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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l 09. 2024

일본인이 내게 커피를 쏟았다

어떻게 처세할 것인가


친절을 베푸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사람으로 남는 것, 누군가의 감동 깊은 스토리의 주된 인물이 되는 것, 나로 인해 누군가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 이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사소한 배려와 친절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사소한 배려와 친절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한 끗 차이에서 생겨난다. 그 작은 미소, 그 작은 움직임, 그 짧은 한 마디가 큰 감동을 만든다.​




일요일 오전의 아침이었다.

스타벅스에 왔다. 커피를 마시며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얼핏 결에 옆자리의 남자를 봤다. 커피와 빵을 먹고 나서 차분히 침묵에 빠져 있다. 일요일 아침부터 강남구의 한 스타벅스에서 휴대폰도 보지 않으며,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침묵을 느끼는 그 남자가 신비로워 보였다.

그가 실수로 커피를 쏟았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진하게 검은 아메리카노가 쏟아져왔다. 나는 그의 바로 옆자리였지만 다행히 쏟아지는 커피를 피했다. 그는 눈앞에 벌어진 진창 같은 상황에 크게 한 번 놀라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나)의 바지가 새하얀 색인 걸 보고 크게 두 번 놀랐다. 소리를 내며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당황해하는 기색이 마치 한국인 같지 않았다. 그는 일본인이었다.

내 기억 속의 일본인은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꺼려한다. 이 상황이 그에게 얼마나 큰 멘붕을 가져다줄지 뻔히 보였다. 그를 보니 젊은 나이에 가까운 한국에 와서 낯선 공기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상황에 그의 눈앞에 벌어진 일은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나는 친절을 베풀기 좋은 컨디션에 놓여있었다. 아침에 목욕을 다녀와 뽀송한 기분에, 불쾌지수 높은 장마철 치고는 상쾌한 아침 습도에, 시원한 스타벅스의 에어컨, 그리고 아침 일찍의 여유로운 잔업 처리. 친절을 베풀기 딱 좋은 기분이었다.

나는 쏟아지는 커피를 피한 후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그를 여유롭게 바라봤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그에게 도리어 괜찮냐고 물어봤다. 그는 내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는 허겁지겁 휴지를 가져와 내게 줬다. 그리곤 내 흰 바지와 흰 신발에 묻은 검은 아메리카노를 가리켰다. 개미 똥만 한 크기로 두 방울 튀었다. 너무 미안해하며 '재'송다고 서툰 한국말로 사과를 한다.

그는 아차 하며 지갑을 가져와 현금을 꺼내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정말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말, 얼마나 미안할까. 그는 몇 안 되는 휴지 종이로 커피로 흥건한 바닥을 직접 닦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내게 커피를 쏟고 매장을 더럽힌 일로 흥분된 마음이 빨리 가라앉길 바랐다. 나는 직원에게 가 바닥에 커피가 쏟아진 일을 고백하며 도움을 청했다.

그에게 말했다. "직원분이 오셔서 바닥을 청소해 줄 거예요."

"괜찮으시죠?"

그 일본인은 감동받은 표정으로 가만히 멍 때렸다. 그러고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한'큭'인 정말.. (좋다)"

뿌듯했다. 자기효용감을 느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친절을 베풀기 좋아한다. 친절을 베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사람은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지저분해진 자리를 마저 정리하고 곧장 짐을 쌌다. 민폐를 끼친 공간에 오래 머무는 것이 불편한 듯 보였다. 나는 그의(일본인의) 대처에서 착한 심성을 진실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바람이 있었다. 유독 민폐 끼치는 일을 조심하는 일본인의 고유 성격에, 오늘 하루의 시작부터 남에게 실수를 범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졸일까. 내가 혼자 해외에 여행을 다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 정말 외롭고 속상할 것 같다.

그가 짐을 들고 자리를 뜨려 들 때,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는 정말 괜찮다는 의미가 간접적으로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밝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도 마음을 전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스마일)"

그가 남은 한국 여행도 좋은 추억 많이 쌓고 갔으면 좋겠다.



정말, 착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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