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할머니와의 아귀다툼
[PART 5]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그렇게 '나이많고 예의없는' 동장과의 면담이 끝난 후, 동장실을 빠져 나오니 한 젊은 남자가 내게 다가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170 중반정도 되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던 그 남자는 이제 oo동사무소의 '청소-민방위-재난' 자리를 내게 물려주고, 구청으로 떠나는 내 '전임자'였다. 쾌활한 말투와 행동에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꽤나 만족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애써 동장실에서의 불쾌함을 털어버리려 노력하며, 그 남자의 친절한 인사에 유쾌한 말투와 표정으로 화답했다. 임용장을 받던 구청에서부터 40대, 50대 공무원들만 마주치다가 이제서야 내 또래의 젊은 남자를 만나니 나도 모르게 약간의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자리를 안내해주는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아침부터 꽉 조여놨던 목덜미의 넥타이를 손으로 당겨 풀어냈다. 하루종일 꽉 막혀있던 숨이 조금은 뚫리는 기분이었다.
전임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오늘 오전 중에 급하게 처리해야할 민원이 있으니, 일단 인수인계를 하기 전에 관용차를 타고 그 곳에 나가봐야한다고 했다. 어떤 상황인지 설명하는 전임자의 입에서 '무단투기, 폐지, 과태료, 대집행'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전임자의 말을 백 퍼센트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대충 처리할 쓰레기가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무실 의자에 앉은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전임자를 따라 oo동의 관용차인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을 타고 가는 내내 평소 신지 않던 구두 때문인지 양쪽 발이 욱신욱신 쑤셔왔다. 트럭 조수석에 앉아 깨끗하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지저분하다고도 할 수 없는 oo동 아파트촌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다 필요없고 이제 집에 가서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안타깝게도 관용차 대시보드에 달려있는 디지털 시계는 점심시간도 채 되지 않은 오전 11시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옆 자리에서 직접 운전을 하던 전임자는 계속해서 "아 이거 좀 늦겠는데..."라며 연신 초조한 모습을 내비쳤다. 마치 시간이 늦어진 게 내 잘못이라도 되는 듯,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들었다.
트럭이 멈춘 장소는 아파트촌이 아닌 허름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커다란 식자재마트 바로 옆에 위치한 그 골목에는 내가 살면서 본 무단투기 쓰레기 전부를 다 합친 것만큼의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또 다른 트럭을 옆에 세워놓고 형광조끼를 입은 아저씨 3명이 열심히 그 쓰레기들을 트럭 화물칸에 영차영차 옮겨 싣고 있었다. 아마도 oo동 소속의 미화원분들인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애매하게 인사를 한 뒤, 그들이 쓰레기를 옮기고 있는 것을 멀뚱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들 옆에서 정장을 빼입고 가만히 서있자니 뭔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oo씨, 그 겉옷 벗고 일로 와서 이것 좀 먼저 같이 치우죠?"
가만히 있는 나를 보던 전임자가 셔츠의 팔 소매를 걷어 부치며 자연스럽게 내게 같이 쓰레기를 치우자고 이야기했다. 어제 막 세탁소에서 찾아온 정장을 입고 이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게 과연 맞는가란 생각이 들었지만, 첫날부터 뒤로 빼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나는 정장 마이도 벗지 않은 채 미화원들 사이에 껴서 그들이 쓰레기를 치우는 것을 도왔다. 옮기는 작업을 몇 번하기도 전에 내 이마에선 굵은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미화원들은 별말없이 기계적으로 내게 쓰레기 더미를 넘겨줬다. 착착- 5명의 남자가 리듬에 따라 쓰레기 더미를 트럭 위로 올리고 있으니 마치 몇 년 전 군대에 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쓰레기의 종류는 참 여러가지였다. 먹던 수박껍질이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부터 선이 다 끊어진 바이올린까지 다양했다. 다만 하나같이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겨댔고, 들어올린 쓰레기 더미 사이에선 바퀴벌레와 개미들이 쉴새없이 기어나왔다. 비위가 약한 편이 아닌 나 역시도 그런 광경을 바로 앞에서 계속 보고 있으니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그렇게 쓰레기 더미를 옮기는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가던 무렵 갑자기 저 쪽 골목에서 삐쩍 마른 할머니 하나가 이 쪽을 향해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 할머니가 이 쪽으로 다가오자 쓰레기 치우는 우리를 구경하고 있던 지역 주민들도 조금은 겁먹은 표정을 하고 하나둘 자기 집으로 조용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그저 멍하니 쓰레기 더미를 내려놓고 그 할머니가 온갖 욕을 쏟아내며 이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알고보니 그 할머니는 이 곳에 쓰레기 더미를 쌓아놓은 무단투기 장본인이었다.
"야 이 xx놈의 새x들아!! 니들이 뭔데 이걸 가져가! 앙?!"
그 할머니는 우리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욕을 하며 주변 화단에 있는 흙을 사정없이 뿌려대기 시작했다. 나이깨나 먹은 노인이 어찌 그리 에너지가 넘치는지 성인 남자 다섯이 할머니 하나의 위세에 못 이겨 주춤주춤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한동안 소란이 이어지자 미화원 하나가 참다 못해 할머니에게 다가가,
"어르신 이러지 마세요! 이거 여기 쌓아놓으면 안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라고 미친듯이 난리치는 할머니의 손목을 움켜잡으며 타이르듯 이야기하니, 그 할머니는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바닥에 철썩 주저 않으며,
"어이구~! 이 사람이 내 꺼 훔쳐가는 걸로도 모자라 이제 사람까지 치네! 어이구! 어이구!"
라며 세상 떠나가는 듯 소리를 질러댔다.
온 동네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악다구니 쓰는 할머니 하나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화창한 5월의 푸른 하늘 아래서 발령 첫 날에 정장을 입고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니, 마치 무슨 독립 영화 촬영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날 정도였다.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보다 못한 전임자가 흥분한 미화원분들을 다독이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이제 그만 철수하자고 이야기했다. 다들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관용 트럭에 올라타고 있는데 열려있는 트럭 창문 사이로 그 할머니의 흙 세례가 이어졌다. 그 중 일부는 내 쪽으로 날아와 내 얼굴을 더럽히기도 했다.
겨우겨우 현장을 빠져나와 동사무소로 돌아오니, 다른 직원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민원인들을 상대하며 자신들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쓰레기로 더럽혀진 손과 흙에 맞은 얼굴을 정리하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아침까지만해도 깨끗했던 정장은 상하의할 것 없이 시커먼 쓰레기물과 흙으로 뒤덮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갈아입을 옷이라도 가져올걸...' 돌발 상황이 생길 것을 예상치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상식적으로 발령 첫 날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사람은 세상 그 누구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뒤따라 들었다. 화장실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후유-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전임자에게 내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인수인계를 간단히 받고, 길고도 지난했던 발령 첫 날을 마무리했다. 아까 그 현장에서 쓰레기를 치우느라 점심도 먹지 못한 상태였지만 배가 고픈지 안고픈지 판단이 되지 않을 정도로 퇴근 길의 나는 혼이 나가 있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전임자도 없이 이 일들을 나 혼자서 처리해야한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차라리 눈물이라도 나서 이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7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의 퇴근길이 참으로 먹먹하게 느껴졌다.
(PART 6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