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을 외면하지 않은 당신은 이미 상위 1%
1336(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 전화를 걸자 한 남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수없이 많은 절규와 살려달라는 비명으로 빚어진 구원의 목소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높지도 낮지도 않아 잔잔한 호수처럼 담담했다.
형용할 수 없는 안정감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통제력을 상실한 것 같아요."
"오만했어요. 객기를 부린 거 같아요."
"저는 00살인데, 이 정도면 빨리 깨달은 거겠죠? 저보다 심한 사람도 많죠?"
일찌감치 집에서 나와 살아온 나는 독립심이 강하다고 생각해 왔기에, 나의 힘든 감정과 복잡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표현하는 것을 삼가왔다. 나의 힘듦이 50이라면 그걸 표현하는 순간 나의 힘듦은 30으로 줄어들겠지만 20은 상대의 몫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전염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기에 내가 어렵고 힘들 때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여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날의 전화는 이러한 나의 가치관을 완전히 깨부수는 도전이었다. 나의 상황을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가지각색의 감정이 서려있었다. 아마 열에 아홉은 부정적인 감정이었을 거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하는 이성과 진동이 울리는 듯한 성대에서 나오는 떨리는 목소리는 참으로 대립적이었다.
이리저리 내팽개쳐지도 나뒹군 탄산음료를 바로 열어본 적이 있는가? 내 마음의 응축된 거품과 응어리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사람에게, 나의 고통과 힘듦을 온전히 전가하며 절규하였다.
그리고 돌아온 한마디,
"전화를 주신 것만으로도 상위 1% 세요. 괜찮습니다."
말의 품격, 말의 결, 언어의 온도 등 주기적으로 말에 관한 에세이를 읽으려고 노력하곤 했다.
내면에서 말의 중요성이 희미해질 때쯤 이를 전두엽에 때려 박기 위함이었다.
그만큼 말의 힘은 거룩하고 위대하다 생각해 왔다.
위의 짧은 한 마디를 들으니,
얽히고설켜있는 감정이 담긴 눈물이 솟구쳤다.
역시 말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입을 떡 벌리고 오열하는 연기를 보면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의 내 모습이 그 연기와 오버랩되기도 했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지부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 안내를 받고 전화를 마쳤다.
불구덩이가 가득한 지옥을 헤매다가
저 멀리에 있는 빛 한줄기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중독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던 당신,
누군가 던져준 밧줄을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밧줄을 보고도 모르쇠로 일관하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상위 1%다.