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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08. 2022

연수원에서 만난 나의 연인

[PART 2]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둘째 날부터 이어진 연수원의 수업은 'xx시의 역사, 공문서 작성법, 공무원으로서의 마음가짐' 등 주로 공직자로서의 올바른 가치관 함양이나 공무원 업무와 관련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국어, 영어, 한국사 등 공무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시험 과목만 열심히 공부해서 이 곳에 들어온 우리들로서는 아무리 수업을 따라가려 노력해봐도 도저히 집중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었다. 중간중간 '아이스브레이킹'이라고해서 옆 짝꿍과 율동 같은 것을 따라하기도 했지만,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기는커녕 처음 보는 짝꿍과 반강제적(?)인 친밀감을 나누고 나니 오히려 더 어색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사실 연수원에서의 본격적인 일정은 모든 수업 과정이 끝난 오후 6시부터 시작되었다. 2박3일의 합숙이 끝나고 나서 어느 정도 친밀감이 생긴 우리들끼리는 직렬별로, 지역별로, 나이별로 삼삼오오 모여 퇴근 후의 '진짜 연수'를 시작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에 익숙한 친구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았고,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친구들도 어느정도 분위기가 형성되고 나니 너나할 것 없이 모임에 참석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보는 사람마다 나이를 묻고, 사는 지역을 묻고, 어떤 학원에서 공부했는 지 등을 물으며 열심히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들뿐이었지만,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끼리만의 반가움과 유대감이 하루가 다르게 싹터갔다. 개중에는 따로 소모임을 만들어 더 깊은 교류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벌써 연수 1주차부터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누구와 누구가 사귄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마치 다들 7,8년 전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오랜 수험 생활로 사람들과의 소통에 목말랐던 나 역시 이런저런 모임에 쉴새없이 참여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수원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연수원 2주차의 어느날, 한 친구에 의해 한 번도 모이지 않았던 oo구 일반행정 신규 동기들끼리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1주차까지는 주로 연수원에서 지역별로 고루고루 섞어 놓은 '1조, 2조' 단위로 약속을 잡아 모임을 하곤 했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다른 구에 속하거나 다른 직렬에 속한 그들과는 앞으로 지역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만날 일이 딱히 많을 상황은 아니었다. 진짜 친해져야 하고, 앞으로 계속 인연을 이어갈 친구들은 사실 몇 명되지 않는 'oo구 일반행정직 동기'들이었다. 그 중에는 조별모임을 통해 이미 친해진 몇몇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오며가며 얼굴만 봤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임에 가기 전, 은근히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모임은 수업이 끝난 직후인 오후 6시 30분, xx시 연수원 주변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열렸다. 우리 조의 oo구 친구와 함께 미리 호프집에 가 조용히 앉아 있는데, 하나둘씩 oo구 친구들이 주변을 살피며 호프집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아직은 친한 사람이 많이 없어 조금은 어색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자리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호프집 문을 열고 한 친구가 들어왔다. 작고 하얀 얼굴에 가녀란 몸을 가진 그 친구는, 상의는 얇은 흰색 봄용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하의는 캐쥬얼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연수원 2주차를 거치면서도 처음 본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하얗고 밝은 얼굴은 내 생전 본 적 없었던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른 저 친구의 옆자리로 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얼른 저 친구와 친해지고 더 나아가 둘만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그 친구의 이름이 무엇인지, 몇 살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다.


 모임이 시작되고 나와 함께 앉은 사람들에게는 대충 핑계를 둘러대고 나서, 그 친구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 친구를 포함한 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 친구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평한 관심을 쏟는 척 하면서 내 시선은 그 친구만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 친구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은 눈치챘을 것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보다 어린 줄 알았던 그 친구도 나와 같은 91년생 동갑이었고, 신기하게도 사는 곳 역시 걸어서 10분도 안걸리는 우리집 바로 옆 동네였다. 대학 전공도 나는 국어국문학과, 그 친구는 영어영문학과. 인문대를 나와 취업길이 막막해 떠밀리듯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까지 똑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겠지만..(ㅎㅎ) 나는 이런 모든 우연들이 운명처럼 느껴졌고, 지금 이 친구와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몇몇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었고, 모임이 시작되고 나서 약 3시간 후, 앞으로 평생 볼 사람들인 'oo구 일반행정 신규 동기' 모임이 끝이 났다. 집에 가는 길에 동기들과 인사를 나눴고, 그 친구와도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 노력하며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다. 혼자 조용히 지하철에 앉아 집에 오는 길에, 바로 몇 시간 전까지 내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던 그 친구의 하얗고 밝은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내일 연수원에 출근하면 그 친구가 어디 앉아 있는 지부터 찾아봐야겠다."


 오늘 모임에 참석한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지하철 벽에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PART 3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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