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래킹
교직 생활 중 평생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자율휴직을 지른 해였다.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세상은 갈수록 험난했고, 한층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해 보였다. 많은 자기 계발서와 주변인들은 나에게 그동안 하지 못한 어떠한 도전을 해볼 것을 권유하였고, 결국 나는 고생을 자처하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하릴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중, 이 놈의 인스타그램은 도대체 매번 어떻게 내 결심을 그렇게도 빨리 알아차리는지 히말라야 트래킹 인원을 모집하는 광고창이 눈에 띄었다. 등반인들의 꿈인 에베레스트, 그리고 그 에베레스트가 자리한 히말라야 산맥. 듣기만 해도 경건해지는 산 중의 산이지만, 등반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나에게 히말라야는 단지 높고 유명한 산일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고생을 자처하고 도전하기로 마음먹었고, 히말라야는 도전하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장소였다.
어디엔가 홀린 듯 히말라야 트래킹 신청창에서 결제를 완료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출발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부터 내 안에는 설렘보단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 잡았고 그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평소 잠자리 환경에 민감한 내가 ‘롯지’라 불리는 허름한 베이스캠프에서 씻지 못한 채 견딜 수 있을지, 무서운 고산병이 나를 덮치지 않을지, 과연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등.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끊임없이 낳았고, 그렇게 나는 걱정과 후회 사이에서 트래킹 여행 준비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출국 날, 인천 공항에서 일정을 함께할 8명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예기치 못한 시련이 휘몰아쳐 왔다. 인천-홍콩-카트만두로 가는 비행 일정이었는데, 인천발 홍콩행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결국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홍콩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항공사는 어안이 벙벙한 우리를 방글라데시의 다카라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이름도 처음인 다카? 그 낯선 공항에 도착한 건 새벽 1시쯤. 그곳의 쾌쾌하고 음산한 공기는 우리를 더 움츠리게 했다. 누가 봐도 낯선 이방인인 우리를 주시하는 현지 사람들의 눈빛들을 어렵게 피하면서 내 인생 첫 공항노숙이 시작하였다. 액땜을 거하게 했으니 우리의 일정이 술술 풀릴 것 같다며 모두가 입을 모아 애써 긍정의 힘을 끌어올렸지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엇나갔다.
예정 일정보다 하루가 지나서야 카트만두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자마자, 이틀내내 씻지 못한 노숙자 행세의 우리는 당장 숙소에 가서 씻길 원했다. 그래서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숙소부터 갔는데, 웬걸. 샤워부스에서는 벌레가 꿈틀대는 흙탕물이 쏟아져 나왔고 결국 우린 호텔의 수도가 고쳐진 다음 날 아침까지 씻지 못하였다.
다음날 트래킹 시작점으로 가기 위한 국내선 비행기를 타러 갔을 때도 시련은 우릴 놓아주지 않았다. 비행기연착은 거의 없다던데, 하필 그날 기상악화로 인해 계속 되는 연착에 이 모든게 몰래카메라를 당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더 이상 일정을 지체할 수 없어 비행기가 아닌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승합차로 9시간 동안 이동하게 되었을 때는 거의 초탈한 모습이었다. 평소 차만 타면 멀미하니 비상용 봉투를 있는 대로 챙겼지만 과해도 너무 과하게 덜컹거리는 차에 멀미도 놀래버렸는지 아주 멀쩡했다. 만신창이인 상태로 트래킹해야 한다는 사실은 참 가혹했지만 이제 더 우릴 괴롭힐 게 남았나 싶은 생각에 힘없는 웃음까지 배시시 나왔다.
최종 종착지는 세계 3대 미봉이라 불리는 마차푸차레가 한눈에 보이는 고도 약 4200m의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이다.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매일 대여섯 시간 나흘간을 꼬박 올라야 한다. 고산병으로 힘들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동안의 고난들 덕분인지 나는 한층 강해졌고 앞사람의 발을 바라보며 묵묵하고도 값진 걸음을 더해갔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운은 끝까지 따라주지 않았지만, 나는 아쉬운 마음을 쉽게 내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한 번이라도 아쉬움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질세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마침내 종착지에 가는 날, 일출 산행을 위해 자정쯤 나섰다. 불빛 하나 없어 깜깜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머리에 단 헤드라이트에 의존하며 걸어갔다. 찌를듯한 추위에 얼굴은 에는 듯했고, 고산병 때문인지 머리도 지끈거리고 숨이 차올랐다. 까딱 발이라도 헛디디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온몸이 더 굳어갔지만, 멈추고 하산하는 선택지는 없었기에 입술을 깨물고 쇳덩이같이 무거운 한 발 한 발을 조심히 옮겨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뻘건 태양이 어디에선가 얼굴을 내미는지 하늘은 점차 매혹적인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었고, 종착지도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큰 보폭으로 올라 내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을 보았을 때, 그 감동은 감히 어떤 단어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감히 상상조차 못 할 만큼 위대하고 웅장한 자태에 내 몸이 가장 먼저 뜨겁게 반응했고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경이로움에 놀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지나간 모든 고난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그 모든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욱 감격스러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고도가 높아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베이스캠프에서 동료들과 카드 게임으로 밤을 보냈고, 씻지는 못했지만 누가 별을 흩뿌려놓은 듯한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찝찝함과 추위를 잊었다. 있는 대로 옷을 다 껴입은 채 침낭으로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기 때문에 숙소가 더럽고 벌레가 나와도 개의치 않았고, 물을 내리는 레버조차 없는 수세식 화장실에도 수일만에 완벽히 적응했다.
이 도전을 결심한 후부터 수도 없이 한 걱정, 예기치 못한 사건들, 그때마다 더 돈독해지고 여유가 생겼던 동료들, 그리고 무사히 하산하고 귀국하고 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하나의 커다란 퍼즐처럼 맞춰졌다. 그리고 그 퍼즐을 모두 엮었을 때 우러나오는 것은 행복이 분명했다.
행복은 참 아이러니하다. 행복을 좇으면 저만치 달아나버리는 것 같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순간 이렇게 또 뚝 떨어지기도 한다.
나의 긴 대장정에서 겪은 이 스펙터클한 여정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들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행복이었다. 언제든 꺼내어 자랑하고 싶은 이 대단하고 짜릿한 경험은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고, 그 어떤 것보다 크고 확실하게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가끔 나는 이런 화려하고 거창한 행복을 얻고자 일부러라도 뜨거운 고통을 자처하려 한다.
내 인생에서 크고 굵직한 행복들이 주는 힘은 분명히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