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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06. 2022

연수원 입교날의 기억

[RART 1]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최종 합격 서류를 oo구청에 제출하고 나서 약 한 달쯤 지나니 구청 총무과에서 xx시 연수원 홈페이지를 통해 연수원 입교 신청을 하라는 연락이 왔다. 마침 슬슬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지겨워지던 차에 앞으로 30년동안 일할 직장에서 평생 함께 지낼 '동기'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총무과의 전화가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나는 함께 면접스터디를 했던 사람들과 일정을 맞춰 'xx시 신규공무원 연수원 3기' 일정에 입교 신청을 했다. 최종합격 발표일이 2월 말이었고 연수원 입교날이 4월 초순이었으니 약 한 달 반만에 처음으로 'oo구 공무원'으로서의 첫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어려운 시험을 뚫고 나와 함께 일하게 될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가슴이 설레고 한편으론 오랜만에 하는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연수원에서의 첫 일정은 2박 3일 합숙이었다. 입교식을 한 첫 날부터 동기들과 방을 배정받아 2박 3일 동안 일단 합숙을 하고 그 다음 남은 일정은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식이었다. 입교식에 입을 정장을 입고 가야했고, 또 2박3일 동안 사용할 개인물품 등도 챙겨야했기에 첫 날 연수원에 들고갈 짐이 두 손 한가득이었다. 나는 조금 예민한 면이 있어 집 밖을 떠나면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초면인 사람들과 낯선 환경에서 2박3일이나 함께 보내야한다는 게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연수원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 연수원으로 들어가니 마치 대학교 같은 커다란 건물과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입교식이 치러지는 연수원 중앙 강당에는 이미 하나같이 검은색 정장을 갖춰입은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쭈뼛쭈뼛 내 이름이 쓰여진 자리를 찾아 짐을 내려놓고 앉아 4월의 봄 날씨와 약간의 긴장감으로 인해 흘린 땀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안정을 찾고 시야를 넓혀 주변을 둘러보니 내 나이 또래의 남녀가 모두들 조금씩은 긴장한 표정으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며 앉아 있었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고, 이미 다른 직장에서 꽤 많은 경력을 쌓고 온 듯한 인상의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더러 있었다.


 앞으로 저들과 말을 놓고, 친해지고, 한 공간에서 30년을 일할거라 생각하니 뜬금없게도 삶과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마침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내가 사는 지역에 응시를 하였으며, 다른 해에는 있지도 않았던 추가채용 시험이 치러져 저들과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마 중간에 한 번이라도 어긋난 부분이 있었다면 저들과 나는 평생 서로의 존재 자체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아직 저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없었지만 저들의 존재가 참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입교식이 시작되었다. 연수원장과 xx시장의 격려 말씀이 이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높은 분들을 만났던 것이지만, 그 당시엔 그저 "아저씨들 참 말 재미없게 한다.."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약 30분정도의 짧은 입교식이 끝나고 각자에게 배정된 합숙실로 찾아 들어가 대기하고 있으란 실무자의 안내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나는 연수원 입교 전에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합숙 관련 안내문을 펼쳐보며 내 수험번호가 쓰여있는 합숙실을 찾아 여러 사람들의 행렬에 맞춰 연수원의 합숙관으로 걸어들어갔다.


 나와 같은 방을 쓴 친구는 내가 지원한 oo구의 옆 동네인 aa구의 일반행정직으로 들어온 친구였다. xx시의 국립 대학을 졸업한 그 친구는 나와 나이도 같았고 공무원 시험을 위해 투자한 기간도 비슷했다. 그 친구는 애초에 대학 시절 세무사 준비를 꽤 오래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공무원 시험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고생 끝에 이번 시험에 합격했다고 자신의 짧은 합격 수기(?)를 들려줬다. 처음부터 공무원이 목표는 아니었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이 곳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합격의 기쁨을 말하는 와중에도 그 친구의 얼굴엔 처음부터 원하던 꿈을 성취하지 못하고 차선책을 택한 사람의 아쉬움이 조금은 드러나 있었다. 처음부터 공무원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나는 "그래도 공무원만한 직장이 얼마나 있겠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그 친구와의 첫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주변 정리를 하고 그 친구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앉았으니 금세 저녁이 되어 첫 날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할 시간이 되었다. 내게 배정된 침대에 누워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고 스탠드 등을 껐다. 도심지에서 약간은 벗어난 산 중턱에 위치한 연수원의 밤은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참으로 고요했다. 암순응이 일어난 눈으로 천장에 달린 화재용 스프링쿨러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 걸까, 언젠간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생각이 머릿 속에서 쉴새없이 얽혀 쉬이 잠이 오지 않았지만, 내일부터 본격적인 연수원 일정을 소화해야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연수원에서의 내 첫 하루가 지나갔다...


(PART 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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