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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n 16. 2024

현자의 순간

끌어당김의 법칙


저벅저벅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게 평범하다. 양말도 평범하고, 신발도 평범하고, 티셔츠도 평범하고, 가방도 평범하다. 꾸미지 않아서 얼굴도 평범하다.




날씨도 너무 평범하다. 맑진 않지만 그늘이 져서 햇빛이 내리쬐지 않고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살랑바람이 기분 좋다. 인적이 드문 곳의 월요일 오후 12시. 다들 어디에 있는 거야. 길거리에 사람이 적다. 편하고 고요한 거리에서 맞는 살랑바람이 너무 기분 좋다.



기분이 이상하다. 현자가 된 기분이다. 숨김없이 자연스러운 자태로 긴장은 다 풀려있고 많았던 생각도 뇌에서 잠깐 자리를 비운 듯 멍하다.




몸도, 생각도, 감정도 속세와 가장 떨어진 순간이다.




기분 좋은 살랑바람에 젖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이건 마치 부자의 마음이다. 고요하고 욕심이 비워진다. 막대한 부를 이루어 부자가 되어도 감정이 유별나지진 않는다고 한다. 이미 다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고요해지고 생각과 욕심이 비워진다더라.




끌어당김의 법칙을 이용하는 방법은 '내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느끼는 것'이라 흔히 알려져 있다. 내가 지금 부를 끌어당기고 있나? 마음이 참 고요하고 비워져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이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을 느끼고 있다.




느껴진다. 생각과 마음이 비워질수록 좋은 것들로 새롭게 채워진다. 기존에 채워지던 것과는 다른 깨끗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심호흡 한 번으로 이것들을 더 느낀다.




더 속세와 멀어지고 싶다. 아무도 말을 걸지 마라. 나는 지금 이 상태를 느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부자와 현자의 마음이 채워진다. 나는 모든 것이 고급인 프리미엄 PC방으로 몸이 이끌렸다. 그냥 이곳으로 끌어당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 글을 쓰게끔 또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긴다.




나는 밀집되지 않은 바깥 자리가 마음에 들어. 여기 앉아야지. 세균이 많은 키보드를 한 번 더 닦아달라 말하려 했는데 내가 앉은 자리가 2인 전용 자리라고 해서 뒷자리로 안내받았다. 사실 좋게 둘러 표현해서 '안내'.




욕심이 없다." 아 그런가요?"라며 순순히 뒷자리에 앉았다. 또 무엇이 나를 이 '뒷자리'로 끌어당겼을까. 시크릿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살짝 운명론자의 성향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이과적 사고를 선호해 운명 따위는 믿지 않는다. 사실 믿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믿으면, 있게 된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시크릿(끌어당김)이 수학적이지 못하고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신뢰하지 않을 순 없다. 수학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말인 예술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의미다. 수학과 과학은 '우리의 언어'로 '설명'될 뿐이지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다. 시크릿이 아직 언어의 한계에 부딪혀 설명되기 어려운 것일 뿐, 존재한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워라. 그리고 많은 것들을 3살 아기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행복하라. 감정은 생각에서 비롯되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깨어나려 노력하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깨어날 수 있다.




언젠가 시크릿 고수가 되고, 고수가 될수록 생각은 점점 줄어든다. 단지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면 순순히 당겨질 뿐이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신의 의도, 우주의 의도를 인간의 의식 수준으로 깨달을 수 있을 리 없다.




우리 엄마가 드디어 사업을 정리하신다. 엄마가 고생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였다. 자식으로서 도와드릴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어 괴로웠다. 엄마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해외에 전시를 다니고 싶다 하신다. 엄마의 미혼 시절은 제1의 인생, 내가 나오고선 제2의 인생, 그리고 엄마가 다시 그림을 그리시는 순간 제3의 인생 시작이시다.




내 몸에 엄마의 예술가 피가 끓어 오르고 있다. 나도 마음속에 느껴지는 이 많은 예술적이고 추상적인 무언가를 예술로 표현해 내고 싶다. 엄마랑 같이 전시를 다니는 것만큼 영화 같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그 인생을 위해 내가 또 다른 현실적인 노력을 시도해야 할까. 아님 그저 상상하고 흐뭇해하며, 막연한 소망으로 남겨둘까.




도대체 무엇이 끌어당겨지고 있을까. 꿈에서라도 신의, 우주의 의도를 잠깐이나마 보여주세요.




현자의 상태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23.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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