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마치 운전이 체질인 듯, 첫 순간부터 제법 능숙하게 운전대를 다뤘고, 그 때문인지 운전하는 것이 참 좋았다. 하긴 그렇게 운전을 좋아했던 건 매일 오가던 출퇴근길이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길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내가 처음 근무했던 학교는 시골 읍내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깡시골에 있었다.
학교까지 10km 남짓 되는 좁고 꼬불대는 출퇴근길에는 차도 신호등도 거의 없었다. 길 양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논밭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일러주었고, 그 너머로 전해지는 구수하고 따스한 시골 내음은 어김없이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왔다. 그 길을 운전할 때마다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느꼈고, 나에게 운전은 힐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운전에 대한 이 행복한 기억은 5년 뒤 서울로 올라오면서 깡그리 잊혀졌다.
서울에서의 출퇴근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전과는 정반대인 혼란 그 자체였다.
너도나도 한 발 앞질러 가려는 차들 사이에서 아등바등 버텨야 했고, 정체 구간에 들어서면 꼼짝없이 앞차의 뒤꽁무니에 코를 박은채 한참토록 갇혀있어야 했다. 끼어들려는 차, 빠져나가려는 차가 실타래처럼 뒤엉킨 갑갑한 상황,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불만 섞인 클락션 소리들은 점차 나를 짜증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짜증에 북받칠 때마다 나는 곧바로 차 안에서 쏟아냈다. 속이 좀 시원해질세라 소리를 꽥 지르기도 했고, 평소에 하지 않던 욕설까지 툭 내뱉었다.
물론 창문은 닫은 채. 차 안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뭘 하든 간에 남이 알 리 없으니 상관없었다. 이미 짜증으로 빽빽이 찬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짜증을 낳고 있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이게 내 본성인가?’, ‘운전이 내 성질을 버려놓았나?’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변호하듯,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잘못된 상황들이고 그 상황들 때문에 짜증을 내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정당화했고 마음을 달랬다.
마치 누가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딱 내 앞에서 바뀌어버리는 신호등에 짜증이 났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다 쓰윽 끼어드는 얌체 같은 차에 짜증이 났다. 거기에다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막고 있는 민폐덩어리 차까지 봐야 할 때면 짜증은 불기둥처럼 치솟았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공간인 차를 철저히 방패 삼아 아무도 모르게 짜증을 쏟아냈고, 그 짜증은 점점 나를 여유 없고 이기적인 운전자로 바꿔놓았다.
오로지 내 갈 길만 생각하며 달렸고, 무엇이든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들은 죄다 싫었다. 양보와 배려도 당연히 뒷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 자신에게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어느 저녁 6시, 동부간선도로 퇴근길.
일반도로로 빠져나가기 위해 차들이 기차처럼 일렬로 늘어서는 악명 높은 구간에 도달했을 때였다. 이 길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듣고 난 후에 들어서면 이미 한참 늦은 상태라, 적어도 2-3km 전부터는 무조건 줄을 서야 한다. 나도 처음 이 길을 몰랐을 때 타이밍을 놓쳐 늦게서야 끼어들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덕분에 삥 돌아 1시간이나 늦게 집에 도착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이 길고 긴 행렬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였다. 약 200m 정도 앞에서 빨간 소형차 한 대가 쭈뼛쭈뼛 끼어들려는 모습이 보였다. 속도를 스물스물 줄이더니 이내 깜빡이를 켜고 소심하게 찔끔찔끔 들어가려다 말다 했다. 기다랗게 줄을 선 차들에 적잖이 당황한 듯 쭈뼛대는 행세를 보니 이 길이 처음인 듯했고, 과감히 앞꽁무니를 밀어넣지 못하는 걸 보니 운전에 썩 능숙한 편도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도 쉬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한시라도 빨리 이 행렬에서 벗어나고 싶지, 누굴 봐줄 여유는 없었다. 그 소심한 소형차가 쭈뼛대던 사이에 10대 정도가 쌩하니 지나갔고, 어느덧 내 앞앞 차례가 왔을 때였다.
갑자기 내 바로 앞차에서 창문이 열리더니, 얼른 들어오라는 손짓이 보였다. 끼워달라는 손짓은 봤어도, 끼워주겠다는 손짓은 처음이었다. 어디서 저런 여유가 나왔을까 조금은 놀라고 있었을 때, 무사히 끼어든 소형차의 창문 역시 열렸고, 엄지를 치켜든 따봉이 보였다.
그것도 네 개의 창문이 모두 열려 무려 4 따봉이라니!!
소형차 안에 가득한 친구들이 어떤 식으로라도 자신들의 무한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너도나도 따봉을 날리려는 왁자지껄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그 따봉을 받고 활짝 웃고 있을 뒤차의 운전자 모습도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 훈훈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짜증 섞인 표정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지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운전하면서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짜증이 났을까?
신호등도, 불쑥 끼어든 차도, 심각한 교통체증도,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건 없었다. 사실 차 한 대 끼워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고,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어 깜짝 놀랄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짜증을 낼 필요는 없었다. 신호가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살짝 아쉬울 순 있어도 그것 때문에 화를 낸다는 것 역시 말이 되지 않았다.
운전하면서 짜증 나게 만든 건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여유 없는 나 자신이었다.
운전을 막 시작했을 때, 힐링의 시골길에서 덜덜거리는 경운기가 내 앞을 막고 있어도 그 때의 나는 분명 짜증을 내지 않았다. 경운기의 속도에 맞춰 차분하게 뒤따라가다가, 알맞은 타이밍을 찾아 조심스레 앞질렀다. 여유가 있었기에 배려할 수 있었고, 그 때의 여유가 나를 힐링시켰다.
그래서 요즘 나는 여유를 톡톡히 즐긴다. 누군가를 기꺼이 끼워주고, 그런 나 스스로에게 따봉을 보내기도 한다.
인생을 운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꽉 막힌 도로에서 4 따봉이 웃음을 새어나오게 했던 것처럼,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이 새어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인생을 여유 있게 운전하다 보면, 결국 그게 바로 ‘따봉인생’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