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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일기 EP12. 오늘도 헬스장을 향하는 이유

by 가치관의역전

국내 주식은 9시에 장이 열려 3시 30분에 마감한다. (이는 정규시장 시간이고 시간외거래도 포함하면 장 시간이 더 늘어난다. 또한 2025년 3월 대체거래소(ATS)가 출범하면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기존 6시간 30분에서 12시간으로 늘어났다.) MTS에 영혼이 빨리는 개장 시간이 끝나도 난 오늘의 매수를 합리화하기 위해 애를 썼. 종목토론방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렸고, 근거없는 주식 영상을 기웃거렸다. 퇴근길에도, 저녁을 먹을 때에도, 잠이 들기 전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 ‘단도’를 시작하고 나서야, 그렇게 일상의 많은 시간을 점유하던 것들이 사라졌다. 밀물이 빠져나간 해변과도 같은 기묘한 공허함이 생겼다. 빠져나간 밀물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건강한 자극, 도박을 했을때마다 느꼈던 강렬함과 짜릿함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를 대체할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때부터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진심이 되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경험으로 힘들어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헬스장을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낼 수 있다. 근력 운동 1시간~1시간 30분에 30분 전후의 유산소 운동까지 겸하면 최대 2시간이 나의 건강을 위한 생산적인 시간이 된다.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가 하루하루 쌓여 도박으로 작아졌던 자존감을 회복한다. 또 근육량 1kg의 가치는 2022년 물가 기준 1,400~1,600만원으로 근육이 곧 나의 재산이 된다는 사실은 경제적으로도 유의미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이는 저속 노화로 세간을 이끌고 있는 정희원 교수님께서 하신 주장이다. 이 주장은 통장 잔고에 찍혀있는 마이너스에서 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많이 달래주었다. 내 손에 쥐어진 바벨을 있는 힘껏 들지만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들리지 않을 때, '돈 벌어야지'하고 생각하면 지금껏 삼켰던 고통이 응축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곤 한다.(?)


둘째, 과거의 나와 비교할 수 있다. 비교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자란 나는 타인과의 비교에 자유롭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없이 또래보다 돈을 더 많이 갖고 싶고 자산 격차를 벌리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 주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헬스장에서의 시간은 철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내가 지난 번에 같은 무게로 8번을 밀었다면 오늘은 9번을 밀어야 근육이 성장다. 내가 집중해야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지난 번에 다루었던 무게와 횟수, 나의 골격근량과 체지방 이 모든 것이 가시적 수치로 나타난다. 더 나은 방향으로 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지난 날의 나와 끊임없이 비교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제의 나를 이기기 위해 오늘의 무게를 밀어 올릴 수 있게 된다.


셋째, 망가진 도파민 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다. 도박은 인간의 보상 회로를 망가뜨린다. 즉각적이고 강한 보상에만 침을 흘리게끔 말이다.이것이 도박의 본이다. 실제로 주식에 푹 빠져있었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모여다같이 웃고 있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 억지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멋쩍은 미소를 띠고 있던 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큰 자극에 계속 노출된 뇌는, 작은 자극에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주식 외에는 삶 자체가 재미없어진 것이다. 그럼 삶에 웨이트 트레이닝은 어떤 변화를 주었까? 웨이트는 횟수와 세트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묵직하고 조용한 반복은 무너진 회로를 다시 쌓아올리는 일이었다. 또 운동을 끝내고 느껴지는 성취는 켜켜이 쌓여 '해냈다'라는 감각을 회복하게 했다. 이것들은 주식에서의 쾌감과 달랐다. 더딘 만큼 깊었고, 작지만 선명했다. 자극에 길들여졌 뇌가 다시 노력 기반의 보상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 웨이트 트레이닝은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훈련이자 보상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헬스를 통해 나는 시간을 되찾았고, 비교의 방향을 바꿨으며, 도파민 회로를 다시 세웠다.

그 모든 과정을 가장 단단하게 요약해주는 말이 스쳐지나갔.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쉽지 않은데, 내 몸은 내 의지대로 가능하구나.” – 배우 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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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헬스장을 향한다.

무너졌던 나를, 오늘의 무게로 다시 세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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