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안아주기로 했다

이성은 정답이고 감정은 오답이라는 착각에 대하여

by 열정피자

"감정적으로 대하지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혹은 건네봤을 말이다. 마치 이성은 언제나 정답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고, 감정은 길을 잃게 만드는 장애물이라도 되는 양, 우리는 습관처럼 이성을 추켜세운다.


머리로는 분명 알고 있는데 제멋대로 날뛰는 마음이 기어코 일을 그르치는 일은 다반사다. 폭풍 같은 감정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다시는 절대 안그래야지" 다짐하지만, 야속하게도 실수는 반복된다.


나 또한 그렇다. 타고난 충동성이 강한 탓에 내 삶은 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성을 앞세우려 책으로 다스리고, 글도 써보고, 명상도 하고 별 난리부르스를 쳐도, 눈깜짝할 사이에 터져나오는 감정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단단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을 선망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이성은 올바른 스승으로, 감정은 억눌러야하는 사고뭉치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마치 플라톤처럼.


그러다 최근, 마음속 깊이 박힌 이 이분법적인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재미난 비유가 내 마음에 콕 박혔기 때문이다.


'코끼리와 기수'


거대한 코끼리 위에 올라탄 기수. 언뜻 기수가 코끼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수는 거대한 코끼리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다만, 기수는 그 위에서 코끼리의 시중을 드는 것이다. 코끼리가 가는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코끼리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발을 딛도록 도움을 주는 것. 추우면 담요를 덮어주고, 가려운 곳이 있으면 정성껏 긁어주는 것.



여기서 거대하고 본능적인 코끼리는 '감정', 그 위에 올라탄 작고 영리한 존재가 '이성'이다.




지금 내 안의 코끼리는 죽을것 같이 목이 마르다.

당장 물이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은 생존의 위협 앞에서 코끼리에겐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 때, 코끼리의 눈에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가 들어온다.

사실 기수도, 코끼리도 알고 있다.

저건 지난번 마시고 배탈이 났던 더러운 물이라는 것을.

기수는 온힘을 다해 고삐를 당기며 코끼리를 저지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목마른 짐승의 질주를 막기에 기수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다.


기수는 마음은 타들어가지만, 웅덩이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코끼리를 가만히 끌어안는다.

'물을 마셔도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이 덜 아플 수 있을까'를 골똘히 고민하면서.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다음번엔 코끼리가 이토록 목이 마르기 전에, 미리 맑은 샘물을 찾아줘야겠다고.



이성은 감정을 통제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감정을 돌보는 조력자여야 한다.


나는 이제 내 안의 사고뭉치 코끼리를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틈틈이 깨끗한 물을 보충해 주며, 이 길들지 않은 거대한 코끼리와 조금 더 행복하게 여행하는 법을 배워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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