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정한 퇴사,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적성 문제, 11년간 고민의 끝은 지방신문 기자 퇴사…행복 그 자체

by 만이

지방신문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지 1년도 안 됐을 때, 출입처의 한 공무원이 그랬다.


"그냥 딴 일 알아봐."


말수가 적어 소극적으로 보였던 탓에, 이러한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도 수없이 들었다.


그래도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있기에 버티고 또 버텼다. 사실 버텼다기보단 기자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내 성격은 기자랑 맞지 않는데…"라는 혼잣말은 회사 입구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적성과 생계 사이의 고민은 11년 동안 이어졌다.


더는 안 됐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기사를 쓰는 것이 무서웠고 그나마 조금 가지고 있던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무엇보다 내 연차의 절반도 안 되는 친한 후배가 지방자치단체 임기제 공무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았다. 기자로서 경제‧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바엔 새로운 일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뒤를 생각하지 않은 채 사표를 냈다.


물론, “이직할 곳을 찾고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쩌라고, 내 경력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건데?’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2024년 10월 말 공식적으로 사표가 처리된 후 내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첫 휴식이었다.


2년 전부터 생겼던 불면증은 더 이상 나를 젖은 솜처럼 만들지 않았다. 바쁜 기자 생활과 귀찮음 때문에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던 내가 튀르키예를 다녀왔다. 그것도 자유여행으로.


그해 연말, 대한민국은 어수선했지만 나는 가장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새해가 되자 나는 고향에서 본격적인 구직 활동에 들어갔다. 기자 출신을 채용하는 공공기관과 기업에 응시 원서를 넣기 시작한 것으로 제주도의 한 공공기관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는 퇴직금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자소서를 정리했고 제출 후 친구들과 술 한잔했다. 11년 동안 ‘글밥’ 먹고살았는데 자소서쯤이야.


역시나 해당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서류 합격 명단에는 내 응시 번호가 포함됐었다.


때마침 부모님도 그날 쉬는 날이라 면접도 보고 가족여행도 할 겸 제주도행 항공권을 끊었다. 그 순간, 과거 사주를 봤던 게 떠올랐다. 물이 없는 내 사주상 바닷가 근처에 살아야 하며, 특히 제주도에서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한다.


어느새 나는 제주도의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