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영화' 라라랜드'의 예고편을 본 적이 있었다. LA의 황홀했던 저녁노을이 어느덧 빛을 잃어가며 코발트블루의 비단빛이 하늘을 수놓을 때쯤 듬성듬성 켜져 있는 가로수 조명 아래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을 보자마자 그동안 죽어있던 연애 세포가 멱살을 붙잡고 날 극장으로 끌고 갔다. 알려진 대로 '라라랜드'는 뮤지컬 로맨스 영화이다. 영화비평가들 사이에선 ‘마더’, ‘다크 나이트’, ‘업(UP)’ 등과 함께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을 역대 최고의 오프닝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필자 역시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에서 닭살이 마구 돋아오를 만큼 웅장하고 상쾌한 전율을 느꼈다. 지금부터 영화 '라라랜드'를 테마별로 분석해 보고 꿈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music
① Another Day Of Sun
이 영화의 오프닝을 알리는 곡이다. 꿈과 낭만의 도시 LA의 교통 체증 속, 고속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댄서들의 합이 잘 맞춰진 군무는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영화를 촬영하는 모든 팀이 꽤나 고생을 한 장면으로 가히 완성도는 완벽하고 경이롭다고 자부한다. 제목의 의미처럼 작품 속 주인공들은 퇴색하고 있는 자신의 삶에서 어쩌면 ‘새로운 태양’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Another Day Of Sun
② Someone In The Crowd
‘저 무리 속 누군가가 네가 알아야 할 사람이야. 너를 이 바닥에서 끌어올려 줄 사람,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가 줄 사람.’
'Someone In The Crowd'의 가사 속에는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운명에 대한 암시가 넌지시 드러나 있다. 번데기에 갇혀 있던 두 주인공의 꿈은 서로를 만나고 교감함으로써 드디어 번데기를 깨고 나와 나비의 꿈이 되어 간다.
※ 한국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미인’ 테마 속 장면은 라라랜드의 ‘Someone In The Crowd’ 테마 속 장면을 오마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Someone In The Crowd
③ A Lovely Night
요즘 말로 썸을 타기 시작하는 주인공들이 지는 해가 남기고 간 회색빛으로 물든 도심 속 한 언덕에서 추는 탭댄스는 제목의 의미처럼 너무 사랑스럽기만 하다. 때론 절도 있게, 때론 너울거리는 동작으로 이루어진 춤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발가락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라라랜드 메인 포스터 속 장면이기도 한 이 신을 통해 주인공들은 본격적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다.
A Lovely Night
2. Whiplash
라라랜드의 감독인 데이미언 셔젤. 그의 이름을 알린 대표적 작품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있는 '위플래쉬(Whiplash)'이다. 필자도 드럼을 치기 때문에 당연히 위플래쉬를 관람했고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냥 미친 영화다. 김동인의 소설 ‘광염 소나타’가 연상되리만큼 광기에 사로잡힌, 음악에 미친 두 주인공(마일즈 텔러와 J.K 시몬스)이 만들어 내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와 집착, 몰입력은 기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부한 영화적 틀을 과감하게 파괴해 버린다. 이렇듯 데이미언 셔젤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드럼과 음악에 대한 열망을 그의 페르소나이기도 한 음악 감독 저스틴 허위츠와 함께 이 영화에서 폭발시키고 만다. 둘의 파괴력 있는 앙상블은 라라랜드에서도 또다시 웅장하게 협주된다.
광적인 연주와 평온한 연주
3. color
여주인공(엠마 스톤, 미아 역)의 일상은 주로 블루톤으로 채색되어 있고, 남주인공(라이언 고슬링, 세바스찬 역)의 일상은 주로 레드톤으로 채색되어 있다. 파랑은 꿈과 희망을, 빨강은 열정, 정열을 상징한다. 두 주인공이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선 자줏빛 배경이 후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빨강과 파랑을 합치면 자줏빛이 된다. 자줏빛은 사랑과 신비 같은 뜻도 가지고 있지만 불안정, 불행, 죽음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픈 아이들이 선호하는 색임은 이미 일본의 색채 심리학자 '스에나가 티미오'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어찌 보면 파랑과 빨강으로 대표되는 남녀 주인공이 섞이면서 자줏빛이 된다는 건 결국 주인공들이 맞이하는 가슴 저린 결말에 대한 숨겨진 메타포가 아닐까. 물론 둘은 각자의 꿈을 이루었으니 결말을 두고 가슴 저릴 정도는 아니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은, 난 인류에게 사랑만큼 위대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록 각자의 꿈은 이루었어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가슴 저린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4. love
작품 속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한다. 하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신의 짓궂은 장난 속에 서로는 어긋나기만 하고 균열이 생기면서 결국 이별 후에 세월이 꽤 흐른 후, 서로의 꿈이 정상에 다다르고 나서야 운명적으로 재회한다. 세바스찬은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재즈바를 오픈하게 되고 신이 미리 짜놓은 각본처럼, 대배우가 된 미아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그 재즈바에 입장하며 둘은 우연인 듯 운명같이 조우한다. 세바스찬은 미아를 발견하고 상념에 잠긴 후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아 한 음계 한 음계를 꾹꾹 눌러가며 서정적인 피아노곡을 연주한다. 피아노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세바스찬과 미아에게 '만약 그때 이랬더라면'이라는 마법 같은 주문이 걸리면서 둘만의 판타지 세계가 펼쳐진다. 과거 이별을 낳았던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에 둘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리함으로써 둘은 이별 대신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낳고 키스를 나눈다. 피아노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판타지는 사라지고 두 주인공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며 차마 입으로 나눌 수 없는 무언의 눈빛 대화를 나눈다.
“당신, 결국 이루어냈구나.”
“당신도......”
우리의 'La La Land(꿈의 세계)'는 과연 어디일까?
우리는 'La La Land'를 밟기 위해 한 발짝 나아가고 있나. 아니면 'La La Land'를 외면하고 있나.
여러분의 'La La Land'를 꼭 찾길 바란다. 꿈과 사랑이 가득한 낭만의 세계를 말이다.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자, 사랑이란 감정이 갈급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