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으로 인한 손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멘탈을 가장 빠르게 회복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향의 적절성을 논외라고 한다면 아마 손실금을 메꿀 수 있는 수익일 것이다. 기간은 단기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기가 막힌 곳이 있다. 바로 오후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열리는 심야 도박장, 미국장이다.
미국장 하면 떠오르는 기업들은 뭐가 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구글(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최근 시가총액 4조를 돌파한 엔비디아, 그리고 올해만 서학개미들이 5.8조를 투자한 테슬라까지. 지구촌 사람이라면 알만한 굴지의 대기업들이 포진해있다. 이외에도 한국 시장의 종목보다 약 2배 많은 5,700개의 종목들이 미국 시장에 상장되어 있다. 기업 수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선택지가 넘치지만, 미국 시장의 결정적인 특징 하나는 가격 제한폭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장은 상하한가 제도가 있어, 하루 동안 1,000만원은 많아야 1,300만원, 적으면 700만원이 된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제한이 없다. 아래 차트를 보자.
무슨 생각이 드는가? 전날 약 8달러였던 주식이 다음날 고가 기준 76달러, 그러니까 88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만약 1,000만원을 투자해 800%의 상승률에 매도했다면 8,000만원의 수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너무 달콤하지 않은가? 한국장에서 반토막이 났다고 하더라도 100% 상승률만 먹어도 하루만에 복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나 역시 이 심야 도박장에서 거닐던 적이 있었다. 손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던 중 미국장의 실시간 거래대금 순위라는 악마의 손길을 뿌리챌 수 없었다. 세 자릿 수의 상승률을 뽐내는 급등주는 내게 헛된 희망을 품어주었다. 누구나 그렇듯 초반엔 대성공이었다. 소액이었지만 몇 분만에 30%가 넘는 수익률은 얻었다. 그렇게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자기 과신이 생겼고 합리적인 투자는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내가 얻은 것은 망가진 수면, 망가진 멘탈, 그리고 "또 당했다"는 자괴감뿐이었다. 매주 로또 당첨자는 나오지만, 그 중엔 내가 없었다.
이건 단지 나의 실패담이 아니다. 나처럼 조용히 미국장에 들어갔다가, 조용히 무너져 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결국 나를 심야 도박장으로 이끈 것은 ‘수익’에 대한 간절함이었지만, 그 손에 쥐여졌던 지도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매일같이 손에 쥐고 있던 앱이 나를 특정 길로 이끌었을 뿐이다. 내가 본 화면, 내가 본 숫자, 내가 본 종목은 모두 정해진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그 환경은 정말 중립적이었을까?
투자의 책임은 누구일까? 물론 매수 버튼을 누른 투자자 자신이다.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내 손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나는 급등주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핀테크 앱의 실시간 급등 종목, 거래대금 상위 종목을 노출하는 기본 화면을 보기 전까지는. 실제로 쉽고 직관적인 UI/UX로 구성된 핀테크 앱이 초보 투자자들을 미국 급등주 시장으로 유입시키고 있고, 그중 상당수가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기 종목이 “지금 사야 할 종목”처럼 보이게 만들고 주식의 본질적 가치보다 단기 변동성에 집중하게 한다. 앱 제공자는 "투자 선택은 개인 몫"이라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며 이는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UX를 설계해놓은 환경에 과연 100% 개인의 책임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한 핀테크 앱은 1%의 책임에서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투자도, 도박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다만 도박장은 심야에 문을 열고, 우리는 손안의 작은 화면 하나로 그 문을 매일같이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