 통섭에 대해 다룬다. 솔직히 1장과 2장은 읽지 않고 3장만 읽었다. 1장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고, 글로 읽으니 너무 지루했다. 개념적인 건 재미 요소가 첨부된 유튜브 콘텐츠를 시청하면서 학습하는 게 재미도 있고 학습 효과도 뛰어날 것 같다. (침착맨 유튜브에 궤도가 출연해 양자역학에 대해 다룬 영상 정말 쉽고 재밌게 봤다. 적극 추천.)





"실재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실재라는 말보다 진여 또는 우주의 실재, 우주의 본체, 진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진여는 우주 만유에 보편하면서 상주 불변하는 본체 또는 모든 현상의 차별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말한다. 유학에서는 태극 또는 무극으로 표현한다. 우주 만물은 진여의 작용으로 창조되었고, 진여가 작용할 때는 아무렇게나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작용하며 이를 이법(원리, 성품)이라고 부른다. 진여는 3차원 현상계의 개념을 떠나 초월해 있어 언어와 문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진여의 작용으로 현상계가 드러나 있으므로 이를 통해 이법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통해 얻은 위대한 발견은 진여의 이법, 우주의 진리인 연기의 법칙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즉 무상하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도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없는 상태로 상호의존하고 찰나 생 찰나 멸하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부처님은 실재의 기원을 그 어떤 물질적인 실체나 정신적인 실체 또는 초자연적인 실체에 두지 않고 변화 그 자체에 두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한다는 것이 존재의 원리이므로 무상을 보면 진리를 본다고 하였다. 일체가 무상이므로 자연히 무아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을 포함하여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실체로 볼 때 우리는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욕심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무상과 무아의 이법을 깨닫고 나면 모든 것이 잠시 존재하다가 곧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마음에 집착과 욕심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욕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고통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원리이다."



"진여. 우주의 실재는 인간의 감각이나 관념을 아무리 총동원하더라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3차원적으로만 현상을 인지할 수 있고 인간의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예를 들면 우주의 실체에 대한 정보를 가정 많이 얻을 수 있는 시간의 경우 가시광선, 즉 780 나노미터에서 380 나노미터 정도의 아주 좁은 구간만 인식할 수 있다. 청각의 경우 20 헤르츠에서 20킬로 헤르츠 사이가 전부이다. 그 밖의 구간에서 나오는 우주의 모습이나 소리는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시각에 대해서는 꿀벌에도 못 미치고 청각에 대해서는 개에게도, 후각에는 물고기만도 못하다. 사랑, 아름다움 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으로 언어를 만들고 인간의 눈으로 본 것으로 수학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인 관념도 결국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플라톤의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 보고 있는 현실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주 쉬운 예를 한번 들어 보자.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누구나 우주 공간에 다양한 전기자기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전기자기파는 빅뱅 이후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관념 속에 전기자기파는 없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이나 관념을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4퍼센트인 물질의 표준모형 정도만 겨우 알아냈고, 23퍼센트의 암흑물질이나 73퍼센트의 암흑에너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더 나아가 우주의 이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은 인간의 경험과 관념을 넘어서 있는 우주의 실재를 초월적 영역이라는 이름으로 남겨 두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음이란 모든 생각이 일어나는 곳이다. 마음을 현대 과학적으로 나누어 말하면 표층 의식, 중간 의식, 무의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간 의식에서 만들어진 생각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나타난 말과 행동은 반드시 그 과보를 낳게 되어 아뢰야식에 종자로 저장되며, 저장된 종자는 조건이 충족되면 발현된다. 경험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원천이지만 관념이나 상상만으로도 생각을 만들 수 있으므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들은 중간 의식에서 선택되어 현실에 나타나고, 또다시 새로운 과보를 남기면서 아뢰야식 종자로 저장된다. 비슷한 과보는 습관으로 고착되고 없는 또 다른 업을 남기면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가 된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해석에서 설명하고 있는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의 상보성원리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수많은 실험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 빛의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파동이 되었다가 입자가 되었다가 하므로 둘 다 '나'가 된다. 중론에서도 사물의 참모습을 팔불중도, '불일역불이'로 표현하였다. 아인슈타인에 의해 물질은 에너지로 변할 수 있고, 에너지는 다시 물질로 환원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양자들만 파동의 설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물체들도 파동의 설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변화가 작아서 우리가 감지하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우리가 양자들의 파동의 성질을 관측하고자 하면 파동의 성질을 보여주고, 우리가 입자의 성질을 관측하길 원하면 입자의 성질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양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실험'을 통해 철저히 증명되었듯이. 양자들의 세계에서는 양자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관찰자의 관찰 행위가 측정 결과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양자이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객관은 주관에 따라 그 성질이 바뀔 수 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다'라는 일체유심조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얽혀 있는 양자들이 우주를 가로질러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음이 에너지이고 물질이며, 둘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양자역학과 불교철학이 동시에 설명하고 있다. 양자역학과 불교철학이 서로를 증명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리를 보는 관점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_ <양자역학과 불교철학은 처음이지?> 中



(2023.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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