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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행직 공무원은 쉬는 날 일기예보 안봐도 돼!

일행 시절의 '비상근무' 관련 일화...ㅎ

by 옹기종기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 하나 있다. 바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심지어 태풍이 몰아치나(...) 중앙재난센터에서 비상소집명령이 각 지역으로 내려지면, 소속 공무원들이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와는 전혀 상관없이 각 부서별로 배정되어있는 동사무소로 달려가 '비상소집' 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행정직이든 사회복지직이든 건축직이든 통신직이든 직렬이 무엇이든 전혀 상관이 없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이라면 비상상황에서 지자체 공무원으로서 소집명령에 응해야하고, 또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해야한다.


예상치 못한 소집명령에 허둥지둥 비상소집을 하고 나면, 짝을 지어 관용차를 타고 나가 비가 쏟아지고 태풍이 몰아치는 현장에서 하수구가 범람하지 않도록 하수구를 뚫어야하고, 이면도로에 차가 미끄러지 않도록 염화칼슘을 뿌리고 눈을 쓸어야한다.


이러한 '의무'를 수행해야할 상황이 1년에 못해도 4,5번은 펼쳐지는데, 퇴근 혹은 주말에 급작스런 연락으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밤을 꼴딱 새야한다는 걸 감안하면 결코 적은 빈도의 의무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이 '비상소집'과 관련하여 일반행정 시절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ㅎ


때는 2019년 여름. 우리 지역에 '태풍경보'가 발효된 날이었다. 사실 태풍이라는 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매년 때만 되면 우리를 찾아오는 익숙한 자연현상이지만, 그 해의 태풍은 정도가 좀 심했다. 바람에 간판이 날라다니고 아파트 베란다의 유리창이 깨졌다. 창문을 닫고 집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휭~휭~ 울리는 바람 소리에 공포감을 느낄 수준이었다.


그렇게 집에서 베란다 창문을 꽁꽁 닫아놓고 티비나 보고 있는데, 부릉부릉- 내 핸드폰이 울리고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안전총괄과에서 알려드립니다. 현 시간부로 태풍경보 발령되었습니다. 각 부서별로 1/2 비상소집에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두에서 얘기했던 '비상소집'을 하라는 안내 문자였다. 다행히도 나는 며칠 전 폭우가 쏟아졌을 때 소집해 열심히 하수구(...)를 치웠기 때문에, 1/2 소집을 한다고 해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자리에 누우려는데 또 한번 내 핸드폰이 부릉부릉- 울려댔다. 우리 동사무소 '재난 담당'의 전화였다. 직감적으로 지금 동사무소로 나가야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재난 담당은 내게 전화로 말하길,


"oo주사님 어쩌지... xx주사님이 고향에 일이 있어서 지금 부산에 계시다네... 그 다음이 oo주사님 차례라... 지금 혹시 나올 수 있어?"


라고 미안한 태도를 보이려 노력하며 내게 이야기했다. 당연히 나는 이런 주먹구구식 시스템에다가, 나가는 사람만 계속 나가야하는 불공평한 상황에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입사한지 고작 1년차 밖에 안된 입장에서 마음에 품은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조용히 그냥 알겠다는 대답만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비바람을 뚫고 겨우겨우 운전을 해 동사무소에 도착하니 재난 담당과 동장, 그리고 민원대 직원 몇 명이 나와있었다. 다들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었는지 푸석한 얼굴에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동장실에 들어가 동장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초과근무 인정을 위해 출퇴근용 지문 인식기에 지문도 찍었다. 한밤중에 환하게 불이 켜진 동사무소 안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사이엔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나 또한 입을 굳게 닫은 채 내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동사무소로 민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민원의 내용은 지금 자기 집 지붕이 태풍에 부서져서 그 잔해물이 도로가로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고 있으니, 빨리 와서 응급조치를 해달라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건 소방서에 전화해야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그 민원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다급하고 신경질적이었기 때문에, 일단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 동장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돌아온 동장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건 원래 동사무소에서 처리해줘야하는 일이니, 당장 나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


몇몇 직원들이 우비를 입고 관용트럭에 올라탔다. 바깥의 날씨는 트럭 문이 쉽게 안 닫힐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중이었다. 평소 사람들이 자주 다니던 골목길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재난 담당이 천천히 트럭을 몰아 지붕이 떨어졌다는 그 연립주택으로 찾아가니, 그 현장에는 민원인의 말처럼 기와 모양으로된 연립주택의 지붕 상부가 완전히 무너져있었고 그 잔해물들이 바로 아래의 도로에 계속해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이미 그 아래 주차된 몇몇 차들 중에는 그 잔해물로 인해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진 차들도 있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태풍 피해 현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셔츠 바람으로 나온 우리가 그 위험한 상황에서 대체 뭘 할 수 있는걸까. 다들 멀뚱멀뚱 지붕 위만 쳐다보며 기와를 싸구려를 썼네, 공사를 날림으로 했네라면서 전혀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헛소리만 해대고 있는 와중에 동장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어이 oo씨 트럭 가서 안전 테이프 가져와."


동장은 내가 가져온 안전테이프를 천천히 풀더니 잔해물이 떨어지고 있는 주변 기둥에다가 안전 테이프를 칭칭 둘러댔다. 그리고 가져온 A4 용지에 '낙석 주의' 네 글자를 공들여 썼다.


내가 정성껏 글씨를 쓰고 있는 동장을 보면서 '그래 저렇게라도 하면 좀 낫긴 하겠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내 얼굴 바로 옆으로 커다란 나무 합판 하나가 휭~ 하고 지나갔다. 거센 바람에 주변 공사장의 나무 합판이 날라온 것이었다.


순간 너무 놀라 소리도 못지르고 가만히 서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날아가 있는 나무 합판을 보니, 그 합판에는 온갖 녹슨 못과 공업용 스테이플러 침이 사방팔방 붙어 있었다. 만약 내가 한 발짝만 오른쪽에 서서 동장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그 녹슨 못과 스테이플러가 내 얼굴에 그대로 날라와 박힐 뻔한 것이다.


나는 아연실색한 나머지 동장에게 빨리 사무실로 돌아가자고 사정하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동장은 내 얼굴로 합판이 날아온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쪽 순찰도 나온 김에 하고 가자고 재난 담당에게 귀찮은듯이 이야기하며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책도 이유도 없이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직원 안전도 챙기지 않는 동장을 보면서 속에서 천불이 끓어 올랐다.


그렇게 몇군데 더 순찰을 돌고 나서 다시 동사무소로 돌아오니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통풍도 잘 안되고 그렇다고 방수가 잘 되는 것도 아닌 싸구려 우비를 몇 시간동안 입고 한여름 바깥에서 돌아다녔더니 내 몸은 온통 비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마땅한 샤워시설도 없는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만 하고 다시 내 자리로 와 앉으니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쓰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서야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 9월 의원면직을 하고 완전히 기관에서 나오기 전까지 대여섯번정도 더 비상근무에 나섰고, 그럴때마다 이 때의 기억이 떠올라 매번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란 고민에 며칠씩 잠을 못이루곤 했다.


물론 지방직 공무원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이에 대응해야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어떠한 안전 장비도 갖추지 않고, 어떠한 체계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사태에 대응했단 '시늉'만 하고, 실제 효과는 미미한데 고생은 소속 공무원 모두가 나눠서 지는, 이런 답답한 비상대응 시스템은 빠른 시일 안에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 곳을 떠나 홍수가 나든 태풍이 오든 현장에 출동할 일은 앞으로 없을 테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입직하여 오늘도 밤낮없이 고생하는 일반행정직 공무원분들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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