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 1년 후, 다시 그 날을 꺼내본다.
작년 오늘. 딱 아침 8시 정각에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신기하게도 1년 전 그날의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장면들을 모아놓은 것만 같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동안 주체하지 못할 슬픔에 일부러 꺼내보지 않아서인가, 날것처럼 깨끗하고 선명하다.
여전히 '엄마'만 떠올리면 심장 안에서 물컹한게 덜컥 올라온다. 단번에 온몸을 기분나쁘게 뜨겁게 달구는 이 느낌이 아직도 매우 두렵지만, 몇 년 후에도 이 기억이 생생하라는 법은 없기에 먹먹함을 애써 삼키며 생각나는대로 끄적이고 또 남겨본다.
호스피스병동 예약이 가까스로 된 날 밤, 엄마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말로만 듣던 섬망 증세에 온가족이 엄마곁으로 모였다.
간호병동이어서 그동안 상주 보호자 1명만 된다고 깐깐하게 굴더니만, 의료진도 오늘만큼은 가족 다 오라고했다. 그만큼 엄마의 상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 때는 이미 부정하기에도 늦었음을 직감해서인지 멍하기만 했다.
나를 보고 뭔가를 말하려고 애써 소리를 내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엄마의 목소리에 마음은 미어졌지만, 애써 웃고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서로 피부를 맞대던 순간. 우리는 어느 때보다 깊게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잘 살거다, 걱정말아라.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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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금방 엄마는 힘이 들다며 소리를 지르며 잠을 잤다.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였고, 눈맞춤이었다.
3년동안 정말 고된 투병싸움이었다. 수술 3번에 항암 2회, 암 덩어리와 같이 제거된 장기들 때문에 요루, 장루까지.. 줄이란 줄은 몸에 다 꽂은 엄마를 간병하며 나는 참 비현실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계속 희망과 기적만을 생각했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비극의 결말은 절대 꺼내보지 않았다.
부정이 탈까봐. 절대.
엄마와도 참 많이 싸웠다. 어떻게 죽을까 맨날 고민한다며, "당장 죽고싶다, 힘들다"를 입에 달고 다니는 엄마가 미운 순간도 많았다. 긍정의 말을 잔뜩 담은 책을 선물하고, 희망회로라는 것을 좀 돌렸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가 원하든 원하지않든 이것저것을 내마음대로 욱여넣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국 결말이 이거라니. 더군다나 결말이 이렇게 빨리 왔다고? 믿을 수 없었고 믿기도 싫었지만 믿어야만 하는 현실에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엄마의 마지막 날, 병실을 지킨건 나였다.
거친 숨소리와 규칙적인 기계음이 병실을 채웠다.
사람의 청각이 가장 마지막에 닫힌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엄마가 평소 좋아하던 팝송을 틀어놓고, 그동안 아껴두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엄마가 그토록 궁금해했지만 끝내 비밀로 부쳤던 내 유치한 연애사까지. 혹시나 엄마가 그 뒷얘기가 궁금해 번쩍 눈을 뜨지 않을까 하는 미련한 기대도 섞여 있었다.
반응없는 엄마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다음 생에도 엄마딸로 태어날거야'의 눈물촉진 4세트를 주문처럼 읊조리며 오열하다가도, 혹여 하늘나라에서 서로를 놓칠까 봐 우리만의 암호를 정하자며 혼자 골똘히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게 새벽내내 병실 안에 우리 둘만이 있었다.
그 날 그 순간을 끄적여둔 내 일기를 찾아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본다..
20250302
am3. 혈압이 78/48로 떨어졌다
잠도 안온다. 이런 상태가 길어져서인지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서인지 믿고싶지 않아서인지.
그래도 장례할 생각도 미리 머릿속에 넣어보고 꾸역꾸역 이것저것 생각하보다가..문득 열심히 버티고 있는엄마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자신이 죽도록 싫다
12시간이 넘게 일방적으로 엄마의 의식없는 모습만 바라보고있으니 빌어먹게도 무뎌지나보다
그래도 한번만 더 보고 한번만 더 만져봐야지.
다신 없을 순간들이니.
힘겹게 숨쉬고 있는 엄마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걸까 제발 좋은 꿈이라도 꾸게 해주세요.
그래도 편안해보인다. 다행이다. 그러나 잠은 여전히 안온다.
죽음의 에티켓 책을 오늘 하루만에 완독했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절대 찾지 않았을 그런 책이다
책 따위에 마음을 다잡고 내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하지만 그냥 글자 나부랭이만 모여져있을 뿐.
힌 개도 들어오지 않는다.
흐린 정신에 간절히 애꿎은 모니터만 쳐다본다
그런데 몇시간째 산소포화도 맥박수 호흡수가 안전하다는 사실 하나가 나에게 어떤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또 싫다. 아니 임종기인데. 지금 어떤 상황인데 감히 안정감을 느껴..
사람은 왜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잔인하다 잔인해
글 속에 박제된 그날의 공기가 여전히 차갑고 쓰라리다.
하지만 이제 피하지 않으려한다.
자그마한 하나라도 잊혀질까봐 걱정이 앞서는 걸 보니, 지난 1년이 나에게 준 용기?같은 것인가보다.
오늘 하루는 마음껏 울어보며 마음껏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