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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뜨개일기

마음이 울적할 땐 가지런한 뜨개 편물을 보아

나를 귀하게 여기는 행위, 뜨개

by 조이현

쉼에 좌표를 두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에겐 쉼이 필요하다.

바쁜 일상도 부지런히 살다 보면 어느새 그 생활에 적응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적절한 휴식이 없다면 이건 적응이 아니라 바쁨의 '관성'에 빠진 것일 수 있다.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힘을 주지 않아도 계속 굴러가려 하는 공처럼

우리도 그저 관성적으로 굴러간다.



그래서 가끔은 힘을 가해 그 관성을 끊어내야 한다.

내 일상에 변화를 주고 잠시 멈춤으로써 나의 상태를 돌아보고 나의 마음을 돌봐야 한다.

그래야만 삶을 견디지 않고, 버티지 않고,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무엇이 '쉼'이 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운동, 사교모임, 책 혹은 영화, 여행 등 무엇이 됐든 나를 가장 편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그것이

우리를 쉬게 한다.




나에게는 '뜨개'가 쉼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 나는 뜨개를 한다. 특히 가지런히 정리된 대바늘 편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실의 종류와 색상 고르기부터 시작해 한 코 한 코 직접 쌓아 올린, 오롯이 내 품을 들여 만들어낸 나만의 편물.

어지럽던 내 마음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다.

게다가 털실의 폭닥하고 부들한 촉감은 만지면 만질수록 마음이 진정된다.

특별히 좋은 곳을 가지 않아도

집 앞 카페에서 좋아하는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뜨개를 하는 시간이 내겐 힐링이다.




오늘은 내가 만든 목도리를 하고 집을 나섰다.

평범해 보이는 검정 목도리지만 사실은 특별하다.

내가 원하는 크기에 딱 맞는 목도리를 찾지 못해 결국 내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FO 하고 나서 첫 착용인데 길이감 훌륭하고 포근함도 합격이다.

나를 위한 핸드메이드 목도리가 만족스러워 마음까지 따수워졌다.




어쩌면 뜨개는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인 듯하다.

나의 것을 뜨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더라? 나에게 왜 이 물건이 필요했지? 나에게 맞는 크기는 어느 정도 일까?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알아봐 줘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귀해진다.

여기다 직접 뭔가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행위 그 자체!

이것은 1000장씩 찍어내는 기성품을 살 때의 기분과는 같을 수 없는 쾌감이다.

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혹은 가방을, 혹은 그 무언가를) 입은 특별한 사람이다!




요즘 한동안 손 놓고 있던 뜨개가 다시 생각나는 걸 보니 쉬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매사에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열정을 쏟는 나머지 번아웃에 쉽게 빠지기도 하는 나.

잠시 고요히 멈춰 편안한 마음으로 실을 고르고 나를 위한 뜨개를 시작해야겠다.

앞으로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할 나를 보듬고

귀하게 여겨주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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