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게 민원대란

[PART 11]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by 옹기종기

민원대 일은 뒤에서 보던 것만큼 간단하진 않았다. 까다로운 고유 업무가 있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발급과 신고 업무의 종류가 꽤 광범위했다. 간단하게는 등초본, 인감 발급에서부터 복잡하게는 출생신고, 직권말소 처리까지 수십 종류의 업무 처리를 얕고 넓게 해야 했다. 업무 종류별로 다 다른 신청서 양식과 업무처리시스템 처리 방법을 익히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쯤 지나니 청소 담당을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여유가 찾아왔다. 내가 있던 동사무소엔 번호표 기준 하루 평균 200명 정도의 민원인이 방문했는데, 대부분이 등초본, 인감, 세금완납증명서 등 단순 발급 업무였고 사망신고, 출생신고 등 절차가 꽤 복잡한 신고 업무는 기껏해야 하루에 2, 3건도 있지 않았다.


민원대 인원이 총 4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한 사람당 하루에 대충 50명의 민원인을 상대한 셈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1시간에 3, 4명 정도. 민원인을 상대하는 시간 외는 전부 ‘대기 시간’이었고, 그 대기 시간 동안에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퇴근 후도 마찬가지였다. 따로 보고서를 쓰지도 않고, 담당 사업이나 예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결되지 않는 장기 민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6시 땡치고 사무실 문을 나서면 직장과 완전히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팀장, 동장과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업무적으로 부딪힐 일이 없으니, 나에 대한 부정적 관심 역시 줄어들었다.


그저 조용히 9시 전에 출근해 따박따박 민원 처리를 하고, 6시가 되면 컴퓨터를 끄고 집에 가면 되는. 그런 ‘공무원스러운’ 날들이 계속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아무리 편하고 부담 없는 상황이라도, 사람은 결국 그 편안함을 당연히 여기게 되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조금씩 불만을 품기 시작한다는 것에 있었다.


처음 몇 달간은 민원인들에게 친절하려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나 똑같은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고, 똑같은 부분에 대한 항의를 받고, 똑같은 부분에 대한 억지를 들으니 슬슬 민원 상대를 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110번 선생님, 어떤 업무 보실까요?”


(주민등록증을 툭 던지며)


“엄마 집에 전입신고 좀 하려고요.”


“전입하시는 곳 세대주분 함께 오셨을까요?”


“아뇨. 안 왔는데요.”


“그럼 세대주분 신분증, 도장, 위임장 가져오셨을까요?”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런 거 없어요. 우리 엄마 집에 들어가는데 그런 거까지 가져와야 돼요?”


“네 세대주분 같이 오시거나 신분증, 도장 챙겨서 위임 받아 오셔야 전입 가능하세요.”


“하... 나 안되긴 뭐가 안 돼요? 저번엔 그냥 해줬다니깐?”


쳇바퀴 같은 민원 상대가 이어질수록 단순하게 ‘사람’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가 커지기 시작했다. 저들은 내가 이렇게나 명확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왜 불리하다 싶으면 억지부터 부리는 걸까. 전에는 그냥 해줬다고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를 시간에 집에 가서 필요 서류를 가져오면 되는 게 아닐까. 그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는 저렇게 막무가내로 깽판 치는 사람들한테 공무원들이 절절매야 하는 나라가 된 걸까.


한번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정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그렇게 민원대 생활의 감사함(?)을 점차 잊어가던 어느 날, 나는 결국, 지금도 잠자리에 들 때면 가끔 생각나는 큰 사고 하나를 치고 만다.


(PART 12에서 이어집니다!)


* 배경 출처: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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