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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May 10. 2022

동사무소 발령 첫 날의 기억

[PART 4]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나는 즐겁기만 했던 연수원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2018년 5월 oo구의 한 동사무소로 첫 발령을 받았다. 연수원 3주차였던 4월 말에 발령을 받은 동기들에 비하면 약 한 달정도 늦은 발령이었다.


 내가 oo구 총무과로부터 발령 안내 전화를 받은 것은 월요일이었던 발령일 기준으로 3일 전. 그러니까 발령일 전 주 금요일 오후였다. 마침 날씨가 좋아 동네 뒷산을 올라갔다와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오후 6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이번 주도 발령이 안나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우리 지역 번호로 시작되는 전화가 내 휴대폰으로 걸려왔다. 직감적으로 발령전화라는 느낌이 들어 잽싸게 전화를 받으니, 아니나다를까 총무과 인사팀 직원이었다.


"ooo씨 맞으시죠? 5월 xx자로 발령나셨어요. 발령지는 oo동사무소입니다. 월요일에 늦지 않게 출근하세요."


 다행히도 내 첫 발령지인 'oo동사무소'는 내가 연수원에서 만났던, 나보다 몇 살 어린 내 동기가 이미 발령받아 일하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곧바로 카톡을 남겼다.


"xx야. 나 이번에 거기로 발령받았는데 혹시 주말동안 준비해갈게 뭐가 있을까?..."


 그 친구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딱히 이틀 동안 준비할 건 없고, 운전 면허가 있으면 운전이나 미리 익혀오라고 했다. 내가 받을 업무 분장이 '청소-재난-민방위' 자리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운전'할 일이 많을 거라는 거였다.


 나는 살면서 동사무소에 몇 번 가본 적도 없지만, 동사무소에 '청소'라는 업무분장이 있을거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청소는 미화원분들이 하는거 아닌가?...' 전혀 모르는 업무를 월요일부터 해야한다는 두려움이 확 들었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잔 마음으로 근처 운전 학원에 빠르게 운전 연수 과외를 신청했다.  운전 기사는 매우 불친절하고 기분 나쁜 사람이었지만 나름 중요 포인트는 잘 짚어주어서, 나는 주말 이틀 동안 적어도 '혼자서 운전할 수 있는' 상황까진 만들어 놓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oo동사무소로 가기 전 oo구청에 먼저 들렀다. 구청장으로부터 임용장을 받고 총무과에 들러 인사기록카드 등 인사서류 몇 개를 작성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곤 총무과 사무실에 애매하게 혼자 앉아 있으니, oo동사무소에서 나온 직원 2명이 나를 데리러 왔다. 40대 초반쯤 되보이는 아주머니 한 명과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었다. 당시 그들을 따라갈 땐 그들이 누군지 전혀 몰랐지만, 발령 후 하루만 지나니 그들의 업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함께온 아주머니는 oo동사무소의 서무였고, 한 명은 동사무소마다 1명씩 있는 운전직이었다. 나는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oo동'이라고 써진 1톤 트럭을 타고 동사무소로 향했다. 구청에서 동사무소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 2년동안 함께 일할 사람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오래된 아파트촌 사이에 위치한 oo동사무소 건물은 한 눈에 봐도 오래되고 낡은 게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전형적인 2층짜리 관공서 건물에 외벽은 연분홍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밖에서 봤던 것과 다르게 민원인들로 인해 매우 시끌벅적했다. 여기저기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고, 프린터 출력하는 소리,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소리로 꽤나 정신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하나 멀뚱히 서있으니, 아주머니 서무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동장실로 총총총 걸어갔다. 동장실에 들어가니 50대 초반쯤되는 아주머니 하나와 50대 후반쯤 되는 아저씨 한 명이 앉아있었다. 한 명은 oo동사무소의 행정팀장이었고, 한 명은 oo동사무소의 동장이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한 자세를 취하려 노력하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어떤 얘길할까 긴장한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는데, 거만하게 다리를 포개고 앉아있던 동장이 내게 한 첫 질문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부모님 뭐해? 학교 어디 나왔어? 몇 살이야?"


 살다살다 초면에 이렇게 예의없게 말하는 사람은 스물여덟 인생 중 처음이었다. 마치 초반에 기선제압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찍찍 내뱉는 반말에, 찌푸린 얼굴로 선넘는 질문들을 해대고 앉아 있는 한 명의 '나이많고 예의없는 남자'를 보니,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시뻘개졌다. 내가 앞으로 적어도 2년을 일할 공간이다. 그들에게 면전에서 화난 것을 티내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겨우겨우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하하...부모님은 회사 다니시고... 학교는 옆동네 aa고 나왔습니다. 나이는 스물여덟입니다..."


"아니 고등학교 말고 대학 어디나왔냐고."


 나는 그 순간 앞으로의 2년이 참으로 순탄치 않겠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2년여에 가까운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청운의 꿈에 부풀어 첫 출근을 하는 날에 이런 사람을 상사로 만나게 되었다니. 머릿 속이 아득해졌다.


"군대 나왔지? 처음엔 겁나 깨지고 굴러야돼~ 잘해봐."


 그 '나이많고 예의없는 남자'가 해주는 덕담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마지막으로 듣고 나서, 나는 서둘러 동장실을 빠져나왔다.


 첫 출근 후 고작 2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온 몸엔 마치 마라톤 풀코스라도 뛴듯이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빨리 집에 가서 정장과 구두를 벗어던지고 아무 생각없이 자고 싶었다. 다음 날도 이 곳에 출근하고, 그 다음날도 이 곳에 출근해 이제는 업무까지 해야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람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라도 적응하게 된다지만, 이 곳에서 내가 적응해 일하고 있는 것이 일단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동사무소 발령 첫 날에 있었던 동장과의 첫 대면에서부터 '나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PART 5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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