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보다 면직이 나은 이유

손에 쥔 것을 놓아야 할 때

by 옹기종기

나는 2020년과 2024년에 각각 면직과 휴직을 했다. 2020년엔 일반행정직 2년 4개월 차에 면직했고, 2024년엔 교육행정직 2년 3개월 차에 휴직했다. 면직 후 일을 안 한 기간과 휴직 기간을 합치면 얼추 2년 2개월쯤 된다. 현재 학교로 복직 후 약 1년 3개월 정도 일을 하고 있으니, 평균적으로 봤을 때 아직 일을 그만두거나 멈추기까지 1년 이상의 쿨타임(?)은 남아 있는 듯하다.


처음 일반행정직을 그만둘 때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대체 왜 휴직하지 않고 바로 면직하는 거냐고 물었다. 이유는 합법적으로 일을 안 하면서 일정액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휴직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대체 왜 그 카드를 안 쓰고 바로 무직자가 되려고 하냐는 거였다. 당시 나 스스로도 면직 후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자, 휴직부터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쌓아놓은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 들어가고, 새로운 일자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곧바로 구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의 후회를 교훈 삼아, 2024년엔 자연스럽게 면직이 아닌 휴직을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면직 때와는 다르게 휴직한 첫 달부터 본봉의 70%에 해당하는 휴직 수당이 나왔다. 똑같이 일은 안 하는데 적은 액수지만 월급이 나오고, 또 휴직 기간 동안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돌아갈 곳이 존재했다.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있을까. 막 휴직을 시작했을 때는 뒷일은 몰라도 적어도 휴직 기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휴직 후 2, 3개월이 지나가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리 잠을 자도 머리가 멍하고, 은은한 몸살 기운이 일상생활 내내 몸 안에 감돌았다. 그 증세는 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말로 복직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심해져서, 휴직 6개월차 이후부터는 낫지 않는 감기몸살 때문에 정상적인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코로나19에 처음 걸렸을 때처럼 늘 목과 코엔 가래가 가득했고, 몸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겉보기엔 면직 후 완전히 백수가 된 2020년보다, 돈도 받고 돌아갈 곳도 있는 2024년이 훨씬 더 좋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난 불안하기 그지없던 2020년보다, 2024년의 삶을 훨씬 더 힘들어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내게 2020년엔 있었고, 2024년엔 없었던 건 ‘더 나아질 거란 믿음’이었던 것 같다. 2020년엔 비록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가 하기에 따라 그 어떤 것이라도 쥘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모아둔 돈을 까먹으면서도 뭔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있었고, 그 느낌 덕에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음 스텝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4년엔 손에 쥔 걸 완전히 내려놓지 못해서인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질 못했다. 호기롭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다가 그것도 흐지부지 되었고, 여기저기 이직할 다른 직장을 알아보다가도 여긴 이래서 별로고, 여긴 이래서 그닥이고 하면서 결론적으로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10개월만큼 나이를 먹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정말 지금 직장이 평생 다닐 직장은 결코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면 어영부영 휴직을 하고 애매한 시간을 보낼 바에야 아예 면직을 하고 낭떠러지 앞에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더 현명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떤 것을 정해진 기한 내에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부담은 우리에게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지만, 반대로 그만큼 전에는 알지 못했던 엄청난 에너지가 내 몸속에 잠들어 있었음을 깨닫게도 해줄테니까 말이다.


* 배경 출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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