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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01. 2022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그걸 해

유튜버 친구를 둔 교행 일기

 사람이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의 기능이 점차 떨어져 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조금씩 알게되는 삶의 지혜가 내게 남아있는 미래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넘어오면서 소화불량, 불면증, 시력 저하 등을 얻었지만, 반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해져 나이든 것에 나름 만족하는 편이다.


 나는 어린 시절, 사람의 인생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했다. 가령 반에서 1등하는 친구의 삶이 반에서 20등하는 친구의 삶보다 더 가치있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람의 인생이 그저 그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인생보다 훨씬 더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몇 번의 부침을 겪고 지금 삼십 대의 나이가 되고 나니, 어린 시절 내가 바라봤던 인생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삶은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복잡했다. 재산, 직업, 학력, 외모 등등 획일화된 인생의 기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들이 우리들 삶엔 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내 중학교 시절 친구 중, 생각지도 못하게 유명유튜버가 되어 준연예인(?)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ㅎ


 나와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이 되어 친해졌다. 그 친구는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농구나 축구도 잘했고, 무엇보다도 온갖 '게임'에 능숙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인기 있었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등 게임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게임을 잘했고, 메이플스토리나 바람의나라와 같은 RPG 게임에서도 금세 게임 내 최고 레벨을 달성하곤 했다. 공부만 안했을 뿐 머리도 좋고 정말 재능이 많은 친구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그 친구는 중학교 3학년 시절 공부에 뜻이 없으면 인문계보다는 차라리 공고를 가서 빨리 취직을 하는게 낫다는 담임의 말에 이끌려 인문계가 아닌 '공업고등학교'로 원치 않는 진학을 하게 되었고, 다른 학교로 진학한 나와 그 친구는 잠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은 내가 군대에 가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쉬고 있던 2010년의 가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는 중학교 시절의 모습과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나와 이야기하는 내내 줄담배를 피워댔고, 예전에는 쓰지 않던 상스러운 욕도 대화 중간중간에 서슴없이 섞어 썼다. 그 친구의 삶이 예전보다는 조금 더 피폐해진 것 같았다. 무엇을 하며 지내냐했더니 딱히 하는 건 없고, 피시방에서 밤새 좋아하는 게임만 주구장창한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그 때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실망을 했던 것 같다. 중고등학생 시절도 아니고 나이도 들만큼 들어서 아직도 피시방에 죽치고 앉아 게임이나 하고 있다니... 훈계조로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어차피 관계만 나빠질 것 같아 말을 삼키며 다음에 또 보자며 만남을 서둘러 정리했다.


 그러고 또 시간이 지나 나와 그 친구 모두 군대를 전역하고 각자의 삶을 꾸역꾸역 살아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무렵까지도 그 친구와 종종 연락이 되어 하는 대화의 대부분은 '게임 아이템 사기를 당했다, 얼마전 취업한 게임 회사에서 일주일만에 도망쳐 나왔다.' 등의 도저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맘때쯤 지방직 시험에 합격해 여러 인간 관계가 새롭게 형성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친구와의 관계도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렇게 연락이 끊기고 1,2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다 2019년 여름.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은 그 친구가 내게 연락해서가 아니라, 다른 중학교 친구와의 통화 중에 나온 그 친구의 소식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만난 그 친구가 모임에 '벤츠 E클래스'를 타고 나타나, 그 날의 모든 음식값과 술값을 계산하고 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중학교 친구의 말을 듣고는 부끄럽지만 그 친구가 불법적인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딱히 탈출구가 없을 것 같던 인생을 살던 친구가 갑자기 그렇게 큰 재력을 갖추게 된 것이 사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의심을 품고 그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친구는 누구보다 멀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말투나 표정에서도 자신감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몇 년 전에 봤던 피폐해진 모습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많던 그 친구의 본래 모습을 되찾은 듯이 보였다.


 가만히 그 친구의 최근 이야기를 들어보니, 몇 년 전부터 직장생활과 병행하던 '유튜브 활동'이 슬슬 반응을 얻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유튜브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유튜브가 더 성장해서 한 달에 평균 1천만 원을 버는 대형 유튜브로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 친구가 말해준 채널명을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이미 구독자 수가 20만에 가까운 게임 분야에선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유튜브가 되어 있었다. 평생 공부하고 시험치는 것밖에 몰랐던 그 당시의 나에겐 정말 적잖은 충격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풀리는 경우도 있구나. 힘겨운 이십 대를 보내고 당당한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의 얼굴에는 많은 고민 끝에 삶의 방향을 찾은 사람의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와 그 친구의 삶엔 딱 하나의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획일화된 생각에 갇혀 왜 공부해야되는 지도 모른 채 시험 점수에 집착하고 남들과의 등수 경쟁에 함몰됐던 반면, 그 친구는 남들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잘 하고', '하고 싶은 것'만 어린 시절부터 주구장창해왔다. 그 결과 중학교 시절부터 쌓아온 게임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켜켜이 쌓여 이십대 후반에 20만 구독자의 유명 유튜버가 될 수 있는 거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의 성공을 본 이후에는 한 번 사는 인생 절대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곤 2년 반을 다닌 지방직 일반행정을 그만 두고, '가슴이 뛰는 진짜 삶'을 살기 위해 내 인생을 건 도박을 한 차례 시도했다. 다행히도 목표했던 결과를 이뤄 지금은 이른 퇴근을 하는 직장에 다니며, 이렇게 글도 쓰고 운동도 하며 내가 어린 시절부터 원했던 삶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만들어 가고 있다.


 무엇이 됐든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친구처럼 20만 유튜버가 될 수는 없겠지만(...ㅎㅎ) 남은 내 인생이 헛되이 지나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금부터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ㅎ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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