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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13. 2023

지하철 빌런 열전

왜 굳이 지하철에서 저러고 있을까

 1년 넘게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지하철 빌런들에 대한 몇 가지 연구 자료(?)가 쌓였다.


 오늘은 바쁜 출퇴근 시간,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몇 가지 유형의 '지하철 빌런'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1. 백팩 빌런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빌런들이다. 두꺼운 백팩을 뒤로 메고 이리저리 자리를 찾아 지하철 안을 돌아다닌다. 움직일 때마다 최소 서너 명의 몸을 툭툭 치고 지나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백팩을 상대방이 쳤다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째려보기까지 한다.


 백팩 빌런들 중에는 보통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는 대학생들이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저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막상 공격을 당해도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는 편이다.


 평생 백팩을 뒤로 메고 지하철을 타는 것 같지는 않고, 몇 번 지하철을 타다 보면 자신들이 불편해서라도 점차 백팩을 앞으로 메는 스킬을 익히게 되어 가는 듯하다.


2. 대화 빌런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주로 친구나 동료 등 여러 무리가 함께 지하철을 탔을 때 등장하는 빌런이다. 이들의 특징은 개개인별로 지하철을 탔을 때는 빌런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어색함 혹은 심심함을 없애기 위해 이들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큰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물론 소근소근 대화 소리를 작게 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술에 취했거나, 함께 있는 사람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한다거나, 원래 목소리가 큰 사람이라면 함께 지하철을 탄 주변 사람들에게 내리기 직전까지 엄청난 데미지를 선사한다.


 난 개인적으로 조금이라도 목소리 톤을 크게 하는 사람들이 근처에 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옆 칸으로 옮겨 가는 편이다. 조용한 카페 같은 분위기일 수도 있는 출퇴근길 지하철이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한 순간에 시장통으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


3. 유튜브 빌런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대화 빌런들과 비슷한 유형의 데미지를 선사하는 빌런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하철을 탔는데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자신이 보고 싶은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이어폰 없이 감상의 시간을 갖는다.


 보통 나이 드신 분들이 이 빌런 유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아무리 소리가 커도 직접 다가가 말하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 대화 빌런들을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대피하려 노력한다.


 자칫 가볍게 생각하고 '어르신~ 소리 좀 줄여 주시겠어요?'라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간 생각지도 못한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소리가 거슬리면 안들리는 곳까지 피해 가면 된다. 그게 가장 현명한 대처법이다.


4. 잡상인 빌런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이들은 사람이 아주 붐비는 출퇴근 시간보다는 주말 낮 시간에 나들이를 갈 때 주로 마주치게 되는 빌런 유형이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3천 원 ~ 1만 원쯤 되는 물건들을 여행가방에 잔뜩 싣고 와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물건을 판매한다. 이들이 등장하면 상큼했던 지하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에 비해 승객들에게 강권하는 사례는 많이 줄어 들었다는 사실이다. 십수년 전만 해도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 무릎에 판매 하는 물건을 올려 놓고 살 생각 없냐며 재차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경험상 운행한 지 오래된 1호선, 2호선 등에서 많이 발견되는 듯하며,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 그 등장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5. 쩍벌 빌런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마지막으로 백팩 빌런만큼이나 평소에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유형의 빌런들이다. 이들은 주로 술에 취해서 혹은 무의식 중에 남에게 피해가 될 줄 모르고 바로 옆에 사람에게 극심한 데미지를 준다.


 주로 큰 체격의 중년의 남성들이 이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모임을 끝내고 나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때문에 자리에 앉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정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다리만 쩍-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에게 기댄다거나 다리를 앞으로 쭉 뻗는다거나 하는 변형 동작을 취하기도 하는 것이 특징이다.


6. 마치며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지금까지 지난 1년 동안 내가 지하철을 타면서 마주친 '지하철 빌런'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다.


 사실 출퇴근 지하철은 한 타임 안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을 마주칠 수밖에 없는 환경일 다.


 하지만 아무리 출퇴근 기간이 길어져도 도저히 빌런들에 대해서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 허겁지겁 뛰어와 지하철을 탔는데 위에 언급한 빌런들 중 하나를 마주치게 되면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탄식부터 흘러 나온다.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는 완전히 클린한 지하철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매일 아침 전쟁과도 같은 지하철 출퇴근을 하는 전국 수백만 직장인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에티켓은 당연하게 지켜지는, 그런 대한민국의 지하철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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