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인사이동은 2년마다 있다
이 부서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날 소속 기관에서 승승장구하여 10년 만에 6급을 단 한 주무관이 자신이 좀더 겸손해지기를 바라며, 퇴직을 앞둔 35년차 4급 서기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서기관님. 좋은 부서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들었을 땐 겸손해지고, 기피 부서에서 면직하고 싶은 사람이 들었을 땐 버틸 힘을 주는 그런 말이 없을까요?"
그러자 6급 주무관의 말을 들은 4급 서기관은 희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부서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말의 유래인 솔로몬 일화를 각색해 봤습니다.ㅎㅎ)
공무원 생활을 하다보면 위기가 참 많이 찾아온다. 특히 행정직으로 근무하다보면 그 업무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이건 건축사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이건 변호사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고난도의 업무를 처리해야할 경우도 종종 생겨나고, 가끔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 팀이 해야할 일을 혼자서 몽땅 처리 해야할 경우도 생겨난다.
업무 관련 위기뿐만이 아니다. 상사가 됐든, 부하직원이 됐든 '저 사람은 당장 치료를 받아야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정신이상자들과 같이 일하는 경우도 생기고, 일을 못하는 걸 마치 자신의 경쟁력인양 당당하게 어필하며 최소한의 업무분장만 받아가려하는 수준미달의 동료들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업무든 사람이든 한 쪽만 운이 나쁘게 걸렸다면 그럭저럭 한숨 쉬면서 직장을 다닐만 하긴 하지만, 만약 맡은 업무도 최악이고 함께 일하는 동료, 상사도 최악인 상황에 마주치게 된다면 그 상황에서 웃는 얼굴로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인간관계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평정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럴 때 경우에 따라서는 병휴직을 내고 일단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심한 경우에는 나처럼 좀더 적극적인 결단을 내려 의원면직을 해버리고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곳을 누가 시켜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운이 좋아 공짜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열심히 공부해서 힘들게 들어온 직장이 아닌가. 공무원에 비해 이직이 용이한 일반 사기업 회사원들도 퇴직을 몇 달씩 고민하는 마당에 평생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을 쉽게 때려치는 것은 현실세계에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의원면직을 고민하는 동료나 후배가 있다면 꼭 서두에 언급한 솔로몬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우리 인생이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안좋을 때는 바닥이 어딘지 모를정도로 끝없이 떨어지는 걸 생각하면, 공직에서의 생활도 이와 별 다를 게 없다.
9급 신규 때 좋은 부서, 좋은 사람들 사이에 발령이 나서 '일잘한다', '능력있다' 평가를 받던 사람도 바로 다음 발령 때 기피 부서에서 정신이상자인 팀장 과장을 만나면 곧바로 일못하고 사회성 떨어지는 문제아로 낙인 찍힐 수 있는 게 바로 공직 사회다.
그러니 혹시 자신이 지금 앞에서 언급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문제 있는 사람들의 평가나 말도 안되는 업무량에 압도되어 자존감을 좀먹고, 퇴근 후의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어차피 나도 2년이면 이 곳을 벗어나고, 나를 괴롭히는 저 사람도 2년이면 이 곳을 벗어나니 딱 2년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부담을 내려놨으면 좋겠다.
2년이란 시간이 신규 공무원 시절에는 영겁과도 같이 길게 느껴지지만 결국 그 누구도 좋은 상황에서만 근무하는 것이 아니고, 그 누구도 나쁜 상황에서만 근무하는 것도 아니다. 공직 생활 초반의 어려움이 나중에 좋은 부서에 발령 받아 지루함과 자만에 빠지게 되려할 때 그를 잡아주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 그 때의 겸손함이 거름이 되어 다음 번의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을 때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게 2년, 2년 지나다 보면 어느새 35년이란 시간을 잘 버티고 명예퇴직을 기다리는 '성공한 공무원'이 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승진을 하려고 공직에 들어온 게 아니다. 이 곳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서 이름을 알리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 곳의 사람들과 어울려 인간관계를 넓히려 들어온 것도 아니다. 다만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적당한 돈벌이를 해서 이 사회를 살아갈 힘을 얻고자하여 이 곳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너무나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도 무조건 버티자란 생각으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고, 남에게 신경쓰지말고, 남과 비교하지말고 내가 맡은 업무만 문제 없이 처리하자. 그러고 나서 퇴근 후의 진짜 내 삶을 살면 그게 바로 '성공한 공무원'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