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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10. 2022

어디로 발령날까 설레하던 시간들

[PART 3]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연수원의 일정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우리들의 관심은 과연 언제 '발령'이 날 것인가로 모여졌다. 구청 어느 과가 좋다더라, 좋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은 구청장이 총무과나 기획조정실로 데려간다더라, 동사무소로 발령나면 능력없는 것으로 찍힌 거라더라...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 사이에서 끝없이 흘러나왔다.


 우리와 연수를 같이 받던 친구들 중에서는 우리가 합격했던 시험인 2017년 하반기 추가채용 시험이 아닌, 2017년 6월에 있었던 정기 지방직 시험에 합격해서 들어온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그들은 유예 혹은 늦은 발령으로 인해 제때 연수원을 수료하지 못하고, 먼저 발령이 나 일을 하던 와중에 연수원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애초에 백수인 상태에서 연수원에 들어와 이것저것하고 있던 우리들과는 다르게 그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그늘'과 함께 뭘 잘모르는 우리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게 드러나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나와 동갑이었고, 한 명은 나보다 세 살이 어렸었는데, 매번 술자리에서 별 시덥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고 나면 우리는 어미새를 기다리는 아기새들마냥 그들 앞에 모여앉아, 그들이 직장생활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들도 기껏해야 경력 한 달차 혹은 경력 두세 달차밖에 안되던 '아무 것도 모르는' 신규들이었지만, 공무원의 '공'자도 모르던 그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들이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처럼 보였었다. "8급 진급은 언제 해?", "한 달 월급은 얼마야?", "진짜 정시퇴근, 워라밸 가능해?" 너무나도 유치하고 설익은 질문들이 오갔고, 그들은 질문의 수준에 맞게 최대한 아는 척하며 설익은 대답들을 돌려주었다. 분명 주변에 공무원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속으로 우리를 꽤나 비웃었겠지만, 어쩌랴 그 때는 그게 너무 궁금했고 그런 대화를 하는 게 너무나도 즐거웠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 되던 중, 연수원 수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3주차 수요일. 연수원 내에 구겨진 A4 용지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다들 수업 시간에도 그 종이를 돌려보며 숙덕대고 있는 것을 보니 슬슬 그 종이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1교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종이의 정체는 바로 4월 xx일 기준으로 나온 '인사발령자 명단'이었다. 간단한 엑셀 양식으로 작성된 그 명단에는 승진, 전보, 휴직, 복직 등을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맨 아래 위치한 '신규임용' 명단에는 나와 바로 어제까지도 신나게 술을 마시며 놀던 친구들의 이름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oo이는 총무과...xx는 교통과...cc는 동사무소...ee이도 동사무소...어? 그런데 내 이름이 없네?"


 20명 남짓되는 신규발령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oo구에서는 필기성적 순으로 신규 발령자를 선정했고, 합격컷에 고작 3점 높은 점수로 합격했던 나는 성적이 높지 않아 첫번째 발령 명단에 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 날 저녁 술자리에서 발령이 난 친구들을 축하해주며 나는 내심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총무과 등 좋은 부서로 발령이 난 친구들이나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사무소로 발령난 친구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너무나도 앞서가는 생각이었지만, 저 친구들보다 발령이 늦어지면 향후 진급하는 데에도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로는 늦게 발령나서 놀 시간이 많아져 너무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남들에게 지는 건 죽기보다 싫어했던 나는 속으로 '쟤네가 나보다 나은 게 뭐지..?'라는 귀여운 질투까지 하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좋은 시절이었다. 그렇게 신규임용발령이 난 지 이틀 후, 우리는 입교식 때 입었던 정장을 다시 한번 입고 'xx시 신규공무원 3기 연수원 과정'을 최종 수료했다. 몇몇 친구들은 가족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연수원 수료를 축하해주기도 했다.


 벚꽃이 만개한 4월의 봄날은 정장을 갖춰입고 한껏 꾸미고 온 젊은 남녀들이 기념 사진을 남기기에 참으로 좋은 날씨였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고, 곧 내 여자친구 될 그 친구와도 쭈뼛거리며 기념 사진을 남겼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느껴졌다.


'이제 좋은 곳으로 발령이 나,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된다.'


 나는 속으로 최종합격했을 때 했던 다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조만간 다가올 신규발령을 조용히 기다렸다...


(PART 4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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