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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an 14. 2024

일 없는 공무원의 슬픔

뭐든지 적당한 게 가장 좋아

 1월 1일자로 인사발령을 받아 지원청으로 출근한 지 이제 2주가 지났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새로운 환경에 꽤나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함께 일하게 된 동료들과 상사들 모두 친절하고, 유능하고, 무난하다.


 물론 앞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일들이 우수수 쏟아진다면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부서 구성원들에 있어서 만큼은 아주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다만 출근 2주차에 접어들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바로 '할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다.


 지원청으로 발령을 받고 나서 출근하기 전까지 나는 정말 수만 가지 방면으로 내가 앞으로 마주칠 수도 있는 스트레스 요소들에 대해서 빠짐 없이 생각해 봤었다.


 가령 업무 몰빵을 당한다던가, 상사가 막말과 폭언을 일삼는 수준 이하의 사람이라던가, 부서 야근이 일상화 되어 있어 자유로운 퇴근이 불가능하다던가 등등.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형태의 스트레스들이 다 나를 피해가고, 생전 처음 겪는 형태의 스트레스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고는 정말 죽었다 깨나도 생각지 못했었다.


 늘 일에 치여 고통 받았던 내가 일이 없어서 힘들어할 줄이야.


 내가 이번에 발령 받은 자리는 새로운 사업이 생겨나면서 새로 '증원'된 자리로, 기존에는 없던 자리다.


 그러니 전임자도 없고, 당장 처리해야 할 현안 사항도 없고, 심지어는 내가 관리해야 할 예산조차 아직 배부되지 않은 상태다.


 말 그대로 아직 일이 생기기 전에 사람이 먼저 투입된 것이고, 그래서 지금 내겐 당장 해야할 일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월 2일 첫 출근을 한 이후로 무려 2주째,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업무와 관련된 법령만 뒤적거리며 이리저리 바쁘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


 물론 조만간 예산이 내려오고, 사업 진행이 본격화 되면 부서 내 누구보다도 바빠질 게 당연할 거지만, 이 잠시 간의 업무 공백을 경험하면서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업무량은 한 개인의 삶을 완전히 황폐화시켜 버리지만, 반대로 자신이 속한 조직 안에서 자신이 딱히 없어도 되는 존재라고 느껴지는 자괴감 역시 한 개인의 삶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게 만든다.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똑같은 보상을 받아가는 공무원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논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월급이나 승진과 같은 물질적 보상과는 별개로 모든 인간에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인간이고 싶은, 기본적인 '인정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2주동안 처음으로 업무의 공백을 경험하면서 내게 잠재된 인정 욕구가 생각보다 꽤나 크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조금의 시간이 지나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이 무료함과 지겨움이 그리워질 시간이 조만간 찾아올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할 터인데, 지난 5년 동안 늘 일에 쫓기는 듯한 공직 생활을 보내서인지, 도저히 이 공백이 즐겨지지가 않는다.


 당장 내일 출근하면 가까운 미래에 미친듯이 바빠질 나를 위해서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에 대한 자괴감만 느끼고 있기 보다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기초를 다지는 등 생산적인 일들을 하며 출근해 있는 8시간을 보내야겠다.


 더도 말고 덜고 말고, 뭐든지 '적당한' 게 가장 좋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그러한 요즘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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