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보다 더 크게 남은 것

by 호수


책장을 연신 넘기면서 우리 가족을 많이 떠올렸다. 진진이네 가정과 내 가정에 닮은 점이 많은 탓이다. 암울한 가정사가 닮진 않았다. 단지 진진이와 진모 남매처럼 나에게도 누나가 한 명 있다는 점, 누나의 이름에 진진이와 같은 '참 진'자가 쓰인다는 점, 우리 엄마도 진진이 어머니와 이모처럼 일란성 쌍둥이라는 점, 그리고 진진이 어머니 성격과 이모 성격이 모두 우리 엄마 한 사람에게 모여 있다는 점.



가장 몰입된 가정사는 진진이 어머님의 회복 탄력성이었다. 가히 존경스럽다. 여러 형태의 고난을 마주하더라도 당장의 좌절이 문제를 해결해 줄 리 없다는 걸 아시는 듯, 금세 고개를 들고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신다. 일본인 모객을 위해 일본어 회화 책을 펼치시고, 아들이 사고를 쳐서 형사법 책을 펼치시고, 남편의 병을 위해 의학 서적을 펼치신다. 그녀의 삶에 포기란 없고 공부부터 차근히 하려는 강인한 모습이 우리 엄마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내가 어릴 적 아빠가 비상식적인 언행을 보일 때마다 연구 대상으로 삼으시고 정신 치료 학위까지 얻으셨던 우리 엄마의 고생이 비약적으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진진이의 예비 남편 김장우의 가정은 우리 누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진진이가 살 신혼집 전세금 마련을 위해 장우의 형과 형수가 눈물겨운 내핍을 감수한다.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마치 우리 누나가 나를 소중히 여긴 마음과 닮아 보였다. 비록 나는 누나를 위하지 못하였지만, 심지어 괴롭혔지만 누나는 언제나 나의 안녕을 위했다. 어린 시절 나의 태도를 반성하고 언젠가 누나에게 꼭 필요한 가치를 제공해 주리라 다시금 마음먹게 되었다.



진진이 이모의 성격이 엄마와 닮았다고 한 것은 자식을 향한 마음 때문이다. 삶이 평탄하기만 해서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자살을 생각한 이모의 감정 끝에는 자식에 대한 진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님을 뒤로하고 멀리 떨어진 땅에 가정을 꾸리느라 불편했을 마음이 자신의 죽음으로 해소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헌신적 마인드가.. 우리 엄마랑 너무 잘 어울렸다. 그만큼 나에게 헌신적이셨기에. 나도 향후 해외에 오래 머물 계획이 있는데 우리 엄마가 많이 속상해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생이 충분히 남은 내 입장에서는 사리사욕을 위해 잠시 부모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지만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부모의 입장을 떠올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겠지만, 우리 엄마는 더 이상 개인적인 삶의 동기가 없으시다. 오로지 자식들의 존재가 살아가는 이유다. 여생이 남아있더라도 지금 매 순간이 '가장 젊은 상태로 자식과 함께할 수 있는 순간'이시다. 지금 당장 자주 보는 것이 향후 5년, 6년 뒤에 자주 보는 것보다 더 가치 있을 거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책의 제목이 '모순'인 이유가 드러난다. 행복하고도 불행한 이모와, 불행하고도 행복한 진진이 엄마에게 모순이 놓인다. 앞으로 뻔하게 개척될 뻔했던 진진이의 상황에서 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한 진진이의 판단에도 모순이 놓이면서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책을 덮고서 머릿속에 생기는 모순의 혼란이 난무한 가운데에서도 나는 우리 누나와 엄마를 연신 떠올렸다. 당장의 나에겐 안진진의 모순 스토리를 덮을 만큼 가족들에 대한 연민이 마음속에 더 크게 남아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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