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으로 엮어가며 오늘도 교실을 지킨다
교사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교사가 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학창시절 내내 마주하던 교사가 흔해서였을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졌고, 그보다 남들 눈에 멋있어 보이는 특별한 일을 꿈꿨다.
예를 들면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과학수사연구원이나 판사, 외과의사 같은.
하지만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법, 내 수능점수는 적절한 선택지로 교대를 가리켰고, 그걸 알게 된 주변 어른들은 ‘교사예찬론’을 쏟아냈다. ‘방학이 있다’, ‘안정적이다’, ‘여자로서 최고의 직업이다.'
처음엔 괜한 반발심이 들었지만 머지않아 교사가 되어 안정적인 미래에 살고있는 나를 그려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생각해볼수록 썩 나쁜 것이 없던 교사라는 직업의 장점들은 점점 내 안에서 굳게 자리 잡았고,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교사는 내 적성과 딱 맞는 직업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유난히 큰 기쁨을 얻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나는 막둥이 동생이 5살이던 시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동생을 내 무릎에 앉혀 매일같이 한글을 가르쳤다. 조금이라도 한글에 재미를 느끼게 하고자 율동을 곁들여 한글 노래도 불러주고, 주변에 있는 온갖 물건들을 가져다놓고 그 이름도 하나하나 가르쳤다. '어떻게 내 동생을 재.미.있.게 가르칠까'라는 고민을 자연스레 했을 내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괜스레 대견함을 느끼곤 한다.
무언가를 누구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방대한 관련 지식을 명확히 탐구한 후 상대방에게 맞춰 가장 흥미롭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제하여 전달하기. 이 과정에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필요했고, 상황판단력, 순발력, 센스 모두가 조화롭게 요구되었다.
항상 새롭고 특별했기에 나는 점점 가르침에 자신감을 얻어갔고 이 가르침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교직 생활에 대한 기대도 커져만 갔다.
하지만 막상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접한 학교 현장은 상상과는 매우 달랐다. 교사 앞에 '담임'이라는 말 하나가 붙었을 뿐인데 무게감은 확 달라졌다. 25명 남짓한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해야 하는 일들에 치이다 보니 가르침의 기쁨을 펼치기는커녕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았다. 하루 6시간 동안 에너지가 과잉충전된 아이들과 좁은 공간 안에서 부대끼고 있는 상황에서 내 몸과 마음은 잠깐도 쉴 틈이 없었다.
쉬는 시간? 끊임없이 보채는 업무들을 어쭙잖게 처리한다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긴 하지만, 내 온 신경은 아이들에게 향했다. 순간 발생하는 싸움이나 다치는 끔찍한 사고를 막아보려 귀를 활짝 열고 눈엔 쌍심지를 켠 채, 잔소리를 삼켰다 뱉었다 하다 보면 어김없이 수업시작 종이 울린다.
점심시간도 다를 건 없다. 후식으로 주스라도 나올 때면, 뚜껑을 따달라는 아이들이 줄을 섰고, 잔반 검사 중 편식쟁이에게 한 입만 더 먹어보자고 어르고 달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정작 나는 내 입에 들어가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욱여넣기 바빴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까? 보육인? 행정 업무처리자? 상담사?
나는 그저 가르치고 싶고, 그 가르침에서 기쁨을 느끼는 교사이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과연 모두가 제각각 다른 이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할까?
사실 생각해보면, 가르친다는 것은 굉장히 신중하고도 엄중한 책임을 동반하는 일이다. 아무리 인생을 더 오래 산 선배라도 섣불리 후배를 가르치려 들면 꼰대라며 비난받기 십상이고, ai가 판치는 이 시대에 '교사'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언제나 파닥파닥 살아있는 눈빛으로 나를 마주한다. 그 눈빛들은 저마다 다른 빛깔을 띠고 있었고, 그 눈빛에 하나하나 집중하고 따라갔더니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관심분야 이야기에 금세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통해 개개인의 열정을 읽어낼 수 있었고, 이해했는지 여부도 눈빛만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마음 깊은 곳까지 비춰주었다. 갈 곳 잃은 눈빛을 보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헤아릴 수 있었고, 간절히 도움을 구하는 듯한 눈빛은 나를 그들의 마음속으로 초대했다. 심지어 흔히 할 법한 작은 거짓말도 어렵게 추궁할 필요가 없었다. '괜찮아, 선생님은 널 믿어'라는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아 10초 정도만 눈을 맞추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죄송합니다‘와 함께 진실을 토해냈다.
이처럼 아이들과의 '눈빛소통'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맑고 진실한 눈빛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진심을 담은 눈빛을 보낸 덕에 나 역시 생각지도 못한 큰 위로를 아이들에게 받는다. 유난히 지쳐 보이는 내 눈빛을 본 아이들은 하교 후 쭈뼛대며 “학원 가기까지 시간이 남아요”하며 청소를 도와주기도 했고, 정성으로 준비한 수업에서 열을 올리는 내 눈빛에는 악착같이 더 호응을 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빛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갔고, 동시에 서로를 가르쳤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존재는 나를 더 나은 교사로 성장하게 했고, 결국 그 과정 자체가 진정한 가르침이자 배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 해 동안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교사와 학생들은 커다란 실타래처럼 단단히 얽히고 뭉친다. 실타래의 시작은 눈빛이다. 처음에는 서로 낯설고 어색했던 눈빛들이 서서히 이해와 신뢰로 엮이며 관계의 기반이 된다. 가끔 실이 한 가닥씩 삐져나오듯 오해나 다툼도 생기지만, 그것마저 풀어내고 다시 이어가며 관계를 다듬어 나간다. 그렇게 매일의 소통과 교감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독히 닮아간다.
오늘도 아이들의 눈빛을 떠올리며 교실을 묵묵히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